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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Sep 17. 2023

세탁기에서 물이 안 빠져요

작은 해프닝에 무너졌다가, 오뚝!


9월 17일 일요일 오후 8시 30분

시끄러웠던 내 머릿속을 담아보는 오늘의 일기


앞선 시안 작업을 계획했던 시간 내에 끝을 냈다. 덕분에 다음 시안 작업  시작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5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주말에 나를 위한 시간을 정-말 오랜만에 가지게 됐다.


이 다섯 시간 동안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

: 영화 두 편 보기, 밥 먹기, 손빨래하기


영화 한 편을 보고, 손빨래한 바지를 세탁기에 넣어 [헹굼-탈수] 코스를 돌렸다. 그 사이 밥을 먹었고 식기를 치우고 보니, 세탁기가 다 돌아갔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세탁실 문을 열었는데.. 어라라랏 세탁기 화면에는 경고창이 깜빡이고 있었고, 소중한 내 바지는 세탁기 속 거품 머금은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세탁기 왈, '쥔님. 배수가 안 됩니다요. 배수 구멍이나 배수 호수를 확인해주시와요.'


아오오오오오...
배수는 왜 또 안 되는데ㅠㅠㅠㅠ
아니야, 세탁기야 넌 할 수 있어.
그냥 한 번 해봐 봐.
나 너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단다ㅠㅠㅠ


경고창을 애써 무시하고, '시작' 버튼을 눌러보았다. 어랏? 세탁기가 다시 돌아가더이다. 오예 오류였나 봐?! 남은 세탁 시간 11분이 줄어드나 안 줄어드나 보려고, 앉은뱅이 의자를 가져다가 세탁기 앞에 앉아서 화면을 뚫어져라 봤다. 한 30초 지났나.. 지루해서(성질 급함) 빨래 바구니들을 다 치우고 물티슈로 세탁실 바닥이나 닦았다. 오호라앗- 반짝이는 바닥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이쯤 됐으면 시간이 줄어들었겠지'하고 세탁기 화면을 다시 쳐다봤는데, 여전히 '11분'이었다. 남은 세탁 시간이 그대로인 채 세탁통만 계속 돌아가고-헹굼 과정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이 말은.. 진행이 안 된다는 것=배수가 여전히 안 된다는 것. 오우 노우ㅠㅠㅠㅠ


처음 겪는 경우는 아니었다. 2년 전 샤워 가운을 세탁했을 때도 이래서 그 추운 겨울에 물을 잔뜩 머금은 샤워 가운을 세탁방까지 낑낑 들고 가서 헹굼-탈수를 했더랬지. 그때 가운 꺼내겠다고 수동으로 배수했던 방법이 생각이 나서,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세탁기 맨 아래 서랍을 열면, 아래 사진과 같이 배수구가 하나 더 있다.



저 구멍 마개를 돌려서 열면 호스로 빠져나가지 못한 빨래 물 콸콸콸콸 나온다.  받아내기 좋게 나오지는 않고, 엶과 동시에 틈새로 푸파팍팍팍팍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면서 나온다.


마개를 열기 전에, 1L&500ml 계량컵 두 개를 부엌에서 가지고 왔다.(세숫대야로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세숫대야는 사이즈가 큰 탓에 서랍에서 뺄 때 기울여 빼야 해서 담은 물이 도로 다 쏟아진다.) 서랍에 수건을 먼저 깔았다. 그다음 구멍 마개를 살짝 열고 사정없는 물줄기에 계량컵 하나를 가져다가 댄다. 세탁기 통에 차 있던 물이 나오는 거니, 물 양이 얼마나 많게요. 1L 계량컵 정도야 눈 깜빡하면 금방 찬다. 한 손으로 다 찬 1L 계량컵을 빼서 그 안의 물을 옆에 버리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500ml 계량컵을 물줄기에 가져다가 댄다. 세탁실을 물바다로 만들지 않으려면, 첩보 미션 수행하듯 고도의 민첩함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한 스무 번 반복했나.. 모르겠다. 어느덧 세탁기 통 안의 물이 다 빠졌고, 화면을 보니 세탁기는 탈수 과정에 들어갔다.


다행이지만... 이제 뒤처리가 문제다. 계량컵 밖으로 튄 물을 머금은 젖은 수건 10장을 두 손으로 비틀어 짜는데, 계량컵을 바꿔치기하느라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짜증이 확 밀려왔다. 내 자유 시간.. 소중한 내 자유 시간ㅠㅠㅠ 아까 바닥 청소한 것도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수건을 비틀어 짜느라, 손목도 아파온다. (필자는 오른쪽 손목이 많이 안 좋다.)


왜!!
하필 지금 배수가 안 돼가지고!!
한밤 중에 이 난리를!!!


악의 기운으로 뒤덮이려는데, 그러면.. 나만 손해다..ㅠㅠ 진짜 짜증은 나지만, 날 위해서 컨트롤해야 한다. 굿바이브를 어디서 끌고 와야 하나 짱구를 굴리다가, 아까 본 영화 장면이 스쳐갔다. 그 영화에 (간단하게 설명하면) 주인공이 문제 해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
누구는 줄 하나 달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서
화마와 맞서는데
이깟 물난리쯤이야.

아, 나도 멋들어지게
마무리해보게쓰으-

시간 될 때 이래서 망정이지
시안 쓰다가 이랬으면..
어후우


그렇게.. 멘탈을 붙잡고 세탁실을 깨끗하게 치우고, 바지도 널고 방에 왔다. 두 번째 영화 볼 시간은 날라갔고.. 탄 속마음 적으려 일기장을 펼쳤다.


MBTI 마지막 자리가 J(계획형)이유도 있지만, 쉼 없이 쁘다 보니 '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진 탓에.. 사실 그렇게 대단한 해프닝이 아니었음에도 멘탈이 쉽게 무너졌던 오늘이었다. 여러모로 여유가 없으면 이러하다. 


그래도 잘 지나왔고, 잘 마무리했다. 이제 오후 9시 51분이다. 남은 자유 시간.. 잘 가고!! 오늘 밤 시안도 화이팅이다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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