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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체발광 Nov 25. 2024

성차별을 넘어서는 말들

출산율출생률

     

평소 이 단어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눈에 뜨인 말이다. 애를 낳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가 태어나지 않아서 인구가 줄어드는 거니까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률이란다. 그러니까, 낳는 비율이냐 태어나는 비율이냐 이 얘긴데, 이 얘기는 산모에 초점을 두냐 아기에 초점을 두냐랑 통한다. 아기를 낳는 비율과 아기가 태어나는 비율 중에 어떤 걸 선택해야할지 답이 나온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걱정의 목소리를 보면 요즘같아서는 출율은 마치 아기를 낳지 않아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원망마저 느껴진다. 출률은 태어나지 않는 비율을 말하니까 중립적인 느낌이다. 



선생     


선생(先生)이 있으면 후생(後生)도 있게 마련이다. ‘선생’이 가르치는 사람이면, 배우는 사람은 ‘후생’이라고 하든가. 선배, 후배는 기가 막히게 따지는 나라 아닌가. 학교에 배우는 사람(학생/學生)은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은 없고, 먼저 태어난 사람(선생/先生)이 있다. 직업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먼저 태어난 사람에 무게가 있다. 옛날에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먼저 태어나 살아온 만큼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인 어른에게서 나왔다지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주체못할 정도인 오늘날은 먼저 태어났음이 무기가 될 수 없다. 학생들보다 조금 더 먼저 태어나서 세상을 앞서 경험한 사람이라는 얘긴데, 대통령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교단에 선 이상은 가르치는 일이다. 사람과 가르치는 거 중에 '사람'에 방점을 찍은 말이다. 학생이라고 했으니 teacher에 해당하는 말이었어야 했다. teach의 어원을 찾아보니 show, present, point out이라고 나와 있다. 보여주고 제시하는 사람이랑 먼저 태어난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다. 
 

선생이란 호칭남발도 문제다. 학생이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 그렇다치고, 같은 직업을 가진 그들끼리는 왜 서로를 ‘선생’이라고 부를까? 주민센터에 가면 직원이 민원인에게 ‘선생’이라고 부르고, 은행에 가도 창구 직원이 고객에게 ‘선생’이라고 부른다. 도서관에 가도 이용객한테 '선생'이라고 부르고, 식당에 가도 손님한테 '선생'이라고 부른다. 하다못해 동네 미용실을 가도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선생’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경찰이 음주측정을 하면서도 술취한 사람에게 ‘선생’이라고 한다. 도서관에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강의를 진행하시는 분이 앉아서 수업을 듣는 사람에게도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런 걸 보면 ‘선생’이라는 말은 적당한 호칭이 궁할 때 막 써먹기 좋은 동네북이다. 이름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건데 아껴도 너무 아낀다.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말을 말자.          



청소부      


청소 일을 하는 남자는 '청소부(淸掃夫)'. 청소 일을 하는 여자는 '청소부(淸掃婦)'. 결혼 안 한 남녀들은 청소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어감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환경미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지금은 청소부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바뀐 이유가 夫와 婦 때문에 바뀐 건 아니다.     



자매결연     


도시와 도시, 학교와 학교 간처럼 지역이나 단체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거나 교류하기 위한 관계를 맺는 일을 말한다. 형제결연남매결연이 울고 가지 않을까? 웬일로 형제결연이 아닌지 신기하다. 자매결연이든 형제결연이든 이런 것까지 가족 간에 사용하는 용어를 끌어다 쓴 게 놀랍다. 찾아보니 이미 상호결연이라는 말이 대안어로 제시되었다.          



자매품     


TV 광고에서 어떤 제품 광고를 실컷 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자매품 OO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광고가 있었는데 하도 오래돼서 무슨 제품 광고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래서, 나도 재미로 '자매품'이라는 말을 자주 써먹었는데 지칭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형제품, 남매품도 아니고 왜 하필 자매품이었을까가 궁금했다.



유모차유아차아기차     


작년이었나? 어떤 배우의 유모차 발언에 자막이 유아차로 표기되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발언과 자막 처리가 따로 놀았던 게 문제였는데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유아차냐, 유모차냐로 번지더니 급기야 유모가 밀어서 유모차라고 한 걸 왜 유아차로 바꿔야 되냐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일단, 요즘은 유모라는 직업을 보기도 어렵거니와 유모차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어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논쟁 자체가 참 난처하다. 일본에서도 아기를 눕혀서 태우는 형식을 유모차라고 하고, 앉은 상태로 태우는 형식은 베이비카라고 했단다. 유모차든 유아차든 용도부터 생각해 보면 아기를 태우기 위한 차이지 유모가 밀기 위한 차가 아니다. 아기바구니는 아기를 넣어(?) 다녀서 아기바구니이다. 유모바구니가 아니다. 그럼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차는? 유모차! 왜 유모가 끼어드는가? 유모차는 유모를 위한 차이지 아기를 위한 차가 아니다. 유아차가 되는 게 맞다.      


요즘은 아빠들도 유아차를 밀고 다닌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손주를 태우고 산책을 다니는 세상인데 이게 왜 유모차여야 되나! 있지도 않은 유모 걱정을 왜 남자들이 해주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1957년에 발행된 사전에는 이미 '유아차'라고 올라간 전적이 있단다.           



분모분자     


학교 다닐 때는 분자, 분모라는 말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 수학 공부를 도와주다 보니까 용어부터 눈에 들어왔다. 별 의미없이 다가왔던 개념들이 의식을 하는 순간, 수학 용어에서도 가족을 봐야되나 의문이 일었다. 나라 자체를 '국가'라는 한덩어리 가족 개념으로 보는 땅에 살고 있으니 수학 용어에 가족 개념을 집어넣은 것쯤은 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분수(分數)'까지는 좋았는데, '분자(分子)'와 '분모(分母)'는 봐도 봐도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수학 용어에 엄마랑 아들이 왜 등장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가. 수학은 숫자의 문제고 논리의 문제인데 수학도 모성으로 극복해보겠다는 발상에 할말을 잃었다. 엄마랑 아들을 빗대어 설명하다 보니 용어 자체에 수학적인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용어와 풀이가 따로 노는 사전 풀이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분자와 분모라는 말은 차원이 달랐다. 사전이 ‘눈가리고 아웅’이 트레이드마크가 되면 쓰나.     


학교 때 선생님의 설명을 기억해내자면, 분모는 자신을 똑같이 나누어서 분자를 탄생시키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빠는 졸지에 투명인간 신세 됐다. 또 다른 선생님의 설명은 엄마가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라나... 든든하기로 치자면 아빠도 등장해야 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수학 학원 안 보내고 싶어서 수학 관련 책 빌려다 읽다 보니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들도 내가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설명과 다를 것도 없이 국화빵 설명을 해놓았다.     


글을 쓰다 말고 검색을 했더니 이미 언론에 분자, 분모가 성차별 언어라고 윗수아랫수로 바꾸자는 주장을 소개하는 기사가 올라왔었다. 이미 굳어진 말인데 이제 와서 바꾸는 건 왜곡의 의도가 있단다. 나무 위키 설명을 보니 분모를 연산자, 분자를 피연산자 혹은 분모를 제수 분자를 피제수라고 설명해 놓았다. 이런 말을 두고 왜 분자, 분모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왜곡 타령하는 사람들은 왜곡이 뭔지 모르나 보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 일본어 사전으로 넘어갔더니 한자가 똑같다.          



기혼 미혼     


기혼(旣婚) - 이미 결혼한 사람

미혼(未婚) -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     


그냥 결혼한결혼하지 않은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이미’, ‘아직’이라는 말을 추가했을까? 이미아직은 누구의 기준일까? 누구의 기준이든 웬 간섭? 기혼은 아직 하면 안 되는데 이미 했다? 미혼은 이미 했어야 되는데 아직 안 했다?     


누군가는 미혼이라는 말이 ‘결혼은 원래 해야되는 건데 아직 안 한’이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자신들은 결혼하지 않기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겨서 ‘비혼(非婚)’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비혼이 이런 뜻이라면 기혼은 원래 해야되는데 이미 했다?      


비혼이란 말의 시작이 그런 불만의 발로였다면 번지수 잘못 짚었다. 원래는 누구의 시각이냐를 물었어야 했다. 무엇보다, 단어에 ‘원래’라는 말은 들어 있지 않다. 본질적 문제에 다가가기보다 나는 뭔가 다르다를 내세우고 싶었던 그 치기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결혼을 생각해야 할 시기의 젊은 피라면 왜 사회가 이미와 벌써라는 잣대를 갖다대냐고 반기를 들었어야 했다.

      

원래 해야되는데 하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했든, 원래 해야되는데 아직 못했든 하지 않은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다. 非는 하지 않은을 나태내는 거지 스스로 선택을 나타내지 않는다. 멀리 갈 거 없다. 한자 분석하면 답 나온다.


非婚  → 아닐 비 혼인할 혼     


글자 그대로 '혼인하지 않은’ 상태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본질에 대한 접근이 아니고 발끈함이었다 보니 비혼의 뜻이 왜곡되었다. 만인의 뜻을 자꾸 특정 부류가 점유하다 보면 본질이 멀어진다.      

특정 시선을 담은 이미벌써를 제거하고 ‘결혼을 한' 상태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되어야 한다. 결혼/비결혼(O). 줄여서 ‘혼인’, ‘비혼’ 이런 말이 필요하다. 기혼/미혼(X). 기혼, 미혼은 사회가 폭력을 행사하는 말이다. 이 폭력을 보지 못하니까 ‘비혼’이라는 말을 ‘결혼하지 않음을 스스로 선택함’이라는 뜻으로 우길 수 있는 거다.      


비혼이라고 비혼식을 올리고 축의금까지 걷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들은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자기들 이익만 챙기는 이른바 얍삽함을 택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건데 축의금은 자꾸 나가고 본전 생각은 나고 그런 걸까? 회사에 비혼선언 축하금까지 등장하는 세상인데 내가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비혼 축하금 받고 퇴사한 다음 결혼하면 퇴직한 회사에서 축하금 반환하라는 통보도 보내는 건가? 아, 너무 멀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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