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받아서 고통스러워요”

[신흥(申興)Q&A]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6년 1월 9일(오후 7시 20분) 올라온 콘텐츠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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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자경소] 어느 시공간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질문이 도착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질문 : 주변으로부터 오해받고 있습니다. 계속 이상한 소문에 휩싸이고 주변 사람들은 그 소문이 진짜 제 모습인 줄 압니다. 초기 대처를 못했고 해명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답 : 결론부터 말하자. ‘오해’라는 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그 오해의 괴상함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기에 오해를 받게 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들로부터의 오해는 매우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내(필자) 경험을 예로 들어볼까. 벌써 20여 년 전 얘기다. 고등학생 때 필자(男)는 주변으로부터 ‘동성연애자(게이)’로 오해받았었다. 잠시잠깐 그랬던 것도 아니다. 3년 내내 꽤 다수로부터 그랬다. ‘학년이 올라가 반이 새롭게 편성되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으나, 아니었다. 소문은 날개 달린 듯 퍼져, 새롭게 편성된 반에서 새로 만난 아이들 귀에도 들어갔다. 분별력이 있는 애들은 선동되지 않고 나름 판단을 내려 그 소문이 거짓인 걸 알았지만, 쉽게 휩쓸리는 애들은 그걸 진짜라고 믿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내내 나는 늘 ‘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동성연애자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아닌 걸’로 ‘오해’ 받았다는 게 포인트다.


왜 대처를 못했냐고? 나도 당신과 비슷했다. 괴상한 오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누구의 입에서 시작됐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지만,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내 사정을 얘기하거나 해명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실상 그 소문에 대해 내게 직접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직접 내 앞에서 언급하는 애들이 한두 명 정도 있긴 했었으나, 그 애들은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아는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춰서 그렇게 티를 낸 것이기에 필자가 달리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밖에 소문을 사실이라 믿는 애들에게는, 그들이 내 앞에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기에 해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풍문의 흔적과,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행동거지를 통해 그 소문이 상상 이상으로 퍼졌음을 점차 알게 됐던 거다.


소문을 그대로 믿는 애들은 내 사정을 이해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 소문을 ‘향유’할 뿐이었다. 그저 악의적인 누군가의 공격으로 생겨난 그 소문은 선동이 잘 되는 애들 사이에서 거의 기정사실화돼버렸다. 내향적인 성격에다 말이 없던 필자는, 그 소문에 대해 나름의 항거를 해보려고도 했었으나, 당시 경험 없고 미숙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이라면, 오해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 소문은 사실이 아냐”라고 당당하게 소리쳤겠지만, 당시 너무 어리고 미숙했던 필자는 그저 그 오해를 감당하며 마음에 상처를 받아야 했다.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던 20대 초반 때에도 가끔 ‘남색가’들이 꼬이는 등 이상한 일들은 계속 벌어졌었다. 다만 그땐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상처가 되기보단, 어색한 미소만 지어졌었다. 그리고 그냥 내 ‘매력’이 과도해서 그런 것이라고 웃어넘기는 여유도 차츰 생겨났었다.


그러다 그 오해의 상처가 완전히 극복된 건, 남자치고는 여리여리하고 예쁘장하던 외양의 필자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수년에 걸쳐 ‘멧돼지’ 같은 모습으로 거듭나면서부터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행동해도 게이로 오해받기 어렵게 돼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멧돼지의 몸으로 살던 30대 때엔 또 다른 오해가 발생했다. 직장을 다니다 건강이 나빠져 퇴사를 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던 때였다. 직장인 시절 지인들 사이에서 필자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났었다. 황당하긴 했지만, 그땐 헛웃음도 나지 않았다. 어쩌다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알 법 했지만, 굳이 사람들을 찾아가 해명하지도 않았다. 상처가 됐거나 기분이 나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한참 먹다 보니 드디어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남이 나를 완전히(100%) 이해하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는 걸 말이다. 타인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쩌면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세속적인 잣대나 외모·기운·통속적 개념 등으로 나를 파악하려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오해라는 게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 오해가 진실이든 아니든 그저 가십거리로 향유할 뿐이다. 대중들이 연예인들에 관한 황당무계한 소문을 사실이든 아니든 이리저리 말로 옮기며 유희하듯 말이다.


그런데 꼭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유명스타만 그런 황당무계한 소문에 휩싸이는 게 아니다. 필자 사례처럼 일반인들도 자기 바운더리 내에서 괴상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제법 많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그런 오해를 잘 받는 기운을 타고난 자들이 실제로 있다. 남들보다 존재감이 크고 매력적인 기운이 넘쳐날수록, 이상한 소문에 휩싸일 확률도 올라간다. 그런 부류는 직업만 연예인이 아닐 뿐, 실상 주변인들 사이에서 거의 연예인과 가까운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처럼 ‘주목도 높은 부류’만 오해를 받느냐. 아니다. 타고나기를 존재감이 거의 없는 부류조차, 어떤 특정한 시기에 다다르면 ‘관심을 잘 받는 사람들’만큼은 아니어도 유독 이상한 소문과 오해에 휩싸이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매력, 주목받는 성질 등이 차이가 나는 걸 떠나, 사람의 인생에서 ‘좋지 못한 시기’엔 유독 더 이상한 소문이나 오해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운 나쁜 시기’엔 누구라도 이상한 오해에 휩싸일 수 있고, 타고나기를 주목 잘 받는 부류는 더 심한 ‘구설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오해를 받는다. 어쩌면 인간세계에서 오해라는 건 늘 일어나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위 사례에서 필자는 피해자인 척만 했지만, 실상 나조차도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그 잣대로 상처를 줬던 적이 있다. 오해로 인해 작지 않은 상처를 받았던 나라는 인간조차, 다른 상황과 시점에서는 다른 이를 ‘내 괴상한 인지력과 잣대’로 할퀴었던 거다.


그렇게 누구나 피해자일 수 있고, 누구나 가해자일 수 있다. 가능하면, 내가 피해를 받았더라도 다른 이에게는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서 행동하는 게 좋지만, 세상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만 되랴. 세상 속에서 ‘때 묻은 편견’과 ‘선입견’ 등으로 무장하는 게 그나마 확률상 본인을 지키는 법이라고 깨달은 ‘어른’들 사이에서는, 늘 가차 없이 서로 간에 오해하고 얕잡아보고 또는 두려워한다.


좀 가벼운 사례를 얘기해 볼까. 누군가 필자에게 가끔 “뭐 하고 지내는지” 근황을 물어보길래 솔직하게 답했었는데, 몇 달 뒤 그는 이상한 딴소리를 해댔다. 한 번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분명 그가 근황을 물어볼 때마다 필자는 매번 “A를 하고 있다”고 답했었는데, 그는 늘 시간이 좀 흐르면 여지없이 “B를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심지어 그 B라는 건 필자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는 얘기다. 필자가 그렇게 얘기를 했을 리 없고, 분명히 “A를 하고 있다”고 누차 말했었지만, 그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계속 딴소리를 했다.


이렇듯 타인은 인지력의 한계로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혹은 일부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을 자기 식대로 오해하여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정사실처럼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혹은 마음 그릇이 넓지 못한 부류 중에는 상대의 ‘장점’이나 ‘진취적으로 사는 모습’을 내면에서 받아들이기 싫어서 일부러 곡해해서 상대를 부정적인 프레임에 가둬두려 하기도 한다. 그래야 그나마 찌질한 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런 별별 인간들 속에서 섞여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처세를 잘해도 오해는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도 당분간은 처음 겪는 ‘오해로 인한 상처’ 때문에 마음이 힘들겠지만, 계속 심상을 가다듬고 정진해서 언젠가는 세상의 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그 모든 오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부로서의 내가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소문에 대항할 여유와 힘이 있거나, 해명할 기회가 있는데도, 무작정 그 소문을 그대로 둔 채 감당하고만 있으란 얘기도 아니다. 그 소문이 본인에게 실질적 피해로 작용한다면,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연예인들이 악플 고소에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가볍게 웃어넘겨도 될 일이면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상책일 수 있지만, 그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일이고 본인이 이를 바로잡을 힘과 여유가 있다면 적극 대처해도 좋다. 그저 이 글은, ‘오해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에 아파하고 신음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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