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주차]#플랫폼 #공정위 #티메프
안녕하세요. 서진욱 기자입니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대신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플랫폼을 규제하겠다는 정부여당 발표를 두고서 여러 말들이 나옵니다. 당정은 티메프 미정산 사태를 추진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지지 여론이 형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당정이 제시한 플랫폼 입법 규제 방안을 자세히 알아보고, 논쟁이 벌어지는 지점을 꼽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플랫폼 규제 법안이 발의된 지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제대로된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습니다. 올해도 그냥 지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당정, 플랫폼 입법규제 재시동 걸었다
임시중지 명령 도입, 매출의 8%까지 과징금
티메프 사태가 플랫폼 입법규제 재추진 계기?
"후퇴 입법, 졸속 수정"… 찬성 진영 강력 규탄
반대 진영 수긍한 것도 아냐… 역차별, 한미갈등 우려 여전
정부여당(당정)이 플랫폼 입법 규제를 재추진하고 나섰습니다. 당정은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보고한 플랫폼 독과점 및 갑을 분야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추진 방안을 확정했는데요. 공정위는 플랫폼 규제를 위해 플랫폼경쟁촉진법을 제정하겠단 방침을 철회하고, 기존 공정거래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 제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조차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만큼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선회했습니다.
규제 대상을 미리 특정하는 '사전 지정' 방침도 철회하고, 위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판단하는 '사후 추정'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사전 지정이 과도한 규제라는 반대 의견을 반영했죠. 사후 추정하는 지배적 플랫폼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플랫폼 독과점 행위로 규제하는 내용은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가지입니다. 멀티호밍은 자사 플랫폼 이용자가 타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반경쟁 행위입니다. 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 조건을 강요하는 행위는 최혜대우 요구로 분류되죠. 공정위는 플랫폼 기업의 항변권을 보장하되, 반경쟁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입증책임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명백한 반경쟁 행위로 의심될 경우 시정 조치를 부과하기 전 해당 사업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는 임시중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했죠.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의 8%로 설정했는데요.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의 과징금 상한인 6%보다 2%p 높였습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의 경우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10%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4대 반경쟁 행위 금지, 항변권 보장은 지난해 12월 공정위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당시엔 지배적 플랫폼 기준과 제재 수단 및 수위는 밝히지 않았죠. 이번 발표에선 세부 내용을 확정해 사실상 정부 안을 전부 공개했습니다. 공정위 내부적으로 개정안 마련 작업도 마쳤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정이 내놓은 플랫폼 입법 규제 방안을 찬반 진영 모두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발표 시점부터 뜬금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올해 2월 정부는 플랫폼법 초안 공개 시점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의 강한 반발과 한미 통상 갈등 조짐이 포착되자 입법 규제 추진을 잠정 중단했는데요.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정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는 점에 부담을 느껴서죠.
정부는 7개월 만에 입법 규제 재추진에 나서면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의 후속 대책을 함께 내놨습니다. 전 사회적 이슈로 번진 티메프 사태를 입법규제 추진동력으로 삼았는데요. 무분별한 정산금 돌려막기와 적자 영업을 지속한 방만 경영이 티메프 사태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플랫폼 독과점 문제와 엮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티메프 사태급 파장을 일으킨 독과점 사례가 발생한 것도 아니죠. 플랫폼 노동자의 법적 지위 부여와 같은 전반적인 플랫폼 규율 방안 제시로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공정위가 제시한 사후 추정 기준을 적용하면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애플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티메프와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인 쿠팡과 음식점주·라이더와 지속해서 갈등을 겪은 배달의민족은 규제 리스트에서 빠집니다. 이를 두고 플랫폼 시장의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플랫폼 규제 찬성 진영에서는 규제 대상과 방식이 지나치게 축소됐다고 비판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정 안을 후퇴 입법이자 졸속 수정이라고 규탄했는데요.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존에 논의 중이던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지정 규정을 전면적으로 후퇴시킨 졸속 수정이자 규율 대상도 없이 규제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논리적 역설로 얼룩진 누더기"라고 혹평했죠.
민주당은 총선 당시 △플랫폼 입점업체 보호 및 상생 협력 강화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국내외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폐해 방지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입법규제 기반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플랫폼 시장 규율을 위한 새로운 법을 제정하겠다는 뜻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선회한 당정 방침과 배치되죠. 민주당이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권 시절에도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했었습니다. 법안 발의까지 이뤄졌으나 공정위와 방통위 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실제 입법은 무산됐죠.
민주당이 원내 제1당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당정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법안 심사가 이뤄진다면 민주당 의견을 반영해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지거나 민주당이 따로 플랫폼법 제정 절차에 착수할 수도 있죠. 당정에 민주당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는데요. 거의 모든 현안에서 정쟁 중인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연내에 법안 심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곧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플랫폼 독과점 문제가 얼마나 다뤄질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입법 규제를 반대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당정 안에 수긍한 것도 아닙니다. 사전 지정만 사후 추정으로 바뀌었을 뿐 기존에 우려했던 규제 내용은 전부 들어갔다는 불만이 나오죠. 플랫폼의 입증책임을 강화한다는 공정위 방침을 두고선 헌법의 자기책임 원리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요. 만약 정부와 플랫폼 업계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이 이뤄질 수도 있겠죠.
국내 기업만 규제하는 역차별 가능성과 한미 통상 갈등 우려도 여전합니다. 규제 필요조건인 매출 4조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국내 매출을 해외로 돌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행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요. 아직도 구글과 애플, 메타 등 해외 플랫폼은 국내에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공정위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가능성을 어떻게 불식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기업 국적과 무관하게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원칙만 밝혔죠.
앞서 미국 재계는 상공회의소 임원의 공개 성명, 저명 인사들의 반대 입장 표명 등으로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로비 비용을 쏟아부은 구글과 애플, 메타가 규제 대상이 유력하기 때문에 또다시 미국 재계가 완력 행사에 나설 수 있습니다. 11월 대선에서 정해질 차기 정권의 한국 정책에 영향을 받을 변수도 있죠.
플랫폼 규제 문제는 찬반 진영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어 당정이 어떤 내용을 내놓더라도 비판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정이 입법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면 명확한 자기 논리부터 제시해야 합니다. 그 논리에 근거해 가장 효과적인 규제 방안을 강구해야 찬반 진영을 설득할 수 있죠. 불과 7개월 전에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기존 법 체계에서 규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당정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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