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방법엔 제한이 없다

내가 만났던 다양한 잡초들로부터 배운 것

어릴 때 학교 선생들이 했던 발언 중엔 이런 게 있다.


바로

"니들 공부 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못 가면 낙오자 된다??!, 노가다나 청소 같은 천박한 일 하며 산다?!?"

같은 소리다.


와 비슷한 류의 말을 꽤나 많은 선생들이 해댔다. 특히 좋은 대학교 사범대를 나와 교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X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들이 그런 얘기를 가감 없이 애들 앞에서 해댔다.


어린 학생들은 그런 얘기에 세뇌돼, 스스로 세상을 경험하기도 전에 그런 얘기가 진실인 줄만 알고 공포에 젖어들고, 아무 생각 없이 공부에 몰입하게 다.


어릴 때의 나도 그랬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그때 선생들이 했던 얘기들이 일견 맞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학교를 졸업했다. 특별히 좋은 대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대학이다. 물론 그 학벌 덕에 이후 사회적으로 다고 하는 직군의, 높은 연봉을 주는 직장을 다닌 적도 잠시 있지만, 사실 그전부터 대학교 졸업 후 노가다,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최근까지도 노가다 및 배달 등 일을 하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못 가면 천박한 일 한다던 X86선생들의 말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획일적인,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였다. 일단 그들이 살던 시대와 내가 사는 시대는 엄연히 다르다. 나 때는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교를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았고, 더욱이 X86세대가 윗선을 점령한 직장이란 곳은 각종 악폐습과 노예 문화로 점철돼 있어, 지금의 MZ세대가 겪는 성장통은 더 심해졌다. 그래서 좋은 직장을 들어가도 미련 없이 관두는 20~30대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꽤 차고도 아르바이트 등 근로 노동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 선생들 말과 달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세속적으로 흔히 말하는 '천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험한 일을 할 확률이 낮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했으면, 규율을 잘 따르며 모범적인 편이고 책상에 붙어 있는 일을 선호하기에, 아무리 X86세대가 일궈놓은 노예 문화 직장이 힘들더라도 거기 붙어서 돈을 벌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잡초적 인생 역정을 살아가야 하는 팔자는 어떻게든 개 같은 노력으로 혼절할 정도로 수능을 공부해 뒤늦게나마 대학교에 입학했더라도, 애초에 온실 속 화초가 어울리는 직장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그러면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나오고도 노가다나 배달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거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먹고사는 방법엔 제한이 없다, 는 것을 점점 깨달아간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성격대로 기질대로 인생을 살면 된다. 어떤 대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스펙을 지녔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자기 기질대로 자기 앞가림하며 살면 된다. 누군가 내게 일찍이 그렇게 가르쳐줬으면 좋았겠지만, 이런 얘기를 제대로 해주는 어른은 많지 않았다. 그저 혼자 깨우쳤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고교 졸업- 대학교 입학&졸업- 취업 - 결혼 등 마치 정해진 테크트리를 사회적 평균치에 맞는 나이대에 이뤄내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진단을 내리고 가혹하게 돌팔매 짓한다. 적어도 20대 후반엔 대기업은 들어가 줘야 하고, 30대 초중반엔 결혼이라도 '억지로' 해야 한다. 왜? 남들 시선 때문에. 체면 때문에. 내가 낙오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


하지만, 사회적 평균치는 있을지라도, 각자 인생을 돌아보면 그 평균치라는 것은 각자 인생에 전혀 쓸모없는 통계 자료에 불과하다. 40대에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50대에 대학교를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평균치가 아닌 과정에 있는 경우는 늘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데 은 사람들은 평균치에 맞춰 남 눈치를 보고 체면을 차리려 한다. 모든 불행이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간 사회에서 겪으며 직접 만난 사람 중에 그런 평균치를 벗어나 자기 삶을 개척해나갔던 인물들을 알고 있다. 먹고사는 방법엔 제한이 없다는 얘기가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다. 다음은 이들에 대한 얘기다.




1. 내가 20대 초반, 홍대 근처에서 음악 하던 시절의 얘기다.


당시 홍대 라이브클럽 중, 한 곳의 사장(男)은, 덥수룩한 머리와 길게 기른 수염으로 마치 외모가 노숙자에나 어울릴법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불명이지만, 대략 30대에서 많아야 40배 초반은 됐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괴상한 애니멀한 외모와 '기인'같은 풍모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홍대 인근 건물의 지하 1층에 월세를 내며 라이브클럽을 운영했다. 거기서 목, 금, 토, 일 저녁 2시간 정도 홍대 인디밴드나 솔로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을 치렀다. 하지만 2000년대 당시에도 인디음악은 소수들만의 전유물이었고,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1인당 10000원~15000원 하는 표값으로는 라이브클럽 운영도 쉽지 않았다. (한 회 공연에 0~2명 정도의 유료 관객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라이브 공연 외 시간엔, 노가다를 뛰었다. 노숙자나 노가더 처럼 보이는 풍모는 사실, 사실이기도 했던 거다. 진짜 노가더니까 그런 야생스러운 분위기가 풍겨졌던 거다.


어릴 때의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좋았다. 그는 나를 부담스러워했던 거 같지만, 나는 그런 그를 조금은 동경했던 듯싶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내고야 마는 그의 모습이, 각종 사회적 평균치 잣대를 들이미는 일반적인 어른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 일대에는 그 사장을 따르고 추종하는 뮤지션들도 많았다. 격렬한 내적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 찼던 내 20대 초반 시절에, 기인 같던 그의 모습은 내게 마치 청량한 사이다 같았다. 그렇게 그는 아직도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2. 다음으로는 백수였던 20대 후반 시절 얘기다.


당시 다니던 직장을 대책 없이 때려치우고 무작정 홍대 근처 고시텔로 들어갔었다. 당시는 다시 음악을 하고 싶었었다. 아직 낭만이 남아있던 때였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홍대 인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당시 가게의 사장은 키가 190cm가 넘는 거구의 남자였다. 한 번은 여러 문제로 그와 싸운 적이 있었다. 거의 몸싸움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을 걸쳐 거구인 자신에게 그렇게 싸움을 걸어오는 남자가 별로 없었던 모양인지, 그서 몸싸움을 불사하는 나를 남자로서 인정한 것인지,


싸움 이후 내게 자신의 사업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사업 비법이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당시 30대~40대초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도 돈이 없어?(잘 기억나지 않는다) 진학을 못한 이유로, 결국 고졸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뭐든 일을 하다, 결국 그렇게 해선 답이 안 나겠다 싶어 권리금 장사의 세계로 뛰어들게 됐다.


그게 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여전히 지금도 우리 주변엔 식당 등으로 권리금 장사하는 인물이 많을 것이다. 제법 식당을 키운 이후 권리금을 높여 파는 식으로 재산을 불리는 방식이다.


그 사람도 특정 업종(뭔지는 비밀이다)을 정해 권리금 장사를 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 세계를 잘 안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엔 근로 노동으로 번 몇백만 원 전재산으로 어쩌다 홍대에서 가장 허름한 공간을 권리금을 싸게 혹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이 부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를 청소하고 꾸며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권리금을 세게 불러 팔게 됐는데


그 이후로 그는 권리금 장사에 눈을 떠서 그런 식으로 계속 재산을 불려 갔다. 그리고 나를 만났던 당시 그렇게 홍대에서 가게 3개 정도를 운영하며 달에 몇 천씩 버는 사장이 된 것이다.


그런 얘기를 내게 해줬다. 왜 그런 얘기를 내게 해 준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추정할 뿐이다. 어쨌든 그는 그런 얘기를 하며, 이런 말도 덧붙였다.


"모든 걸 걸고 했어"


정확히 이 워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사실 권리금 장사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자칫하면 법적인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기에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한 유명 유튜버도 권리금 문제로 감방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도 그런 리스크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했다. 나이는 먹고 고졸에 별 기술도 없이 몸과 패기만 있던 그는, 그렇게 삶의 여러 경계에서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했고 결국 살아남아 사장으로 월 몇 천 씩 땡기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보다 훨씬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내게 해 준 그런 얘기들이 사실 그렇게 특별한 비법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권리금 관련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얘기다. 하지만, 그 20대 후반 당시의 나는 그 사람이 보기에 그 생리를 전혀 모르는 '애송이' 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직장을 퇴사하고 '호일펌'을 한 머리로 마치 천둥벌거숭이처럼 다니던 내 모습에 그는 처음엔 한심하게 보다가도, 자기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패기에 '마냥 송이는 아니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생에게 말하듯 어르고 타이르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사업 팁까지 내게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3. 그 후 또 세월이 흘렀다. 30대 중반쯤 나는 정규직 직장을 다니다 퇴사하고 악화된 건강을 치유하며 덜 스트레스를 받는 배달 등 일을 했었다. 그렇게 몸으로 때우는 근로 노동을 할 때 알게 된 사람은 40대 남성이었다.


그는 40대 나이가 무색하게 매우 동안이었다. 학벌도 좋았다. 딱 봐도 공부를 잘했을법한 범생이 같은 느낌이다. 공대 출신인 그는, 공기업에 입사했다가 1년 정도만에 퇴사했었다. 너무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쇼핑몰 사업을 했다가 망했다. 이후 그는 주식 투자를 전업으로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생활비 및 시드머니 확보 등을 위해 청소 일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당시 그는 장기투자 명목으로 넣어둔 주식을 틈틈이 살피면서도 하루 종일 청소를 해서 월에 300만원씩을 벌고 있었다. 그 청소 일은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사람 스트레스 없이 혼자서 조용히 설렁설렁 일 할 수 있. 지금 표현으로 치자면 '개꿀 알바'다. 다만 최저시급이어서 오전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2개 정도 일을 해야 겨우 300만원 정도가 채워졌다. 그는 그렇게 1년 해서 돈을 모으고 또 일을 관두고 다시 주식 전업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혼에, 정규직 직장도 다니지 않았지만,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 신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갔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다 불안과 걱정, 혹은 남모를 사정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볼 때, 그는 불안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기 신념대로 뚝심 있게 살아갔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하겠다.


이런 사례들을 얘기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현재 내 삶에 큰 자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나는 다수의 사람들은 흔히들, 평균치의 잣대를 들이밀고 거기에 못 미치는 인간에겐 낙오자, 도태자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세상엔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꼭 정규직 직장을 다녀야, 혹은 반드시 삐까번쩍한 사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감명 깊게 봤거나 작더라도 내 마음에 울림을 줬던 인물들은 대개 그렇게 사회적 편견이나 잣대를 벗어나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릴 땐 그저 동경하거나 바라보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내가 바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래야 하는 입장&상황이 된 것이다.


이젠 단순히 세상을 학습하는 의미에서 그런 인물들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잡초처럼 현실적 제약과 편견에 맞서며 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과거 내가 만났던 이들이 전부 나의 스승이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렇다.


먹고사는 방법엔 제한이 없다.


중요한 건 내 의지와 존엄을 지켜가며 주체적으로 사는 것란 걸,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해당 글은 2019년 12월 ~ 2023년 12월 기간 동안, '최해룡'이란 채널명(필명)으로 썼던 브런치 콘텐츠입니다. 2024년 2월 브런치 채널명을 <신흥자경소>로 바꾸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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