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픈 나의 기록의 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드 '겨우, 서른'을 봤다. 드라마를 보며 제목 '겨우, 서른'을 비꼬아 생각했다. '겨우 서른 주제에 뭐 이렇게 인생을 대단하게 받아들여~!', '우리가 '김삼순'으로 서른을 바라보기 시작한 게 벌써 한참 전인데 중국은 역시 사회문화적으로 우리보다 받아들이는 게 늦는구나..!' 구시렁구시렁.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결국 나의 서른도 못지않게 대단한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잊고 싶었던 아픈 기억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팠던 지난날을 자꾸 기억한다는 게 나 스스로를 더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그냥 깊이 묻어두고 없는 듯 새로운 오늘과 내일만 바라보며 살자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이따금씩 감정이 올라와서 나를 괴롭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슬프게도 한다.
20대 후반 학원강사였던 나는 내 부모와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겠다는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했다.
큰 상처는 나에게 후유증과 같은 기억력의 감퇴를 만들었고, 몇 년간 슬퍼했으며, 내 안에 가득 찬 화와 싸우는 동안 지난날의 행복했던 기억, 사람들과의 기억이 많이 지워졌다.
물론 나의 부모님은 만족스럽지 않은 형편에 나와 동생의 대학교육까지 모두 마쳐주시고 유학의 기회도 주셨다. 먹는 것, 입는 것, 따뜻한 집에서 사는 것.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던 보호자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호되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과는 달리 오랜 시간 나의 내면으로는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모였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늘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을 보였고, 엄마는 나에게 늘 아빠 욕을 했다. 특히 엄마는 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자신의 자존심을 구겼거나 화를 돋우면 심하게 때렸고 발로 차거나 따귀를 맞는 일은 일상 다반사였다. 엄마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 나를 향한 지난날의 폭력은 털어놓을 것이 너무 많다.
감사를 잡아먹은 내 안에 쌓인 수많은 분노는 그 20대 후반 어느 날 뻔뻔한 엄마의 태도에 폭발했다.
집안의 가세는 기울어 질대로 기울었고 아빠는 사업이 잘 되지 않자 다른 사업을 해보겠다고 계속 일을 벌이고 있었다. 엄마는 빚을 갚는다고 힘들어했고, 아빠를 늘 한심해했다. 결국 최후의 보루였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갔고 일단 우리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나에게는 당시 목돈 2천만 원 남짓이 있었다. 혹시 내 통장까지 압류될까 봐 이모에게 맡겨두었었다. 이 모두 지혜롭게 처리하겠다는 엄마의 지시였다.
나는 방안 내 책상 위에 앉아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처음 강사일을 시작하며 2년 동안 130만 원 중에 100만 원씩 모은 의미 있는 전재산이었다. '없는 돈이야..'. '없는 돈이야..'.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뇌며 오랜 고민 끝에 거실로 나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 돈... 그거.. 그것도 다.. 써~..."
여전히 내키지 않지만 큰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과 행동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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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