로또

버티는 삶에 관하여!?

by 빛나길

드. 디. 어


매주, 토요일이 되면 놓치기 싫은 이벤트가 있다. 로또. 매주 로또를 산다. 원래 로또 따위 믿지 않는, 실력으로 삶의 난관들을 극복하자는 주의였는데 주식투자에 실패했다. 몇몇 국면에, 대폭락의 장에 레버리지를 태워 들어갔고, 꽤 많은 수익을 보고 나니 사람이 눈이 뒤집히더라. 그즈음의 와이프가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고, 나는 감히 연봉 5천도 안 되던 인간이, 운 좋게 얻어걸린 초보자의 행운도 못 알아보고 주식투자를 전업으로 삼아, 와이프에게 ‘나도 못 이룬’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려고 했다.


자만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 정확히 얘기하자면 굳이 자만 같은 부정적 느낌의 단어가 아니라,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빌어먹을 주식, 십몇 억만 벌어두면 둘이 오순도순 배당받아서 나 혼자만 일하고도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미쳐가지고 위험도 맥스의 투자를 한다. 그래. 여태 운이 오지게 좋았으니 올인한 주식이 뜬금없이 상폐를 당한다. 분명 지금 생각해 보면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욕심에 시뻘겋게 절여진 내 눈깔이 판매 버튼을 못 찾더라. 망했다.


레버리지의 대가는 가혹했고, 그즈음에는 부당해고를 당했다. 내 글이 일인칭일 것이라 생각지 마라. 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언제나 정신의 새로고침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억대의 빚을 지고 백수가 된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닥치는 대로 면접을 봐서 어째 저째 ‘다닐 만한’ 직장에 취직해서 성과를 보이고 인정받고 있다. 그래도 아내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었으나 백수인 기간에, 아내는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문 밖으로 나가 ‘부녀가장’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돈을 벌어와 나를 먹여 살렸다.


부들부들 남들보다 곱절은 열심히 일했다. 이유가, 근거가 있었고 나의 노력은 남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게 나아지지 못하는, 현상 유지를 위한 삶을 살아갔고, 그 기간 동안에 와이프는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마침내 적성을 찾은 듯하다. 다만 멈춰 웅크리고 덜덜 떨지 않고, 내 조언들을 귀담아듣고 용기를 내어 떨치고 나아가는 아내를 응원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나아지지 못하는, 현상유지의 삶은 큰 이변이 없어서 로또를 하게 되었더랬다.


빚쟁이+외벌이의 지난한 삶은 어렵다. 그래서 사이드 잡, 세컨드 잡을 쉴 새 없이 찾는다. 꾸역꾸역 나이는 먹어가는데, 곧 마흔을 앞둔 거울 속의 아재를 외면하고 새벽에 생수 배달을 할지, 농산물 시장에서 막일을 할지 고른다. 본업이 일정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는 일이라 틈틈이 글을 적고, 주말에는 사이드 잡을 뛴다.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내와 쉴 새 없이 붙어있을 수 있는 정시퇴근, 주말과 공휴일 있는 워라밸이었는데 내가 내게 끼얹은 똥이 사람을 밖으로 막 내몬다.


농산물 시장에서 일을 한다. 육체노동은 자신이 있다. 애초에 몸 쓰고 땀 흘려가며 하는 일의 고귀함을 논하기 이전에, 일을 잘해서 그렇다. 그래서 생수 배송을 해서 월에 400만 원을 더 벌어볼랬는데, 그러면 오후 7시 30분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해서….겁이 나서 잠도 잘 안 오더라. 현실에 닥치면 부딪혀 다 찢어발기지만, 혼자 쉐도우 복싱으로 겁을 집어먹는 편…. 그래서 새벽 4시 출근해서 3시간 과일을 나르고 일당 5만 원을 받는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일거리고 도움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시장 상인들의 몰염치와 무개념을 익히 안다. 애초에 출근길에 시장에 들러 장을 봐 영업을 하던 자영업자 시절을 떠올리면, 친해지기 전까지, 일정의 친분이 쌓이기 전까지 소위 눈탱이를 칠 기회나 순간만 있으면 쉼 없이 굴러가는 그들의 짱구….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간 상인 할매가 떠오른다. 아마 날 기억하진 못하겠지. 도매상인인데 과일 한 박스에 얼마냐고 묻고, 한 박스 가격만 입금하니 ??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할매. 면접도 쿨하다.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먹을래 묻지도 않고 인스턴트커피를 휘휘 타서 내민다. 면접 후에 건강검진이 있는데 큰일 날 뻔했다. 나도 모르게 예의상 받아 마시는 시늉을 하려하지 않았나. 저 면접 끝나고 건강검진 가야 합니다. 하니 아 그럼 묵지 마라. 하신다. 일은 해봤나? 하시기에 불과 며칠 전까지 바로 옆의 공판장에서 일을 해본 사실이 떠오른다. 왜 그만뒀는고 하니 사방에서 연통을 피워대며 양파망이나 비닐 같은 것들을 태우던 상인들의 행동에 민원을 넣었으나 개선되지 않아서, 계도만 하겠다는 공무원의 처분을 최저시급 받는 내가 구하려니, 막으려니 귀찮아서였는데 딱 한 블럭 떨어진 이 청과물 시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시급도 훨씬 높아서 일하고 싶었다.


일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역시 귀하게 자란 듯한 내 외모 덕분인지, 대뜸 반말로 그런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다. 하시더라. 울컥해서 이 뭐 전문직이라고! 하는 마음으로 청과물 시장은 아니고 농산물 시장에서 고구메, 감자, 당근 나르면서 일해봤습니다. 했다. 울컥하는 내 모습에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뻣뻣한 말투로 그럼 알아서 일 다 잘하겠네? 한다. 에이, 감자 고구메, 당근이랑 같습니까? 힘은 쎄고 농땡이 안 부리고 부지런하니 일 시키믄 후회는 안 하실낌더 했다. 다행히 믿음을 주었는지 신상조사가 들어온다. 술 잘 묵나? 술, 담배 안 합니다. 결혼은 했나? 재작년에 했심다. 그래 신혼이네 ^^ 처음 웃어주신다. 네, 좋습니다.^^ 마주 웃고 아는 있나? 아 날 준비할라꼬 돈 더 벌라꼬예. 거짓말이다. 우린 딩크다. 그렇지만 열심히 돈을 벌 명분은 충분하고 설명하긴 구차하잖은가. 주식이 망해가꼬예….ㅠㅠ 할 순 없잖은가.


그래, 알겠다. 열심히 해라. 다음 월요일부터 출근해라. 4시부터라고 되어 있는데 더 빨리 와야 댄다. 오토바이 타고 오나? 차 탑니다. 그래, 오토바이 밤에 타면 위험하다. 네, 출근 잘 하겠심더. 그래, 월요일에 보자. 월급은 하루도 안 밀리고 준다. 29일에 출근이니, 다음 달 29일에 월급 준다. 열심히 해라.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차에 타기도 전에 아내에게 ‘면접 부틈’ 카톡을 보낸다. 아내가 좋아해서 마음이 놓인다.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이 정도 일하고 이 정도 숨구멍이 틔는 삶에 만족한다. 집 근처의 큰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마치고 집에 간다. 아내와 면접 시의 무용담에 대해 너스레를 떠니, 아내가 묻는다. 그럼 2월엔 월급 4년에 한 번씩 받는 거야? 웃으며 산책을 가고, 대통령이 들른 시장에 가서 식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복권방에 들러 로또를 산다.


사장님께 너스레를 떤다. 밖에 당첨 내역이 하나가 안 붙어 있던데, 여기서 1등 걸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네, 그때 언제 2등은 한번 된 적 있는데. 그럼 제가 함 걸려 드려야겠네요. 와 좋네예. 그럼 플래카드 시키야겠다. 입금하느라 좋지예. 지금 시키십셔. 하니까 에이 그래도 걸리야 시키지. 아니 내가 걸린다니까여? 아니 걸리고 말합시다. 입금 확인해주이소. 1등 로또 자동 1만 원. 근데 이랬는데 이 집에서 다른 사람이 1등 걸리진 않겠지? 다 같이 웃으며 가게를 나선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로또 1등에 거짓말처럼 걸려 버렸다. 심지어 그 집에서. 이 무슨 소설 같은 얘긴지 모르겠다. 소설이래도 믿겠는가? 망했다. 로또 1등 한 번 걸린다고 삶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남의 집을 전전하며 전세살이 하는 우리 집에 똘똘한 한 채가 생기는 정도? 그 외의, 1억 도 안 되는 한 줌짜리 빚도 삭제시키고, FSD 되는 테슬라 모델 S는 한 대 사야겠다. 그래도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잖은가? 급하게 월요일 연차 신청을 한다. 문제는 합격한 농산물 시장이다. 할매와의 케미도 좋았고, 기껏 따낸 소위 꿀 떨어지는 직장을 잃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로또를 살 때마다 해오던, 1등 걸리면 어떻게 어떤 동선으로 어떻게 당첨금을 수령할지 짜두었던 커리를 수정한다. 회사에는 연차신청을 한다. 그러나 새벽 4시에 일어나(사실 잠이 오겠는가!! 15억인데!?) 농산물 시장으로 출근한다. 당첨 로또는 사진을 찍어두고 두 겹으로 된 로또 비닐에다가 이케아 곰돌이가 그려진 지퍼백으로 싸서 핫팩 목걸이에 걸어 맨가슴에 건다. 비지땀을 흘리며 불꽃같은 노동을 한다.


존나 힘들면 그만두면 그만이지 ㅎㅎㅎ 하는 마음으로 한다. 깜빡하고 말 안 했는데, 면접 시에 할매가 그랬다. 와가 대충 시간 떼우다 갈 거면 오지도 마라.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습니까? 힘껏 하겠습니다. 겨울은 배와 사과의 끝물, 귤과 한라봉이 제철이다. 대충 출근해서 170번째 한라봉 상자를 나르고 있으니 출근해야지. 가라. 한다. 드.디.어. 점프를 잘못하면 층고가 6M는 될 법한 시장 천장에 닿을까봐 조심조심 천천히 걸어 차로 향한다. 아내를 태워, 부산역에 주차를 해놓고 서울행 기차를 탈 것이다. 농협 본점으로 갈 것이다. 가는 동안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넉살 가득한 진면목으로 내게 사랑을 베푼 세상에 더 큰 사랑을 나눠줄 것이다. 올 때에는 더더 크게 사랑할 것이다.


인생은 살만하다. 좋아하던 외수 작가님이 한 말처럼, 존버. 존나게 버티다 보면 해뜰 날이 온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도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적게 일하진 않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몸에도 깃들어 더 많은 글을 적으련다.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다. 다들 건강하고 안녕하시길! 언제나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