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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Oct 09. 2017

을의 아우성(3)

나도 결국은 그놈이다.

많은 사회인들은 혀를 끌끌 차며 서로를 매우 불쌍하게 여긴다. 

둘 이상의 사람이 만나면 

백짓장보다 얇은 차이라도 기어코 찾아내 서로의 무게를 가늠한다. 


나를 낮추거나 높이고 또는 상대를 낮추거나 높이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 자동반사적으로 진행된다. 

갑과 을의 관계를 설정이 된 후에야 숨통이 트인 듯 대화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 참 재미있는 건, 

상대가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융숭한 대접을 (억지로 한) 후에 

뒤돌아서서 무자비한 욕지거리를 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려 든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버릇처럼 

쟤도 그러고 쟤도 그러고 너도 그러니, 나도 그렇게 해주마 라는 듯이. 


동시에 자기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하며 

너는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르는구나. 사회라는 곳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는 너도 곧 알게되겠지. 

그 때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야. 아무 것도 모를 때가 좋을 때지라며 젠 체까지 해대며 자랑질을 한다. 

이때 여러 대표, 이사, 실장님의 전화가 오면 다시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말하겠지.


단편적인 텔레비전 속 한 장면만 보고 

내 머릿속에서는 광활한 마인드맵이 그려졌다. 


원기회복에 가장 좋은 건 인삼, 홍삼, 산삼이 아니라 적당한 무게의 분노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며 천만다행으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영업부 사원들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때마침 전화가 울린다. 또 다른 돈 줄이다.

“어머, 대표님. 보도자료요? 엔터가 쉬는 날이 있나요, 어디.”

이제 웃을 힘이 생겼다.


“역시 장 실장은 다르다니까 자기 일처럼 챙겨주니 정말 고마워.”

“저는 이미 대표님 배에 올라탔는걸요.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요, 대표님.”

“좋아. 정말 고마워. 내가 항상 장 실장 몫은 챙겨주려고 생각한다는 거 기억해줘.”

구라다.


“어머, 말씀만으로도 저 눈물 날 것 같아요.”

이것도 구라다.


“하하, 장 실장도 참. 그럼 한 3시간 쯤 있다가 자료 하나 나갈 수 있게 준비할 수 있지?”

미친놈이다.


“3시간? 그럼요. 다른 데는 몰라도 저희 회사만의 강점 아니겠어요? 호호호.”

미친 소리다.


“역시! 그럼 부탁할게. 우리 장 실장,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거짓말이다.


“미안하긴요, 전 기쁜 걸요.”

나도 미친놈이다.


“그럼 부탁할게.”

“부탁이라뇨. 서운하게. 하하. 연락드릴게요.”

구라와 미친놈의 하모니가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제 겨우 오후 3시. 

여전히 코에서는 미식거리는 뜨거운 콧바람이 싱싱 뿜어져나오고 있고 있지만

나는 혹시 몰라 챙겨온 회사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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