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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자가 만난 것들, 마음을 여는 풍경들

by 도심산책자

일주일 내내 비 예보가 있었다.

창밖을 보니 여전히 흐린 하늘. 잠시 망설였지만, 몸을 일으켜 산책길에 나섰다.

익숙한 육교 위를 건너는데 사뭇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남쪽은 파랗게 맑았고, 북쪽은 검은 구름이 잔뜩 끼었다. 육교 위를 건너며 마주한 바람은 시원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새소리가 반겨주었다.

도심 속에서 이런 소리를 누릴 수 있다니.

왠지 이곳을 지척에 두고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초록 숲길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쳐 날아갔다.


조금씩, 내 안의 감각이 열렸다.

이 도시가 이렇게 맑았던가, 이 길이 이렇게 생기를 품고 있었던가.

바쁜 일상 속에 감춰진 ‘감각의 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30분쯤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데크.

지그재그로 난 데크길을 감싸고 있는 버드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그날따라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안녕? 잘 왔어.”


말없이도 따뜻한 환대를 받는 느낌.

마음이 말랑해지고,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세상과 연결되는 감각이 사소하고 조용하게 찾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멀리서 대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연주를 막 마치던 참이었다.

아쉬움에 잠시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한 곡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요청했다.


할아버지는 팔이 좀 아프시다며 쑥스러워하셨지만,

내가 운동하는 틈에 다시 연주를 시작해 주셨다.

대금 소리 사이로 지나온 바람, 그리고 하늘, 까치, 그리고 버드나무가 한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온전히 감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마주하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한강이 주는 특별한 선물을 받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그 특별한 선물의 향연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왜 일상적인 공간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졌을까 생각했다.

그 시작은 바로 코칭 대화였다.

시험 준비를 위한 대화였지만, 나는 ‘진짜 도움’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

진심을 선택하자, 나도 편안해졌다.

그 여유가 감각을 깨우고, 마음의 문을 열게 했던 걸까.

산책길의 하늘도, 버드나무도, 대금 소리도

마치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진심은 마음을 여는 열쇠다.

진심은 감각을 깨우고, 공간을 선물한다.

오늘 나는 진심이 깨운 그 공간 속을 걸었다.


도심 한복판에 조성된 정원.

이곳에서 누릴 수 있을지 몰랐던 감각이 내가 '도심산책자'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처럼 다가온다.

아주 깊고 평화로운 곳을 지나온 듯한 하루였다.

나는 오늘 도심산책자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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