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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Oct 24. 2022

부산 국제 영화제 <자기만의 방>

부산 국제 영화제가 202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나는 10월 8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 세 작품을 관람했다. 


안나 카제약 감독의 <빌어먹을 휘게> (덴마크)

이세브 소소 블리아제 감독의 <자기만의 방> (조지아)

아난스 나라얀 마하데반 감독의 <스토리텔러> (인도)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이세브 소소 블리아제 감독의 <자기만의 방>이다.


https://youtu.be/tz8oTrZtg3g

감독의 소개 영상


오늘은 이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길 나눠보려 한다.


제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에서 착안했다. 본래 제목은 이보다 더 단순하고 무의미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떠오른다는 주변인들의 피드백에 제작 말미에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티나. 20대 초반, 대학을 끝마치지 못하고 임신해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에 의지해 살면서 제 손으로 돈 한 푼 벌어본 적이 없다. 남편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헤어지고 난 후 고향에서 상경한 티나는 남자 친구와 동거하기 전까지 투룸 아파트를 쉐어해 들어간다. 


또 다른 인물은 메기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늘 “이 놈의 뻐킹 조지아, 빨리 뜰 거야.”라고 말하며 미국에 갈 계획을 세운다. 영어를 잘해 그것으로 돈을 벌고 파티를 좋아해 자유로운 관계들을 맺으며 꽤나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미국행 비자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메기는 티나에게 방 한 칸을 내어준다, 물론 방값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https://youtu.be/eidlKnuDtIs

<자기만의 방> 소개 영상


티나는 여태껏 본인의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본 적이 없다. 어릴 땐 부모에게, 성인이 되어서는 만나는 남자들에게 기대어 살며 이때까지 한 번도 개인 공간을 가져본 적조차 없다. 자신이 번 돈으로 얻은 것은 아니지만 메기와의 쉐어 하우스에서의 방 한 칸이 난생처음 갖게 된 자기만의 방이다. 그 안에서 그녀는 본인과 전혀 다른 성향의 메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스스로를 마주하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다. 메기 또한 어릴 때부터 겪어온 기절 증상 등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차츰 가까워진다. 


영화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 '여성 간의 연대와 위로, 그리고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말한다. 자연스럽게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고정된 소득과 자기만의 방, 그리고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사실 여성 간의 연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관람 후 진행된 GV(Guest Visit) 시간에 영화 공동 제작자 엘마르와 에바 님이 여성 간 연대의 중요성을 한참 강조하셨을 때 솔직히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인류의 연대는 생각해봤어도 사실 여성 간의 연대라는 말은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여성 운동하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라고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부산 일정이 끝나고 서울에 올라는 길까지도 여성 간의 연대가 뭘까, 나도 여자이면서 생각해보지 못한 게 많구나 싶어 뭔가 께름칙했다. 


그러다 문득 내 주변 여자 친구들의 공동 육아가 떠올랐다. 나이가 30대 초반에서 중반을 넘어가다 보니 결혼을 한 친구들 중 대부분에게 아기가 있다. 예전이라면 우리의 카카오톡 단톡방의 단골 소재는 소개팅, 데이트, 직장 생활 푸념 같은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육아로 채워진 하루 일과가 우리들의 주된 대화 소재이다. 출산이 여성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아 또한 여성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 친구들도 직장을 그만두거나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하면 말이 잘 통한다고 한다. 가끔은 아이를 하원 시키고 놀이터에서 놀리다 만난 같은 아파트 단지 육아 동지와 대화를 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도 한다. 주말이면 번갈아가며 서로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끼리 놀리고 엄마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갖는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눈길은 늘 아이들을 향하고 있다. 


나 혼자만 하고 있을 것 같은 고된 육아 속에 육아 동지는 몹시 큰 위안이자 버팀목인 것 같다. (나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그래 보인다 ㅠㅠ) 내 현실에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겪고 있는 이 일을 겪어본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지금 함께 겪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밤늦은 시간 '이제 육퇴 하고 맥주 한 캔 한다'는 카톡에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육아 동지의 말만큼이나 큰 위안이 있을까.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이를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여성이지 않을까. 그러나 여성은 간혹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여적여'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많은 변화가 존재하는 건 사실하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인 건 영화 속 조지아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성으로서 서로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보듬고 연대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에피소드에 대한 공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 인간 객체로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위로와 응원 방법 중 작은 무언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많은 이들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온 티나가 메기를 끌어안고 한참을 우는 장면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전 씬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바로 메기와 티나의 클럽 씬이다. 메기는 어느 장소에서나 그렇듯 클럽에서도 몹시 편안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음악을 느끼며 술에 젖어들었다. 반면 티나는 마치 자신을 납치한 우주선이 외딴곳에 잘못 내려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색하다. 카메라는 그런 티나의 시선을 한참 따라갔다. 번쩍대는 형형색의 조명, 눈이 풀린 채 리듬에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야릇한 눈빛을 보내는 낯선 남자들, 그리고 저기 한켠에 몹시도 편안해 보이는 메기. 이후 티나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클럽 안의 사람들처럼 두 눈을 감은 채 입에 술잔을 붓는다.


영화 전개 내내 티나는 늘 미간에 힘을 준 채 긴장한 듯 보였다. 메기와 친구들이 함께 한 파티에서도, 전남편의 부모님 앞에서도, 엄마와의 통화에서도, 엄마의 장례식에서도, 심지어 아침에 본인의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에도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기름처럼 티나는 불완전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러던 티나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며 몸에 긴장을 풀자, 영화 내내 안쓰러움이 가득하던 내 마음에 안도감이란 빛이 들었다. 나 또한 20대를 보내며 어느 순간 부족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나를 인정했던 존재했는데 그 장면에서 나의 과거가 떠올라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티나가 깨달은 것은 이뿐 만이 아니다. 성 정체성도 있다. 사실 나는 해당 장면이 나왔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어디에서도 그런 조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메기는 티나의 몸을 야릇하게 터치하기 시작했을까. 메기의 손길을 끝내 피했던 티나는 다음날 밤 왜 메기의 침실을 찾아 들어갔을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한 채로 조지아에 대한 기사를 서칭 하다, 조지아가 성 소수자에 대한 적대가 만연한 꽤 보수적인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성 소수자가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여성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겠다). 드러내는 것은 둘째치고 깨달을 수는 있었을까 생각하니 티나와 메기의 그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단순히 성적인 지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보수적인 나라에서 여성이 느끼는 자유에 대한 갈망 또는 성별을 뛰어넘어 본연의 인간이 원하는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라 느꼈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티나가 쉐어하우스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룸메를 환영하는 장면이다. 짐을 잔뜩 들고 문을 두드리는 새로운 룸메를 티나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로 환대한다. 영화를 본 모두는 드디어 여유를 가진 티나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 같다.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그것은 이전에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많은 티나들이 편안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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