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열었던 기억
오늘은 부끄럽지만 자기 고백적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글을 읽어보신 분은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한고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며 한번 이렇다고 굳힌 상황에 대해서는 타협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머릿속에 오작동하는 번역기가 하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순수한 격려나 조언이 입력되면, 어김없이 "당신은 지금 틀렸어"라는 날 선 비난으로 번역되어 나옵니다. 선의로 내민 손길은 어느새 나를 향한 뾰족한 손가락질이 됩니다. 이 왜곡된 번역문 때문에 저는 얼마나 많은 대화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을까요. 상대가 침묵하면, 저는 '역시 아무도 내 편이 아니야'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나를 외롭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의 고장 난 번역기였습니다.
몇 년 전 상사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신 팀장님, 개인적인 자기계발도 좋지만, 회사 업무역량을 키우는 데 좀 더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철컹' 하고 무겁게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심장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업무역량이야말로 자기계발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속으로 외치며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어쩌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팀장님의 그 뛰어난 성실함과 탐구정신을 조직을 위해 발휘해 준다면, 우리 조직 전체가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분명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내 번역기가 얼마나 많은 따뜻한 격려를 차가운 비난으로 오역해 왔는지, 이제 와서는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순간이 많네요.
변화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읽은 아들러의 문장이 닫혔던 마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동안 모든 조언을 나를 평가하고 감시하는 '시선'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두려웠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언이 시선이 아니라 '손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를 끌어내리려는 손이 아니라, 함께 더 높은 곳으로 가자며 내미는 따뜻한 손길 말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 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설명하실 때 지금보다 조금만 천천히 말씀하시면, 내용이 훨씬 더 명확하게 전달될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또다시 빗장을 걸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속는 셈 치고 딱 일주일만 해보자.' 다음 회의에서 저는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며 말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놀랍게도 회의가 끝나자 다른 한 동료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오늘 설명,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정말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조언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낙인이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이정표라는 것을. 그 작은 성공은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몇 년 전 상사의 조언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귀를 막지 않고, 그 말의 진짜 의미를 해독해 보기로 했습니다. 조직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성과관리 내부평가단'에 지원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평가받는 입장에서 평가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팀의 성과 목표와 과정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우리 시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과 우리 팀의 역할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입 직원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쌓아온 자기계발 노하우를 조직과 후배들을 위해 나눌 기회였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후배가 "팀장님 덕분에 막막했던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을 때, 제 마음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장 큰 선물은 가까운 동료의 말이었습니다. "신 팀장님, 요즘 뭔지 모르게 편안해 보여요. 더 여유가 생긴 느낌이에요."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조언은 나를 깎아내리려는 칼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등을 밀어주는 격려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타인의 조언이 불편하게 들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아직 성장할 공간이 남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물론 지금도 제 안의 번역기는 가끔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낯선 신호가 들릴 때, 문을 닫는 대신 창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나를 흔드는 불편한 바람이 실은 나를 더 높이 날아오르게 할 고마운 바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