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설(申興社說)]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5년 12월 12일(오후 7시 20분) 올라온 콘텐츠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아마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필자는 축구보다 농구에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재학 중이던 중학교 내에선 이미 어느샌가부터, ‘농구부’라는 취미동아리 같은 게 생겨있었다. 이를 통해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들끼리 무리를 지어 농구를 하고 있었다. 한 체육선생이 그 농구부를 맡아 이끌었다. 나름 공식적인 동아리였던 셈이다. 농구부 소속 아이들은 “누가 가장 (농구를) 잘하네 못하네” 따위 얘기들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서열을 나눴다.
나는 그 농구부 소속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 운동신경이 있고 농구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랬던 만큼, 그 농구부라는 존재가 어린 마음에도 좀 꼴같잖아 보였다.
‘자기들끼리만 농구 서열을 정한다고? 흥! 웃기고 있네!’
쯤의 생각을 했던 듯싶다.
실제로 당시 필자는 친한 아이들 사이에서 제법 농구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심지어 같이 농구하던 1년 아래 ‘아는 동생 A(男)’는 당시 근방에서 필자가 가장 농구를 잘한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을 정도였다.
그게 농구부 귀에도 들어갔던 걸까. 어느 날 농구부 소속 G(필자와 동갑) 등 몇 명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농구부에 들어오지 않을래?”
처음엔 고사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농구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첫 농구부 훈련 날, 농구부를 맡은 체육선생 지도하에 아이들이 돌아가며 ‘레이업 슛(lay-up shoot)’을 하는 훈련을 했다. 내 레이업 슛을 본 체육선생은 “그래, 저렇게 하는 거야, 폼이 아주 좋다”라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초반 훈련 때까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전에 가까운 ‘반코트 시합’ 때 일어났다. 농구부 아이들끼리 팀을 나눠 점수 내기를 하는 시합이었다. 그 경기에서 필자는 이상하게도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딴에는, 기존 농구부 애들의 텃세가 큰 이유로 여겨졌다. 농구부 애들이 기존에 자기들끼리 하던 것에 익숙했는지 아니면 은근히 나를 견제하려던 것이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내겐 패스도 잘 오지 않았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필자는, 친한 아이들 사이에서 마음 편히 농구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위화감을 느꼈고, 그에 따라 몸은 점점 더 굳어갔다.
그 모습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던, 당시 나와 친했던 한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는 우리끼리 하면 정말 잘하는데, 농구부 애들이랑 하면 실력 발휘가 잘 안 되는 거 같아. 왜 그러지?”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그만큼 누가 봐도 당시 나는 농구부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 농구부 훈련에 참여했던 나는, 이후 점차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농구부 안에서 이방인처럼 겉돌던 자신의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불쾌하게 느껴졌던 걸까. 나를 견제하는 듯한 농구부 애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더 솔직해지자면, 당시 필자의 실력 부진은 단지 그들의 텃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내심 알고 있기는 했다.
일반 아이들 사이에선 별 노력 없이도 제법 잘하던 필자는, 평균 운동능력이 더 좋은 농구부 애들 사이에선 실력 향상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는 걸, 본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거다. 설사 텃세를 부리는 애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면이 컸다 할지라도, 따지고 보면 그 심리싸움·사회성 등도 전부 실력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어린 나이에도 그러한 자신의 실력부족·나약함 등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당시 어린 나는 이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전체(선생+학생들)가 국내 한 유명지로 여행을 가던 날이었다. 내게 농구부 입부를 권유했던 동갑 G와 어쩌다 동행하게 됐다. 그 아이는 이미 농구부 카르텔의 핵심멤버 중 하나였다. 그와의 동행은 당시 농구부 경쟁에서 밀렸던 나로선 유쾌할 리 없었다. 애초에 G와 친한 사이도 전혀 아니었다.
그 아이와 잠깐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필자는 괜히 ‘농구부에서 밀린 분한 마음’을 그 아이(G)에게 화풀이하면서 유치하게 뻗대고 싶었던 것인지, ‘치기 어린 말’을 마구 쏟아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그래도 내(필자)가 학교에서 제일 농구를 잘한다”
는 듯한 뉘앙스의 내용이었다. 심지어,
“너희 멤버 중에 OO(누구누구)는 이러이러한 부분을 못한다”
라고 말하며 억지웃음으로 키득키득거리기까지 했다. 추하게도, 무너진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농구부 애들을 까내리는 얘기를 쏟아낸 것이다.
처음엔 그렇게 배설된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듯하던 G는, 결국 참기가 어려웠는지, 필자에게 가감 없이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일갈(一喝)을 퍼부었다. 이 역시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네가 뭘 잘한다는 거냐, 아무도 네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걸 혼자 떠들고 있냐, 자기가 뭐 대단할 줄 알고 있어?!”
라는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일갈하고 떠난 G는 다시는 필자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필자는 잠시 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하게 구는 본인의 모습을 드디어 자각했던 걸까. 그리고 찾아온 감정은 난생처음 느끼는 성질의 것이었다.
오묘한 것은, 당시 필자에게 일갈하고 곁을 떠난 G를 이후 우연히 마주친 필자의 표정이었다. 분명히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했으니 G를 향해 불쾌해하거나 경멸하는 등 부정적인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본인 스스로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감화(感化)된 듯한 기운이 얼굴에 온화하게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치기 어리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되지 않던 내게, 어쩌면 G가 냉정하게 현실인식을 시켜준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자기 투정이나 치기를 모두 받아주는 사람에겐 함부로 대할 가능성이 올라가지만, 분명하게 내 잘못을 꾸짖어 주는 사람에겐 오히려 경외심을 느끼기도 하는 법이다. 물론, G가 당시 우리 동년배 사이에서 대단히 특출 났다거나, 필자 인생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거나 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짧게 스쳐 지나가는, 지금은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는 흐릿한 이미지로 남은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G의 그 ‘일갈’만은 필자에게 있어 난생처음으로 냉정한 자기 위치를 깨닫게 해 준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G는 그저 자기 입장에서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는 필자’에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것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일갈이 당시 내게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약’이 돼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필자의 조상이 그 아이 입을 빌려 약이 되는 쓴소리를 해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후 필자는 어떤 영역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내 위치가 어딘지를 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됐다. 그 일갈이 필자로 하여금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 썼던 글(메타인지한답시고 기세를 죽이진 말 것)의 내용처럼, ‘지나친 자기 객관화’라는 함정에 빠져 극도로 위축되는 것을 경계하는 자세도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 글에선, 일단 자기 위치나 레벨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자기 객관화가 기본적으로 항상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 기반 위에서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인지, 내 눈앞의 적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 등에 대한 전략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즉, 신흥자경소의 주장은 냉정한 자기객관화라는 기반 위에서(a), 전략을 세우고 기세를 유지한 채 나아가야 한다(b)는 것이며, 단지 이전 콘텐츠(메타인지한답시고 기세를 죽이진 말 것)는 (b)에, 이 글은 (a)에 방점을 뒀을 뿐이다.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내’가 자신에게 가장 냉정한 조언을 직설적으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쓴소리를 제대로 해주는 존재는 점점 사라져 가기 마련이다. 스스로 냉정한 객관화를 하지 못하면 점점 추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말(허세) 뿐이 아닌 진짜 실력을 키워나가려면, 삶의 모든 과정에서 객관화된 내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발전을 위해 ‘내’가 본인에게 가장 냉철한 비판자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묵묵히 전략을 짜고 그에 맞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 조금씩이라도 하루하루 쌓여 가면, 나름 ‘최고 버전으로 발전해 가는 나’를 매일 스스로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객관화한 자신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그 ‘발전 과정’에서 쌓아 올린 ‘자존감’으로, 쉬이 꺾이지 않는 기세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의 승부를 가를 추진력·행동력·의지·전략·기세 등도, 결국 철저하게 내 기질·성향·성격·체질·위치·레벨 등을 종합적으로 객관화한 인지력을 기반으로 할 때 더 탄탄하고 강력해질 수 있다.
G의 단호하고 잔인한 일갈을 가끔 떠올린다. 그리고 이젠 매번 스스로 그와 비슷한 일갈을 본인을 향해 쏟아내기도 한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다. 언제나 발전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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