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래성

무의미에 관하여

by 빛나길

이 이야기는 모래성을 지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무의미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글이 될 수도 있으며,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무모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굳이 구태여 나서서 모래성을 지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시간과 대자연으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그 모든 것들로부터 모래성을 지켜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처음 그 모래성을 보고는 무심하게 지나쳤다. 대한민국의 삼십 대에겐 그러한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여유 따위는 없다. 벌고 먹고살기도 팍팍한 이런 시대에 모래성이라니, 사실 모래성이라는 표현도 과한, 그냥 모래더미나 될 법하지만 그래도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지키는 벽이 있기 때문에 모래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별나네. 누가 이런 쓸데없는 곳에 쓸데없이.


그날 그 해수욕장을 걷기로 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 많이도 후회했다. 적어도 그 모래성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밀물이 밀려와 모래성에서 머지않은 곳의 모래구멍들을 메우기도 하고, 다른 모래 언덕을 와해시키기도 하였지만 오직 내게는 그 모래성만이 특별했다. 상술했듯 첫눈에 특별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디서부터 그런 마음이 솟았는지 알 수 없게, 모래성을 지키기로 했다. 무엇으로부터?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 존재할 힘없는 모래성을 지켜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밀물이 문제가 되었다. 아니, 처음에는 밀물만이 문제가 될 줄 알았다. 입고 있던 옷이, 신발이 물에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성 앞에 주저앉아 모래를 그러모아 댐을 쌓기 시작했다. 모래성을 지켜줄 모래 언덕을. 채 30cm도 되지 않을 거리에 모래를 그러모아 밀물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다 큰 성인이, 그것도 한밤중에 주저앉아 모래사장의 어설픈 모래성을 지키기 위해서 밀려오는 바다 앞에서 언덕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이유나 당위도 없이 말이다. 처음에는 밀물만이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어오는 해풍에 날리는 모래성이, 그 밀도와 형태를 잃어가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말이다. 문제는 바람이기도 했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서 더 높은 언덕을 세우려다가 그건 얼토당토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모래 위에 모래 언덕을 짓는 것을 옛 말에서는 ‘사상누각’이라고 했다. 팔로, 발로 모래를 그러모으고 입고 있던 웃(윗) 옷을 벗어 모래성을 덮는다. 연일 강추위라고 외쳐대던 일기예보, 언론이 마냥 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의 불합리를 알고, 옳지 못한 일, 멈춰야 하는 일이라면 즉시 멈추는 것의 당위를 알지만, 이번 일에서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판단을 할 여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이유는 없지만 밤바다를 보러 왔고 밤바다에서 우연히 내 눈에 띈 누군가가 빚어둔 모래성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밀물과 싸우고 해풍과 싸우고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적확한 이유나 명분은 없다. 다만 스러져가는 삶과 모래성이 결국 반드시 사라질 것이라는 깨달음조차 없이 뭣에 씌인 사람처럼 홀로 바다와 싸우고 있다.


아뿔싸, 바람에 날릴까 덮어둔 옷의 질량도 모래성에겐 부담이다. 어찌할 바를 알 수가 없어서 옷을 치우고 모래성을 보강한다. 전과 같은 높이, 전과 같은 구멍과 벽을 의심할 때쯤, 모래성으로 밀물이 들이닥친다. 패닉에 빠진다. 허겁지겁 모래성 앞으로 해자를 만든다. 바다가 밀려든다. 파도를 선봉으로 먼바다가 쏴아 소리를 내며 나를 덮치고 내가 지키는 모래성을 덮친다. 깎여 나가는 것은 일견 모래성이지만 내가 좇는 영원함의 궁전이 무너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부질없음, 혹은 나의 정신상태를 논하기도 전에 모래성을 상의에 퍼담아 더 위로 옮겨다 붓는다.


테세우스도 본인의 배가 이렇게 유명한 이야깃거리가 될 줄 몰랐을 테고 무엇이든 영원한 것. 개체의 완전성과 소멸을 논하는 화두에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도록 나는 해수욕장의 모래성을 구성하던 모래들을 날라다가 다시 모래성을 쌓는다. 수평선이 말갛게 밝아오고 나는 밤새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달달 떨며 바닷바람에, 시간에, 파도에 맞서 이젠 내 것이 되어버린 성을 지키려고 발버둥 친다.


이제 밝아오는 먼동에 내가 지킨, 지켜낸, 지켜내려 발버둥 쳤던 성을 마주한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규하다가 지쳐 뒤돌아 눕는다. 새벽 바다에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이 혀를 차며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날이 차고 식어오는 체온에 몸이 덜덜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벗어던진 옷가지를 챙겨 텅 빈 마음에 담는다.


모래성을 지키는 사람이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묻지 마라. 모래성을 지켜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