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코칭 후 복기를 한다. 코칭에 몰입했을 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을 복기를 통해 다시 보고 다시 듣는다. 듣다 보면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했었구나'. '이 말이 뒤에 나온 이 말과 연결되는구나.'
고객은 대화 중반부 즈음에 “그냥 걸어”라는 말을 했다. 낯선 말은 아니었다. 이미 스스로에게 여러 번 해주었던 말, 때로는 반복해서 떠올렸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나도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같은 말이 후반부에 다시 등장했을 때였다. 그 순간, 고객의 목소리톤과 에너지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미 자기 안에 있던 말인데, 왜 이번에는 에너지가 폭발했을까?
그리고 뒤이어 '편안하다'라고 고백했을까.
돌아보니 그 차이는 맥락과 타이밍에 있었다. 초반의 “그냥 걸어”는 머리로 아는 말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의 “그냥 걸어”는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해 요소를 탐색한 후, 자기 언어로 선언하는 과정 속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리듬과 맞닿은 자기 선언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고객의 자원이 되었고, 그 자원은 곧 자유와 편안함으로 이어졌다.
아침 출근길에 읽은 이세돌 9단의 인터뷰가 겹쳐졌다. 그는 바둑을 “추상 전략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바둑이 다른 게임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 다른 게임은 기물이 놓여 있지만, 바둑판엔 아무것도 없다. 추상의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그 추상의 공간에서 전략을 세워 상대와 싸운다. 바둑이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는, 어려워서다. 배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바둑은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게임이다.”
생각해 보면 코칭도 추상과의 게임일 때가 많다. 그래서 광활한 우주에 놓인 것과 같은 막막함에 놓이곤 한다. 바둑과의 차이는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싸움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코치인 나는 광활한 그 추상을 공간에서 감각을 총동원하여 고객과 함께 탐색해 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망설여지고,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이 존재하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 세션에서 배운 것은 조금 달랐다. 추상을 억지로 구체화하기보다, 고객이 스스로 붙잡을 수 있는 언어와 순간을 포착하도록 돕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라는 것.
“그냥 걸어”라는 말이 그저 스쳐가는 말에서 삶을 이끄는 자원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었다.
코칭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건넨다. 이번 도전은 추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고객이 자기 목소리를 만나는 순간을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다시 한번 '코치로 산다는 것'의 깊은 매력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