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정말로 들었'을까

by 화혜

오늘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못하고 항상 딴 짓하는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 말 잘 듣기', 즉 경청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무슨 말을 해도 손에 든 장난감을 내려놓지 않았다.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했지?”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고, 대답이 나오지도 않았다.


선천적으로 주의집중이 어려운 아이지만,

기질적 결함 여부를 떠나서 배워야 할 경청의 기술은 다르지 않다.


경청의 기술은 이러하다.


첫 번째,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듣는다.

두 번째, 고개를 끄덕이거나 적절한 맞장구를 친다.

세 번째,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대답을 한다.

네 번째, 대화 중엔 딴 짓을 하지 않고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한다.


이 네 가지를 천천히 알려주며, 아이에게 여러 번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아이를 가르치다 문득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있었던가?


아이에게 ‘대화의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내가,

정작 대화의 기본을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부끄럽지만 뜨끔했다.




최근 들어 가족들의 말에 관심이 없어졌다.

언어치료 일이 많아지자 피로가 쌓여 여유가 없어진 탓인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모든 것이 피곤해서 티비도 안 본다.

사람 말소리를 듣기가 싫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저녁 시간, 우리집 거실에서는 가족들이 일과를 나누는 담소가 펼쳐진다.

부모님께서도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얘기해주신다.


어제 저녁에도 엄마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런데 난 그 자리에서도 거의 내내 머릿 속으로 멍하니 딴 생각을 했다.

엄마의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마음으로는 듣지 못했다.


몇십 분의 대화 중 내가 정말로 ‘들은’ 시간은 몇 분이었을까.

아니 잠깐이라도 있긴 했나.


영어로 'hearing'과 'listening'에는 큰 차이가 있다.

'hearing'은 청각에 관한 생리적 과정으로,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고막을 진동시키고 뇌에서 청각 신호로 감지되는 것이다.

'listening'은 소리를 주의 깊게 인식하고 의미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행위다.

즉, 우리가 말소리를 듣고 있더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가능하다.


어제 나는 엄마의 말을 ‘들었지만’, 진심으로 ‘듣지는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은 못난 딸이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건 내 사정이다.

명색이 언어치료사인데, 하루 종일 남의 말을 듣고 에너지를 소진하고선

정작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팠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가르치는 중이었지만,

모든 가르침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마침 엄마가 이번 주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오늘 아이한테 언어치료를 해주면서 스스로도 언어치료를 받지 않았던가.

나는 배운 대로 실천에 옮겨보았다.


첫 번째, 엄마를 바라보고 듣는다.

두 번째,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 엄마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한다.

네 번째, TV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집중해서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가 얼마나 빛나는 눈으로 얘기를 하고 계셨는지.


가끔은 자기 자신을 챙길 여유조차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타인을 살뜰히 살피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때,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중에서도,

엄마의 말을 세상에서 가장 잘 들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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