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호스피스 이사장님에게 배운 준비된 죽음의 의미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조차 '죽음'은 여전히 금기어에 가깝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찾아올 일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리고 아마 생각보다 더 일찍,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지 스스로 묻게 된다. 오늘 담임목사님 하계휴가로 듣게 된 샘물호스피스 이사장님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한 번 더 이 질문 앞에 멈춰 섰다.
그분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결국 흙과 재로 돌아간다고. 고인이 쓰던 물건들은 정리되고, 남은 이들은 한동안 슬퍼하다가,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어쩌면 죽음은 이토록 담백하고 단순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리면 우리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힘든 두려움, 허전함, 때로는 억울함이 남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종교적 믿음을 품고 살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 후 영생이 있다는 걸 믿는다. 그러나 오늘 내가 여기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준비된 죽음은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주제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남은 삶을 더 온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에 관한 것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은 죽음을 미리 받아들이는 훈련이자 의식이다. 그것은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한 '깨어 있음'의 실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 쫓긴다. 일에 쫓기고, 관계에 쫓기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다 문득, 삶의 끝에서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사소한지, 소유나 성취가 정말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진실을 미리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아보는 일이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남은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동안 미뤄왔던 사랑을 실천하게 되고, 더 용기 있게 용서를 시도하게 되며,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마음도 커진다. 죽음의 그림자는 삶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마치 해 질 녘의 황금빛이 하루의 모든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하는 것처럼, 유한함에 대한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당장 누구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매일 함께 지내면서도 정작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고 있는 가족들에게, 오래전부터 미안해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어 계속 미뤄온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동료들에게.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동안 나누어야 할 말들의 무게를 깨닫는다.
이사장님의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언을 미리 남기는 유익'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종종 유언을 법적인 문서, 혹은 남은 이들을 위한 분쟁 예방책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유언은 그 이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미처 풀지 못한 감정,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삶의 마지막에서 나누고 싶은 한 줄의 지혜. 이런 것들을 솔직하게 남기는 일은, 남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가 된다. 때로는 미처 말하지 못한 한마디가 남겨진 가족의 인생을 바꾼다.
유언은 살아있는 동안 쓰는 사랑의 편지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의 어려운 순간마다 등불이 되어줄 말들이다. 유언은 모든 걸 정리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유산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단순한 재산 분배가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사랑과 지혜의 결정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내 삶이 어떤 의미였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두려워했는지, 남겨진 이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할 수 있는 따뜻한 인간의 언어로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고 싶은 한 줄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 한참을 생각해 본다. 거창한 철학이나 교훈보다는,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의 햇살을 사랑했고,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삶이 끝나도 사랑은 남는다는 사실을 믿어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인간이기에 행복했습니다." 이런 말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것 같다.
삶과 죽음을 바로 바라보는 생사관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의 진짜 본질이 드러난다. 더 이상 미래를 위한 끝없는 준비만 하며 살지 않고, 오늘 이 순간, 내 곁의 사람, 그리고 내 안의 감정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생의 마지막 여정'으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의외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아니, 설령 끝이라 해도,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준비이고,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바른 생사관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 절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떠나갈 것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사랑하고, 잃을 것이기에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에 마음을 쏟으라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사랑하라고 속삭이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매일 삶의 마지막 장면이 펼쳐진다고 한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인생의 마지막 호텔인 호스피스를 찾은 사람들.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이미 남은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우리보다 더 밝게 웃고, 더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자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진정한 배려를 남긴다. 마지막을 준비한 사람이 남긴 말 한마디, 남긴 사랑 하나가 남은 이들의 인생 전체를 지켜주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보여주는 평온함과 너그러움은, 우리에게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그들은 더 이상 성공이나 실패, 소유나 상실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감사, 용서와 화해에만 마음을 쓴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진정으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지혜 말이다.
이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두려움만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준비된 죽음이란,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용기이자,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사랑의 배려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오늘을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용감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끝이 있는 이야기가 더욱 간절하고 아름다움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유한함을 받아들인 삶은 더욱 진실되고 의미 있게 빛난다. 행복한 삶은 준비된 죽음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매 순간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아끼지 않으며, 용서를 주저하지 않는 삶이다. 언젠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오늘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