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먹으면 아침, 정오에 즈음해 먹으면 점심, 일 끝나고 저녁 시간에 먹으면 저녁이라고 하는데, 영어는 밥을 먹는 시간대가 아니라 어떤 규모, 어떤 형태로 차려지는지가 식사 이름을 결정한다.
'부수다, 깨뜨리다'를 나타내는 break와 '단식'을 나타내는 fast로 이루어져서 단식을 깨는 게 breakfast라고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밤에 잠을 자는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까 단식을 하는 거고 아침을 먹음으로써 그 단식이 깨진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몇 년 전에 breakfast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구글을 검색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건졌다. 중세 때는 아침 식사가 중요한 식사로 여겨지지 않았고, 정오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에 이렇게 두 번만 식사를 했다고 한다. 어린이, 노인, 병자, 노동자는 아침을 먹었지만, 보통은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은 가난하거나 아침부터 일을 해야하는 농부나 노동자임을 뜻했단다.
아침 식사의 뜻이 이렇게 이해되던 당시의 유럽 다른 나라들은 모르겠으나 영국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돼지든 소든 도축을 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밥상에 올라와도 한국말에서는 그대로 돼지고기, 소고기인데 영어에서는 가축을 기르는 사람은 돼지나 소를 pig, cow라고 부르지만 요리가 돼서 식탁에 올라가면 beef, pork가 된다. 교과서에 pig와 pork, cow와 beef가 등장했을 때는 '살아 있건 죽어 있건 돼지는 돼지, 소는 소지 뭘 복잡하게 다르게 부르지? 외국어 배우는 사람 골탕 먹일 일 있나!' 선생님의 이런 반응을 듣고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영어공부 하면서 영어의 역사를 알고 나니까 이런 흐름들이 재미있어졌다.
1066년에 노르망디 윌리엄 공이 영국을 침공한 역사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 당시 가축을 기르던 사람들은 지배를 받던 영국 사람들이었고, 그 가축으로 요리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지배층인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기르는 가축들은 영어 이름을 가졌지만 요리된 음식 이름은 프랑스어에서 온 이름이 많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라는 책을 쓴 영국의 저자 '필립 구든'은 이 이야기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과장되었다는 것인지까지는 얘기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단어 자체가 beef와 cow처럼 눈에 보이게 구분되어 있는 걸 보면 영국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렇게 얘기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축을 돌보고 농사일을 해야하는 피지배층인 영국 사람들은 힘을 쓰는 일을 하려면 아침을 챙겨먹어야 했을 거고,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프랑스인 지배층은 굳이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지 않아도 되었던 거다.
점심식사 그러면 우리는 lunch를 떠올리겠지만, 영국에서는 하루의 중간에 먹는 식사를 상류층은 lunch라고 불렀지만 하위 계층에서는 dinner라고 불렀다. 학교 급식은 school meal, school lunch라고 부르지만, 영국에서는 school dinner라고 부른다. 그래서, 학교 급식조리사에 해당하는 말을 영국에서는 dinner lady라고 하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lunch lady라고 한다.
특정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식사의 크기, 그러니까 집에서 먹든 외식을 하든 하루의 주된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고, 13세기에 프랑스어에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이나 행사를 기념하는 공식적인 저녁 식사를 dinner party라고는 해도 supper party라고는 하지 않는다. Thanksgiving dinner는 있어도 Thanksgiving supper는 없다.
미국에서는 '이른 저녁에 먹는 식사'를 말하지만, 영국에서는 '하루의 마지막 식사,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볍게 먹는 간식'을 말한다.
미국 남부에서 자랐다면 supper나 dinner가 몇 시에 식사를 하느냐보다 누가 요리를 해줬냐와 더 관련이 있단다. 17세기, 18세기 미국 남부에서는 농업에 의존을 했는데, 오후에 농사일을 하려면 정오에 충분한 양의 식사(dinner)를 해야했고, 하루 종일 농사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배가 고프다면 스프 형태의 가벼운 저녁 식사(supper)를 했다. supper는 고대 프랑스어 sup에서 유래했고, sup는 soup에서 유래했다. 남부와 중서부 주에서는 supper라는 용어가 더 흔하게 사용되는데, 그건 북부보다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란다.
2022년 11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올라온 글을 보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supper를 사용했다면 조상이 농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와 있다. 그 글에서 식품역사학자 헬렌 조이 베이트가 말하길, 18세기와 19세기 초에 미국인들은 정오 무렵에 가장 큰 식사인 dinner를 먹었다고 한다. 농장을 떠나 일하기 시작하면서 한낮에 요리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하루의 주요한 식사를 저녁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생겨난 신조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0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단어다. 1895년에 처음 등장해 189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렸고, 같은해 미국에서도 등장했지만, 미국에서는 1930년대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brunch의 역사나 유래는 두 가지로 나뉘는 거 같다. 사냥 후 고기의 향연을 벌이는 영국 전통의 일부였다고도 하고, 교회에 가기 전에 금식했다가 나중에 큰 점심을 먹는 가톨릭 전통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풀코스 요리를 하는 것에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요일이 되면 가족들한테 외식을 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구글에서 brunch에 해당하는 시간을 찾아보니 영국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반까지를 말하고, 미국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브런치'의 우리말로 '어울참'을 권장했다는데, 사전에는 올라와 있지 않다.
A bonus word
사전에서 noon의 어원을 찾아보면 ninth hour from sunrise, from Latin nonus 'ninth'라고 나와 있다. 즉, 일출 시간으로부터 9번째 시간을 말하고, 9번째를 뜻하는 라틴어 non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설명이 '정오'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서 구글을 헤맸는데, 딱 떨어지는 설명은 찾지 못 했다. 여러 글을 종합해 본 결과 로마와 서유럽 중세 수도원의 하루는 해가 뜨는 6시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아홉 번째 시간은 오후 3시를 말하는데, noon이 9번째 시간인 3시에서 오늘날처럼 6번째 시간인 12시, 정오로 바뀐 건 14세기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로마 시대때는 해뜨는 시간부터 하루가 시작이 되었고, 시계가 없어서 종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는데, 3시간마다 종을 울렸다고 한다. 첫 번째 시간은 오전 6시에, 세 번째 시간은 오전 9시에, 여섯 번째 시간은 12시에, 아홉 번째 시간은 오후 3시에 종이 울렸고, 수도사들은 종이 치는 시간에 맞춰서 기도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문제는 수도사들이 기도를 끝내야 금식에서 풀려날 수 있었는데, 오후 3시 말고 12시에 기도를 끝내면 그만큼 일찍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12시로 시간을 땡겨서 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 덕에 noon이 낮 12시를 가리키게 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수도사들이 배가 너무 고파서 점심 시간을 땡긴 덕분에 noon의 뜻이 오후 3시에서 낮 12시로 바뀌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