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8살의 끝자락 무렵 호기롭게 시작한 새 일은 막상 해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설상가상 몸과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그만하고 싶었다. 그 사실을 어디다 말할 수 없었다. 너는 일을 또 바꾸고 싶냐고 비난받을 것 같았고 너는 평생 준비만 하냐고 웃음 섞인 농담을 던졌던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건 그런 말들 사이에서 내가 상처받을까 봐, 내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무서웠다.
앞서나가긴 힘들어도 뒤처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이유 없이 멈출 순 없었다. 그러다 좋은 기회가 왔다. 직장에서 나와, 나의 작은 숍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원으로서의 일은 힘들었지만 나의 숍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개로 알게 된 숍이라 매출과 상황이 확실했고, 인수받게 될 숍의 사장도 당시 힘든 일을 겪고 있어 우리는 몇번의 만남을 통해 일주일 안에 인수 및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3일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출근 첫날, 가게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해 오전 내내 인수인계를 받으며 2시에 있을 건물주와의 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부동산 아저씨가 숍을 방문해 건물주와의 약속 시간을 4시, 6시로 변경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약속한 계약 시간을 10분 남기고 숍 사장과 부동산 아저씨는 옆 카페에 나를 따로 불렀다. 그들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들은 말문을 열었다. 사실인즉슨, 건물주가 숍 사장과의 계약이 끝나면 다시 세를 내어주지 않고 개인 카페를 차릴 계획이라는 걸 ‘방금’ 통보해왔다는 것이다.
머리가 하얘지는 걸 느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전원을 끈 것처럼 사고에 정지가 왔다. 한참을 서로만 바라보았다. 침묵을 이길 수 없었던 숍 사장이 여러 가지 방도를 내놓았다. 본래 자기와 건물주와의 계약은 9개월이 남았으니 그동안 전전세를 하는 건 어떻겠냐, 아님 사업자는 그대로 두고 바지 사장처럼 들어와 일하는 건 어떠하냐 등등 여러 제안을 했다.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또다시 서로만 바라보았다. 몇몇 의미 없는 대화의 끝에 다시 연락하자는 말을 남기고 카페에서 일어섰다.
짐을 가지러 숍에 들어갔다. 벌써 내 숍이 된 것처럼 하루 동안 마구 펼쳐놓은 내 물건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일은 길거리에 쏟아진 배달 음식을 손으로 주워 담는 일처럼 부끄러웠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숍을 나왔다. 몇 발자국도 안 떼 눈물이 쏟아졌다.
졸지에 백수가 되었다. 왜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자책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을 진행한 탓이겠지.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났다. 친구들이 날 보고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산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그날의 장르는 블랙 시트콤이었던가. 울고 웃었다를 반복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날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앞이 컴컴한 구만리 산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