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에세이를 마치며
받아들임.
요즘 나는 이 말을 받들어 산다.
내게 벌어진 일과 앞으로 발생할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요즘은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여즉 건강하게 계시며 부모의 자리를 지켜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 모두 모일 때마다 조카들에게 완전한 가정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가만. 조카들아 왠지 이말을 하기엔 속상하지만 아들들로 나와줘서 고맙다. 할머니가 첫째를 딸을 낳아 증조할머니한테 많은 차별을 받았단다. 지금 할머니는 어딜가나 손자들이 있어 어깨가 으쓱해!)
우리는 각자의 열등감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버텨왔다.
사실 마무리를 하며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었다. 그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모두 지웠다. 온갖 분노와 불평불만 자화자찬으로 가득 찬 쓰레기였다.
2025년 고3들을 대학 보내고 나면 무엇을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2024년 초부터 하루씩 밀리는 싱크대의 설거지를 보며 자꾸만 지쳐가는 나를 계속 걱정했다. (혼자 살며 설거지는 일종의 지표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바닷가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나는 서해의 잔잔한 바다보다 동해의 거친 바다가 좋다. 자연의 야생스러움을 지켜보고 있으면 묘한 희열감이 느껴진다. 혼자 여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해의 한 바닷가에서 딱 1년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매달 나에게 살아갈 연료를 주는 공부방을 쉬면 무얼 하며 먹고사나 걱정이 되어 이 쉽고 수월해져 버린 일을 놓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꼭 한 번쯤 영어영문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대학에 가는 아이들을 보며 문뜩 대학생활이 그리워졌고, 기회만 된다면 영어전공자가 아니라서 갖게 되는 자격에 대한 의구심을 타파하고 싶었다. 캠퍼스생활은 할 수 없지만 나의 어리고 어리석었던 스무 살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서 결국 올해 방송통신대 3학년으로 편입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줄 테니까.
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 늘 개인적으로 갈급하게 여겼던 인문학에 대학 고찰을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해서 의욕을 잃어가던 삶 중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아가 자료도 찾아보고, 정말 오랜만에 교수님들이 시켜서 써보는 약 4장 분량의 보고서들을 마치 변태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아~주 즐겼다.
그렇게 2025년 2, 3분기의 허한 마음을 지식으로 채우고 이제 3학년 2학기가 되었는데~! 사실 브런치는 현재 내 공부 방해꾼이다. 글쓰기만 시작하면 푹 빠져 잠이 확 깨고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아! 이거 써야겠다' 하며 얼른 공부방으로 와 컴퓨터를 켠다. 지금도 새벽 2시 반. 써야 할 보고서 4개가 압박을 해오고 있는데 나는 자꾸 브런치만 켜고 있다.
이제 겨우 사십 대.
요즘은 100세 시대 도래로 앞으로 배우고 살아갈 날이 너무 길어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배움이 느린 나는 지금에서야 지식 쌓기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어 내 사십 대가 소중해졌다. 불혹은 불혹인가 보다.
여전히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오히려 너무 많아서 자중하고, 나에게 값진 아픔과 성장을 주었던 삼십 대를 이렇게 조금은 싱겁게 털어버린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읽어주신 분들 너무 황송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아 나 왜 울지..
.. ...
한참을 울고 왔습니다.
제 정신이 마치 이 글을 끝으로 카키색 누빔외투를 입고 별로 먹은 게 없어 푸석한 얼굴을 한 저의 삼십 대를 정말로 떠나보내려 하나 봅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하러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