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

by 화혜

오늘은 그룹 치료가 있는 날이다.

아이들과 다 함께 바다 꾸미기 활동을 할 계획이다.


시작에 앞서 꾸미기 활동을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준비 운동을 잘해야 하잖아요!"


이 아이는 해양 안전을 포함해 바다에 관한 모든 것을 줄줄 꿰고 있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구나. 근데 지금 선생님이 말하고 있었잖아.

다른 사람 말을 끊고 끼어들면 안돼.

우리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바닷 속에 뭐가 있는지 얘기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설명을 듣기는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수업을 이어갔다.

다함께 바다 꾸미기 활동을 했고 자연스레 놀이로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엉뚱한 상상을 얘기했다.


"얘는 말하는 물고기야!

음파, 음파. 내가 바로 이 구역의 일인자, 말하는 물고기다!"


친구들이 깔깔 웃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의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말하는 생선 이야기에서 다시 해양 안전 수칙으로,

아쿠아리움에 놀러갔던 이야기로,

백상아리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로,

망치상어로, 고래상어로,

주제가 쉬지 않고 샛길을 내며 끝없이 이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차마 말을 끊지는 못하고

하나둘씩 고개를 떨군 채 애꿎은 바다 동물들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잠깐만, 지금 다른 친구들을 살펴봐. 어때 보여?"


그제서야 아이는 친구들의 표정을 살피고 분위기를 파악했다.


"......표정이 안 좋아요."

"왜 표정이 안 좋을까?"

"기분이 안 좋아서."


아이에게 다른 친구들이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려주어야 했다.


"친구들이 재미있어 보여, 재미없어 보여?"

"재미없어 보여요."

"그치? 친구들이 재미가 없나봐.

왜냐하면 너가 계속 혼자서만 얘기하니까 심심해.

그리고 우리는 이제 바다 이야기 그만 듣고 싶어."

"근데 나는 상어가 좋은데요,"

"자, 우리 다시 바닷 속에 놀러가자!"


지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다시 바닷 속을 배경으로 친구들의 놀이가 이어졌다.


한창 즐겁게 놀이를 하다가, 한 친구가 울타리를 연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감옥 만들자. 상어가 나타나면 여기 숨어야 해. 나 울타리 좀 써도 돼?"

"상어 중에 백상아리는 난폭하고 바다사자도 잡아먹고 사람도 공격해.

백상아리는 바다에서 제일 강한 포식자야.

백상아리랑 범고래랑 싸우면 어떻게 되냐면..."


친구는 끝내 "울타리 좀 써도 돼?"라는 질문에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 모습은 전형적인 '화용언어'의 결함이다.

화용(話用)이란 '언어의 사용'을 뜻한다.

즉 사회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이 화용언어 능력이 떨어지면 적절한 사회적 교류가 어려워진다.


주변을 보면 화용언어 능력이 떨어지는 건 비단 이 아이만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말만 하는 어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상대가 말을 할 때에도 다음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본인만의 대화를 이어간다.

무슨 주제를 꺼내든지 본인의 관심사로 끌고 가서 자기 말만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본인 앞에 앉혀둔 방청객으로 만들어 버린다.


상호적인 대화를 모르는 어른도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와 다를 게 무엇일까.


사실 어른이 되면 더 화용 언어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주변에서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나는 이런 사람을 소개팅에서 많이 보았다.

오죽하면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있겠는가.


맨스플레인이란, 상대가 이미 잘 알고 있거나 전혀 관심이 없는 내용인데도

“내가 알려줄게” 하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남자의 화법을 말한다.


보통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거나 매력을 어필하고 싶을 때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기 말만 하는 모습에 오히려 실망을 하고 만다.

사실 남자는 여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일 텐데,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른이 된 후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멀어진다.

나이를 먹을 수록,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아무도 나를 지적하거나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더이상 자기객관화를 위한 길잡이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른이 될수록 역설적으로 화용언어가 퇴행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다만 나는 자기 말만 하는 어른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보통 뭔가를 잘 못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메타인지를 발휘해서 셀프 학습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권고할 만하나,

모두가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만약 나의 대화상대가 화용언어가 부족해 보인다면,

속으로 욕하면서 겉으론 경청하는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를 혼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언어치료에서 아이가 장황하게 자기 얘기를 늘어놓을 때 사용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내 얘기를 하면 된다.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면서도 긴긴 연설을 들어주고 있는 이유는

대체로 말을 끊는 게 미안해서다.


일방적으로 말 많은 사람의 말을 끊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 사람이 대화의 규칙을 어기고 혼자 말하고 있지 않나.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주제로 전환시켜 버리는 거다.

가능하면 그 사람이 절대 모를 것 같고 나는 잘 아는 주제로.


대개의 경우에 별다른 저항 없이 전환된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한동안은.


그가 다시 본인의 관심사로 대화를 끌고 가려 한다면,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말하거나 다른 주제로 바꾸면 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본인이 자기 말만 한다는 걸 몰라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가 '역으로 지랄을 해야 사람들이 지 일인 줄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일차원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언어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할 때 사용되는 기법이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박하게 정죄하지 말고

한 번의 거울치료로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


어쩌면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지금 당장 그의 말을 끊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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