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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들 이름에 관한 이야기

by 자체발광

파키스탄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카자흐스탄(Kazakhstan),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타지키스탄(Tajikistan),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처럼 stan으로 끝나는 나라들은 stan이 land의 뜻을 가졌다. '우즈베키스탄'은 'the land of Uzbek', 카자흐스탄은 'the land of Kazakh' 이런 뜻이다.


그런데, 같은 stan으로 끝나지만 'Pakistan'은 성격이 다르다. 파키스탄은 Choudhry Rahmat Ali라는 파키스탄의 무슬림 민족주의자가 1933년에 Punjab, Afghania, Kashmir, Sindh, Baluchistan 이렇게 무슬림 독립운동에 참여한 5개 지역의 앞글자를 따서 Pakstan을 만들고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 Afghan-i-stan처럼 i를 추가했다.


P - Punjab

A - Afghania

K - Kashmir

S - Sindh

T - Balochistan(Baluchistan/Baluchestan)


이렇게 5개 지역의 두문자어(acronym)로 이루어진 나라이지만, pak는 페르시아어와 파슈토어(Pashto)로 pure를 뜻하고, stan은 land, place of를 뜻하기 때문에 Pakistan은 the place of the pure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필리핀

1565∼1898년까지 333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나라 이름 자체가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중국

China의 C를 대문자로 쓰면 '중국'을 뜻하지만, china 처럼 c를 소문자로 쓰면 '도자기'를 뜻한다. China라고 쓰면 중국 본토만을 가리키지만, The Chinas라고 쓰면 중국 본토랑 홍콩, 대만, 싱가포르까지 모두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이건 정관사 the의 성격 때문이다.


The United Kingdom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e Philippines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뭘까?


정관사 the의 용법에는 여러 개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경우를 설명하는 기능이 있다. 미국은 50개 주가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이고, 영국은 4개의 왕국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고,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The Chinas도 같은 이치로 설명된다.



스웨덴

영어 이름 Sweden은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다.



체코

터키(Turkey)가 튀리키예(Turkiye)로 바뀐 것처럼 체코(Czech Republic)는 2016년에 Czechia로 국가명을 변경했다. EU나 UN이나 일부 대기업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 FIFA, NATO가 Czechia라고 부르긴 하지만, 대규모 지진 사고가 국제뉴스 헤드라인을 타면서 이름 변경이 알려진 튀르키예와 달리 Czechia는 국제적으로는 잘 알려지진 않았다. 2020년 Andrej Babis 체코 총리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Czechia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코 사람들은 바뀐 이름이 러시아 체첸(Chechnya)과 비슷해서 걱정이란다.



스리랑카

1972년 영국 통치에서 독립하면서 식민지 흔적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공식 명칭을 바꿨지만, 공식적으로는 2011년이 되어서야 식민지 시절 이름인 실론(Ceylon)과 작별했다. 1978년에 '스리랑카 공화국(The Republic of Sri Lanka)'에서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으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꿨다. Ceylon은 Sri Lanka의 영국식 이름이었고, 포르투갈 이름(Ceilão)에서 유래했다.



방글라데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의 내부 갈등이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으로 이어져 1971년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되었고,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 되었다. 이 전쟁으로 난민이 인도 뉴델리로 몰려들자 인도가 침공에 나섰고, 파키스탄이 패배를 하게 되어 심라 협정(Simla Agreement)에 서명을 하면서 방글라데시가 탄생했다. 데시(desh)는 고대 아리아어로 '나라'라는 뜻이다.



북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의 공화국이었던 마케도니아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유지하다가 2019년 '북마케도니아'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유는 그리스에 마케도니아라는 지역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와의 분쟁을 없애기 위한 정치적 문제를 고려해서다. 덕분에 마케도니아에서 북마케도니아로 이름이 바뀌면서 NATO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여전히 호치민시를 사이공이라고 부르고, 인도 사람들이 뭄바이를 봄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바뀐 이름을 사용하는 마케도니아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호주

19세기 초까지 1644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태즈먼(Abel Tasman)이 처음 적용한 니우 홀란트(Nieu-Holand/New Holland)로 알려져 있다가 1770년 제임스 쿡(James Cook)이 New South Wales로 불렀던 것이 1800년대에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Matthew Flinders)에 의해 Australia로 바뀌었고, 1824년에 공식 명칭이 되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land로 끝나는 나라, stan으로 끝나는 나라, a/ia로 끝나는 나라가 많다. 접미사 형태는 다르지만 세 경우 모두 '-의 땅'이라는 뜻을 가졌다. land로 끝나는 국가 이름은 게르만어의 영향을 받았고, a 혹은 ia로 끝나는 국가 이름은 대부분 그리스 /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land는 나라에 따라서는 '란드', '란트', '랜드' 로 발음된다. 아이슬란드, 도이칠란트,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핀란드, 폴란드 등이 있다. stan 국가들은 소련 시절에는 stan을 -ia로 바꿔부르기도 했다. Turkmenistan을 Turkmenia로, Uzbekistan을 Uzbekia로 부르는 식이었다. a/ia로 끝나는 나라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땅의 여신인 '가이아(Gaia/Gaea)가 a/ia로 끝나는 데서 여성 접미사인 a/ia를 따왔다.


예를 들어, Australia는 Southern을 뜻하는 라틴어 Australis(아우스트랄리스)에서 Austral이 되었고, 거기에 ia가 붙어서 '남쪽에 있는 땅(Land of the South)'이 되었다. Australia랑 철자가 비슷해서 억울한(잘 헷갈리는) 나라 Austria는 독일어로 '동쪽 지역'이라는 뜻을 가졌고, 땅을 나타내는 여성형 어미 a가 붙었다. Australia는 남쪽을 뜻하는 auster에서 왔고, Austria는 동쪽을 뜻하는 독일어 Ost에서 왔다. 영어 철자가 비슷한 건 우연의 일치다.



China냐 china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처럼 대문자냐 소문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나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프랑스!


햄버거 짝쿵 감자튀김에는 재미난 사실이 하나 숨어 있다. 그래서 A bonas word!



프렌치 프라이


프랑스가 원조냐 벨기에가 원조냐 두 나라가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우기는(?) 프렌치 프라이. 벨기에는 벨기에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 프렌치 프라이를 유네스코에 청원하기도 했다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두 나라에서는 그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pommes frites(fried potatoes)' 줄여서 'frites'라고 부르고, 영국에서는 chips라고 부른다. 프렌치 프라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단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서 1년에 햄버거를 사먹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오늘(2024. 11. 23.) 장거리 여행 후 아이랑 남편의 뜻을 받들어 저녁으로 햄버거를 대령했다. 내가 먹으려고 감자튀김을 하나 덤으로 사면서 뜬금없이 '프렌치 프라이' 원조 논쟁이 떠올랐다.


원조가 어디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오르내리지만 나는 원조설은 관심 없고 '프렌치 프라이'의 '프렌치'가 French가 아니라 french라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문자를 써서 French라고 하면 '프랑스의', '프랑스인', '프랑스어'를 나타내지만 소문자를 써서 french라고 쓰면 '당근, 감자, 오이 같은 재료를 요리하기 쉽게 얇고 길게 써는' 방식, '뼈가 일부 노출되도록 고기를 다듬는' 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프렌치 프라이'의 '프렌치'에서 '프랑스'를 떠올리고 이 원조 논쟁을 바라보면 위험하다는 말씀. 롱맨 사전이나 옥스포드 사전이 대문자를 써서 French fry라고 올려놓은 건 잘못이다.


벨기에는 전략을 잘못 짰다. 아니면,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거나. 유네스코 등재까지 추진을 했으니 아마도? 벨기에 입장에서는 원조 논쟁을 할 게 아니라 F를 f로 바꾸라고 했어야 했다. 왜 롱맨이랑 옥스포드 사전에는 french라는 말이 올라가 있지 않은 걸까? 혹시 다른 사전에는 올라와 있을까 해서 미리엄웹스터 사전, 콜린스 사전, 다음사전, 네이버사전에서 더 찾아봤는데, 미리엄웹스터 사전 한 곳만 제대로 설명을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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