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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전문가 Sep 13. 2024

인사팀과 같이 살기: 전쟁, 그 이후

#4 소프트랜딩 Soft landing

부부사이에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로, 글로, 또는 무언으로 만들어 둔 무수한 약조들이 있다. 그럼에도 빈 틈을 타 적진으로 돌진하는 단어들이 있다. 어떤 행동은 수류탄처럼 나에게로 와 폭발한다. 때로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일이 미처 소화되지 못하고 대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자리는 폐허가 된다. 싸움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 홧김에 뱉었던 말, 제어되지 않던 표정들이 상처로 남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처럼 비슷한 단어만 봐도 울컥 눈물이 난다거나,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순간에는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어쨌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사과 혹은 사과와 비슷한 액션이 있었고, 둘 다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다시 '좋았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의 회복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전쟁이 끝난 땅에 백화점부터 세울 수는 없듯이, 관계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때에는 다른 형태의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HR에서는 입사자가 조직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온보딩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신입이나 경력직 직원이 새로운 조직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착했을 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활동들이다. 예를 들면 웰컴키트를 선물하면서 환영하는 마음을 전달하거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멘토링을 하거나, 입사 후 30일/60일/90일 교육과 같이 기간 별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러한 온보딩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활용되는 전략이 '소프트랜딩'이다.



소프트랜딩 이란?


소프트랜딩 (Soft Landing)은 비행기가 충격을 최소화하며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의미로 비즈니스 상황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충격이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활용된다.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드랜딩 (Hard Landing)이 있는데, 비행기가 부드럽지 못하게 또는 급하게 착륙하는 상황을 뜻하며,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들어설 때 큰 충격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 온보딩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을 때에는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면 인수인계 서류나 책자를 던져주며 알아서 일을 익히도록 한다거나 저녁에 회식에 끌고 가 술을 진탕 먹이며 우리 조직은 이런 곳이라는 걸 보여주는 곳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입사자들은 단단히 붙잡은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우당탕하는 하드랜딩을 몸소 체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비의 안정적인 착륙을 위해서 체계화된 온보딩 프로그램을 준비해 준다면, 입사자는 회사의 문화와 가치, 업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통해 길을 잃지 않고,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조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프트랜딩의 효과는 결국 업무 효율과도 연결된다.


소프트랜딩의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충격 최소화: 변화나 적응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정서적 충격을 최소화함

2. 단계적 접근: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변화 대신,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함

3. 지원과 안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 지식, 정보 등을 제공함






갈등 후의 부부가 아무렇지 않은 척 죽은 땅을 밟게 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서로 이해한 용서의 정도가 다르거나, 앞으로의 행동 양식에 대한 기대가 다를 수도 있다. 갈등 후의 부부가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려고 할 때,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1. 충격 최소화: 감정적인 충돌을 줄이기

다툼 후 서로의 민감한 감정상태를 인정하고,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기: 객관적인 잘잘못을 떠나, 상대가 느낀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화낸거긴 하지만,) 내가 이런 워딩을 써서 너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 같아. 미안해." 괄호는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시간 가지기: 감정은 즉각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서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상대방은 아직 완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 수 있으니 급히 용서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가 자신만의 속도로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출근을 해서 각자 시간을 보내거나 두통이 있으니 낮잠을 자겠다고 양해를 구해보자. 친구를 만난다거나 PC방을 가겠다는 선택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목적지 설정에는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좋다.


생리적 욕구 해결하기: 배고프거나 졸린 상태는 사람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밥때를 놓치지 말고 충분히 먹고, 자야 하는 시간에는 자도록 하자. 판사가 식사 후에는 너그러운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너그러워질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다.



2. 단계적 접근: 서서히 문제 해결하기

모든 문제를 갑자기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피아노도 바이엘부터 배우는 것처럼, 서서히 회복을 시도한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하기: 예를 들어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문제로 다툼이 시작되었다면, 갑자기 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상호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저녁 메뉴로 무얼 먹고 싶은지 묻는다거나, 그때 만난 친구는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통의 물꼬를 튼다.


작은 변화 보여주기: 작은 배려를 시작하며 한껏 생색을 내본다.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8시에 마치고 집에 왔어. 주변에서 2차 가자고 했는데, 내가 뿌리쳤어. 이런 나 어때? 잘했지?" 다툼 뒤 민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먼저 배려를 보여주는 것은 관계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


기대치 조정하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대치를 점진적으로 조율해 보자. 나는 남편이 12시까지는 집에 들어오길 원하고, 남편은 2시 정도까지는 놀아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라면, 12시쯤 술자리에서 집으로 출발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대신 약속이 늦게 시작하는 경우에는 종료 시간 조율이 가능하다. 정도로 서로의 기대치를 타협해 본다. 한 번에 12시까지 들어와, 그 이상은 안돼! 라고 못 박으려 하면 대화의 장르가 바뀔 수 있다.



3. 지원과 안내: 관계 회복을 돕는 자원 제공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나 정서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회복을 돕는다.


감정적 지원: 감정적인 지원으로 구축된 안정성은 어떤 자원보다 뛰어나다. 따뜻한 말, 위로와 사랑의 표현, 공감하는 태도로 헤집어진 땅을 고르도록 해보자. "어제 나랑 다투느라 많이 피곤했지? 오늘은 퇴근하고 일찍 자자. 내가 청소기 돌릴게." 또는 닭살스럽고 의미 없는 사랑의 언어도 좋다.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네.", "역시 부인밖에 없다." 그냥 한번 실소가 나오고, 우리의 관계가 곤고하고 즐거운 곳임을 확립한다.


전문가의 도움: 갈등이 너무 복잡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나 반복되는 문제로 힘들 때 김창옥쇼처럼 유명한 부부 강연을 함께 시청해 본다. 또는 제 3자의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 부부 상담사를 찾아갈 수도 있다.



갈등 후 소프트 랜딩을 통해 부부는 부드럽고 신중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툼 후 상황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기며 오해를 유발한다거나,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서두르다 다시 다툼으로 번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결국, 부부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약속들은 때로 을사조약처럼 불평등하고, 때로는 책상에 금을 나누는 것처럼 유치한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그 이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 나가느냐다. 서로의 감정과 상황을 인정하고, 서서히 회복의 단계를 밟으며, 정서적 지지와 배려를 통해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다면, 부부는 더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온보딩 프로그램이 새로운 직원의 성공적인 적응을 돕듯이, 관계에서도 소프트랜딩은 갈등 후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갈등이 끝난 후, 관계는 재건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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