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관한 수다 #2
둘째가라면 서러운 빵순이 여기 있습니다아-!
난 빵이 무척이나 좋다.
스스로 '뭐 이렇게까지 좋아하나' 싶을 만큼.
빵은 부드럽고, 포근하고, 쫄깃하고, 바삭하고, 고소하고, 달달하고, 짭짤하고 갖은 매력을 다 가지고 있다. 한입 입에 넣으면, 히히 너무 신이 난다. 탄수화물이 주는 순간적인 에너지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그 풍미가 날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빵을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우선, 베이킹 재료를 살 때부터 들뜬다. 진열대에 있는 녹차가루를 집으며, '히히히 말차초코 파운드케이크라니, 너무 맛있겠다 히히히' 요런다. 장을 보고 와서 베이킹 재료들로 가득 채워진 선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설레는데, 주말에 자기들이 쓰이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재료들이 귀엽기도 하다. 저 재료들로 빵을 만들 생각에 심장이 두근세근네근.
아무도 없는 주방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대에서 전자저울로 재료들을 계량하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하다. 버터를 크림화하고, 초코 가루와 녹차 가루를 채 쳐서 넣고,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어 원하는 디자인으로 짜는 등 이러한 베이킹 과정들은 행동반경을 1m 이상 요하지 않는다. 작업대 앞에 서서 혼자 사부작사부작 바쁜 그 시간은 나를 많은 생각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다양한 촉감과 향으로 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나만의 아기자기한 햅-삐 타임이다.
그리고 어떤 빵을 만들지, 어떤 재료를 쓸지, 내 취향에 맞춰 계량은 어떻게 할지,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몇 도로 얼마나 구울지 등 모든 걸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는 베이킹은 내 안의 에너지를 채워주곤 한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고, 원하는 걸 손수 만들어내는 이 작업은 내가 꽤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해 준다 :)
훌륭한 맛과 풍미를 선물해 주는 완성된 빵도 좋지만 아직 미완성인, 만들어지는 중인 빵(반죽)에도 좋아하는 포인트들이 있다. 식빵을 만들 때는 여러 차례 반죽을 쉬게 해 주며 작업해야 하는데, 반죽을 쉬게 해 주고 방에 들어가서 글을 쓰다가 나와보면 뽀잉 뽀잉 커져있는 반죽이 무척 사랑스럽다. 고새 몸집을 빵빵하게 키워놓은 자태가 귀엽거든. 게다가 식빵 반죽 냄새는.. 진짜 기가 막힌다. 특유의 포근한 향이 정말 좋은데, 반죽을 치댈 때 기분 좋은 촉감까지 더해져 힐링이 된다. 쿠키를 만들 때는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반죽을 푼다. 스쿱 모양대로 동그랗던 반죽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사-악 녹듯이 납작해지고 예쁘게 크랙이 가있는 걸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다. '짜아-식 오븐에서 아무 멋진 쿠키가 되어주었군!' 하면서ㅋㅋㅋㅋㅋ
베이킹이 내게 주는 또 다른 행복은, 바로 집안에 퍼지는 '빵 냄새'다. 나는 그 냄새가 정-말 좋다. 맡으면 행복해. 빵이 구워지는 동안 내 방 앞까지 온 달큰하고 포근한 향이 방문을 연 나를 감싸면, 행복이 내 몸에 닿는 기분이다. 행! 복! 해!
문득 '내가 언제부터 빵을 구웠더라..'하고 생각해 봤는데, 처음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계발 활동(CA)으로 제과제빵을 신청해서 했던 게 첫 경험이었다. 이후로 고등학생 때도 CA로 제과제빵을 했었고, 대학교 졸업하고서는 전문 교육 기관에서 제빵 훈련도 받았었다. 성인이 되어서 제빵을 전문적으로 배웠던 이유는 첫 회사 생활로 내 영혼이 다 죽어버렸던 후유증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며, 전문 기술을 취득해 혼자 일하려고 했었다. 그때 다음 직업으로 생각했던 게 '제빵사'였다. 그런데 결국 제빵사가 되지 않은 건, 전문 교육을 받으며 베이킹을 '일'이 아니라 '나의 행복'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적성에 맞다고는 느꼈지만, 전문 기술자가 되어 일로서 빵을 구우면 취미로 빵을 구우면서 누렸던 그 기쁨이 줄어들 수도,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자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제빵사의 길은 접었지만, 지금까지 취미로 즐겁게 빵을 굽고 있다. 만족, 대만족이다.
중학교 1학년 때 CA로 왜 하필 제과제빵을 신청했는지, 많고 많은 취미 중에 왜 여전히 베이킹이 내 취향인지 이유를 찾으려 기억을 더듬어 들어가 봤다. 거기엔 '엄마'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부엌에서 미니 식빵을 굽고 계셨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가득했던 빵 냄새
장갑을 끼고 가스레인지 밑의 오븐에서 식빵을 꺼내주던 엄마
갓 나온 식빵을 찢어서 먹던 나
이 세 기억이 어린 나에게 취향을 만들어주었던 거다. 빵순이가 빵순이를 낳은 셈! 당시에 엄마가 만들어줬던 식빵이 정-말 맛있었다. 퍼석한 느낌 하나 없이 겉은 쫄깃했고 하얀 속은 입 안에 감기듯 부드러웠다. 그리고 엄마가 초코 쿠키를 만들기 위해 사두었던 초콜릿칩이 있었다. 엄마는 그 초콜릿칩을 냉동실 제일 위칸에 얼려두었는데, 엄마가 집에 없을 때면 나는 동생을 둘러업었고 업힌 동생은 손을 뻗어 그 초코칩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엄마 몰래 옴뇸뇸 둘이 맛있게 먹었었다. 티 안 날만큼 딱 먹고는 나는 다시 동생을 업었고, 동생은 초콜릿칩을 제자리에 두었다ㅋㅋㅋㅋ 엄마는 몰랐던 건지, 알아도 모른 척해주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떠올려도 행복한 추억이다.
이제는 엄마가 내가 구운 빵을 드신다. 나는 음식 하는 손은 큰데 입이 짧아서, 빵을 구울 때도 대량으로 굽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고 싶을 때 하나씩 꺼내먹는다. 그런데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면 빵이 금방 다 팔리고 없다. 나도 좀 먹자아아-!!!
아무튼 빵은 이렇게 내게 여러모로 '행복'이 되었다. 모양도, 색도, 맛도, 촉감도, 향도, 그 안에 스며있는 추억도 모두 내게 행복을 준다.
대단한 빵순이가 될 수밖에 없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