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연극 <진홍빛 소녀> 관람 후기

은진이를 너무나도 안아주고 싶었다

by 작사가 신효인


어제 김포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진홍빛 소녀>를 보고 왔다.


여러 의미로 벅차고, 많은 생각이 드는 극이었다.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치정극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방관조차 죄가 된다'는 문장을 포함한 연출 노트를 보고서, 극의 메세지와 그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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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이 없었던, 여전히 없는 은진이를 보는 내내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진이가 이렇게 사는 게 지겹다며 악을 쓸 때는,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무력감으로 20년 넘게 버텨온 그녀의 삶이 너무.. 슬펐다. 무력감은 말 그대로 '힘이 없음'을 의미하는 건데 그녀는 그 무력감으로 삶을 버텼다. 그 버티기는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을까.

그런 18살의 은진에게 이혁은 심정적으로 한 줄기 희망이자, 붙들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은진의 슬픔에 공감한다고 해서, 이혁을 쉬이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이혁은 은진에게 약속했던 순간에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결과-책임이 무섭게 느껴질 나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은진이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이혁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극을 보는 내내 윤리 의식과 이해의 마음이 부딪혔다. 지킬 게 생긴 혁과, 지킬 게 없는 은진의 상황 차이도 안타깝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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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정말 지독하게 맞았다. 2~3시간을 일진들에 의해 이 골목, 저 골목에 끌려다니며 맞았다. 마지막 골목에서 맞고 있을 때, 한 아저씨께서 일진들에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셨다. 호통은 아니었다. 잠잠한 물음이었다. 애들은 비아냥대는 투로 '뭐가요?'라고 답했다.

> 뭐 하는 거냐고. 애를 하나 구석에 세워놓고 복싱하듯이.
> 복싱이 뭔데요?ㅋ
> 지금 니들이 하고 있는 게 복싱이야.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울면서 말했다. 애들에게 두드려 맞았다고. 매일 맞고 있다고.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 걸쳐 겪었던 길고 긴 학교 폭력이 끝난 날이었다.

어린 내게도 안전가옥이 없었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또래로부터 공포와 굴욕을 겪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달려가서 안길, 안전하다고 느끼는 품이 당시 내겐 없었다.

그분이 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거나, 아이들을 뜯어말리거나, 호되게 혼내거나, 경찰에 신고해 주셨던 게 아니다. 저게 다였다. 그런데 일진에게 뭐 하냐고 물은 그분의 관심과 용기가 나에게 트리거가 되었던 것이다. 벗어나야겠다고,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도와줄 사람이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기억이 떠오르면서, 극의 메세지를 좀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은진에게 필요했던 건 그녀를 입양하거나, 그녀의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는 등의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은진의 곁에 가볍게 놓아줄 수 있는 정말 한 토막 정도의 '관심'이라는 것을. 그 '관심'은 내 삶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삶을 바꿔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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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진홍빛 소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하고자 했던 건 '관심'이었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은, 인사나 가벼운 질문 정도여도 되는.

나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고 있는가?

내 삶이 버겁다는 이유로, 신경 쓰이지만 외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극의 메세지는 '자신을 우선 위하고 지키는 것'과 '타인에 대한 무심함' 그 사이를 줄타기하는 심정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깨어나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래. 깨어있어야겠다.


좋은 연극을 봤다.

배우분들의 훌륭한 연기는 이만큼 몰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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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이 스스로 옷을 벗는 장면은 꼭 필요했는가? 설득력을 가지는가?


(오른쪽부터) 사회자, 한민규 작/연출, 은진 역 김시영 배우, 이혁 역 김형균 배우, 10대 은진 역 홍산하 배우, 10대 이혁 역 이은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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