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앞글에 이어 비슷한 주제의 글을 써놓았는데, 앞글에서 띄어쓰기에 충격을 한번 먹었더니(서양민들레와 토종 민들레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띄어쓰기에 관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띄어쓰기(O)
띄워쓰기(X)
띄워 쓰다(O)
띄어 쓰다(O)
띄어쓰기하다(O)
띄어쓰기랑 붙여쓰기는 붙여 써야 하고, 동사 '띄다', '쓰다'는 연결 어미로 이어서 쓸 때는 띄어 쓰다, 붙여 쓰다처럼 띄어서 써야 한다. 다만, 붙여 쓰기처럼 띄어 쓰면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한 음절의 종성을 다음 자의 초성으로 내려서 씀. 또는 그런 방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제 글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머리 아프다.
맞춤법은 100%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어도 나름 예민하다 보니 골치 아플 일은 별로 없는데, 띄어쓰기는 정말 머리에 쥐가 날 거 같다. 맞춤법이 헷갈릴 때는 사전을 찾아보면 해결이 되지만, 띄어쓰기는 문법 공부를 따로 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일쑤다. 띄어쓰기 검사기는 막말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수준이라 일찌감치 포기해버렸고, 귀찮아도 해당 문법을 찾아보는 게 장땡이다. 때론 단어 뜻을 몰라서 사전을 찾는 게 아니라 띄어쓰기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볼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게 번거로우면서도, 궁금하니까 은근히 재미 있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다음은 내가 찾아본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인 띄어쓰기 문법 내용들이다.
1. 첫사랑, 첫눈, 첫돌, 첫겨울, 첫머리, 첫대목, 첫인상, 첫음절, 첫걸음, 첫아들/첫딸
2. 첫 월급, 첫 단추, 첫 작품, 첫 회의, 첫 출연자, 첫 곡, 첫 질문, 첫 번째
'첫'이 들어가면 다 붙여 쓴다든가 다 띄어서 쓴다든가 한 가지 규칙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1번처럼 한 단어로 굳어진 말들은 붙여서 써야되지만, '첫'이 관형사 역할을 할 때는 2번처럼 띄어서 써야한다. 그런데, 서양민들레든 서양 민들레든 첫사랑이든 첫 사랑이든 첫월급이든 첫 월급이든 뜻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띄어쓰기가 조심스러운 건 붙여 쓰냐 띄어 쓰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말도 어떤 때는 띄어 쓰고 어떤 때는 붙여 써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일관성이 떨어지는 규칙 앞에서 좌절을 좀 맛보기도 하고, 띄어쓰기에도 한국인 특유의 정이 작용하는 건지 '원칙'이 있고 '허용'이 있어서(원칙 하나에 허용이 줄줄이 사탕처럼 많을 때도 있다.) 결국에는 얘도 맞고 쟤도 맞고 이렇게 되어버려서 맥 빠지기도 하지만, 규정이 있는 한 지키려고 노력은 하게 된다.
1. 지난주 / 지난달 / 지난해
2. 이번 주 / 이번 달 / 이번 해
3. 다음 주 / 다음 달 / 다음 해
이 정도면 약올리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1번은 2번 3번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1번은 '지난'과 '주', '달', '해'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한 단어이고, 2번과 3번은 '이번'과 '다음'이라는 명사와 '주', '달', '해'라는 명사가 이어져서 구를 이룬 조합이다.
'지난주'의 '지난'은 붙여서 쓰는데, '지난 일'의 '지난'은 띄어서 써야 한다. 아, 정말 환장하겠다. 같은 '지난'인데 어떤 '지난'은 붙여 쓰고, 어떤 '지난'은 띄어 써야 한다. '지난 일'의 '지난'은 '지나다'의 활용형이다. 지난주, 지난달, 지난해는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형태다. 지나간 주, 지나간 달, 지나간 해라고는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말을 띄어서 쓰냐 붙여서 쓰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다음주
(1) 이번 주의 바로 다음에 오는 주.
(2) 기준으로 하는 어떤 시점의 바로 뒤에 오는 주.
[다음]
1. 기준으로 하는 어떤 시점의 바로 뒤에 오는 주.
2. 이번 주의 바로 다음에 오는 주.
[네이버]
다음 주
- 이번 주 바로 뒤에 오는 주.
[우리말샘]
다음날
(1) (기본의미) 어떤 날을 기준으로 하여 바로 뒤에 오는 날.
(2)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다음]
1. 정하여지지 아니한 미래의 어떤 날.
[네이버/표준국어대사전]
1. 기본의미 어떤 날을 기준으로 하여 바로 뒤에 오는 날.
2.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네이버/고려대한국어대사전]
다음 날
- 어떤 날의 그 다음 날
- 지정된 날짜의 다음 날
- 내일(오늘의 다음)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어떤 날'은 '다음날'이고, '어떤 날의 그 다음 날'은 '다음 날'이다. 이건 마치 영어 문법을 공부하는 기분이다. 단어의 예시는 다르지만 someday와 some day의 차이를 공부하는 기분이랄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someday랑 some day는 딱히 헷갈리지 않는데 '다음날'과 '다음 날'은 내 나라 말인데도 헷갈린다는 사실이 당황스럽다. 맞춤법은 덜 한 편인데 띄어쓰기는 이렇게 공부를 해놓고도 다음번에 또 써먹으려면 헷갈려서 또 찾아봐야 할 때가 많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다음번
-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올 차례
다음 번
- 바로 뒤이어 오는 차례
이런 내용도 성립한다.
다음번에는 꼭 가겠습니다.
다음 번은 우리 차례야.
앞사람(O) / 앞 사람(X)
옆사람(X) / 옆 사람(O)
뒷사람(O) / 뒷 사람(X)
띄어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춤추는 띄어쓰기 문법! 이쯤 되면 고도의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다.
1.
부부간
부자간
모자간
2.
개인 간
이웃 간
혈육 간
국가 간
자식 간
서울과 부산 간
부부간, 부자간, 모자간은 한 단어로 쓰이지만, 2번의 '간'은 명사 뒤에서 대상과 대상의 상호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밖
- 조사로 쓰일 때는 붙여 쓰고, 명사로 쓰일 때는 띄어 쓴다.
- 조사로 쓰일 때는 뒤에 부정을 나타내는 말(없다, 모르다, 못하다)이 따라 나온다.
- 명사로 쓰일 때는 어떤 것에 둘러싸이지 않은 공간을 말한다.
대문 밖
일밖에 모르는 사람
금강산
속리산
에베레스트 산
후지 산
수원시
경주시
뉴욕 시
피렌체 시
섬진강
두만강
나일 강
양쯔 강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 어
스페인 어
외래어에 더해질 때는 띄어 쓰고, 한국말에 더해질 때는 붙여 쓴다.
함께하다
- 동사
-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다.'
- share
함께 하다
- 부사 + 동사
- '같이 하다'
- together with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 - 정신적인 경험을 공유한 친구(추상적인 경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 - 어려움이라는 환경을 같이 겪은 친구(구체적인 경험)
※ 함께 생사고락을 한 친구
이렇게 어순을 바꿔서 쓸 수 있으면 '함께'랑 '하다'를 띄어서 쓰는 게 가능하다.
한번
- 부사로 쓰일 때는 붙여서 써야 한다.
한 번
- 횟수를 나타낼 때는 띄어서 써야 한다.
※ 단위, 즉 수량을 나타내는 말은 다 띄어서 씀(한 개, 한 번, 한 잔, 한 묶음, 한 명, 한 달, 한 쌍).
언제 한번 만나서 차나 한 잔 합시다.
한 번만 더 해보자.
'한번'인지 '한 번'인지 헷갈릴 때는 '한번' 자리에 '두 번', '열 번' 이렇게 다른 횟수를 넣어서 의미가 성립하면 띄어서 쓰고, 성립하지 않으면 붙여서 쓰면 된다. 첫 번째 문장에 '언제 한번' 대신 '두 번', '세 번'을 넣어보면 문장이 어색해진다.
다시 한번(O)
다시 한 번(X)
여기서는 '횟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난 어느 때나 기회'라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한번'이 맞는 표현이다.
전세계 - 前世界(불교 용어)
전 세계 - 全世界
여기까지만 하자. 이 글을 쓰느라 머리에 힘을 줬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