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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결혼식이 없다

결혼식 다시 보기

by 자체발광

나는 결혼식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를 넘어서 결혼식에 가는 게 무섭다. 결혼식에 가면 포착되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들이 수두룩한데 이번엔 또 어떤 게 눈에 들어올까 이런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결혼식 당사자의 초청이 아닌 부모의 초청을 받고 갈 때면 '내가 이 결혼식에 가는 게 맞나?' 이런 의문을 가지고 간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성인인 아들/딸이 자신의 결혼식에 올 손님을 부모가 초대를 하는 게 결혼식의 당사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부터 든다. 결혼식을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부모가 끼어드는 게 껄끄럽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결혼식에 갈 때 축의금을 얼마로 할까로 다투시는 걸 종종 봤다. 싸우는 내용은 하나! 아버지는 좀 더 넣길 바라셨고, 엄마는 우리 애들 결혼식할 때 오지도 않을 사람들인데 우리 형편에 많이만 넣을 수 있냐였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책을 읽다가 제주도에서는 옛날에 아내랑 남편이 결혼식에 갈 때 축의금을 따로따로 했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관련 책이었는데 집구조를 설명하면서 옛날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부엌도 각자 따로(한 담장 안에 시부모 집, 아들네 집이 따로 지어져 있는 구조) 썼고, 그래서 고부 갈등이 없었다는 내용을 읽던 중 결혼식 축의금까지 각자 했었다는 내용까지 다루고 있어서 신기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는 부엌이라는 공간은 각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인데 그걸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왔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공유하는 건 문제가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해놓았는데, 두 책의 얘기가 연결이 되면서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의 단순한 생각으로는 '왜 축하할 일에 선물을 하지 않고 돈봉투를 준비하지? 그것도 이렇게 싸우면서.' 이랬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커가면서 결혼과 결혼식이란 거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고,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뭔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어렸을 때의 기억이 거름이 되어 결혼식에 하객으로 드나들면서 내 눈에 포착되었던 점들을 정리해봤다.



1. 인사 가기


남녀가 사귀다 결혼식 얘기가 오가면 상대방 부모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게 된다. 인사를 드리러 가는 사람이 마음의 준비가 되었느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부모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사하러 오라는 호출을 하는 부모도 있다. 아들/딸이 결혼할 여자/남자 친구를 소개해 드리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예의다. 물론, '언제 인사시켜 줄 거야?' 이런 식으로 한번 보고싶다는 의견을 비쳐볼 수는 있겠다. 다만, 당사자들끼리 의견이 맞아야 되는데 상대방 부모의 '호출'에 응하는 형식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부모님이 보잔다.'가 되면 문제라는 얘기다.



2. 결혼식 날짜 잡기


결혼식 날짜를 예비 신랑신부가 주체가 되어서 양가 가족들의 스케줄을 봐가며 편리한 날을 잡는 게 아니라 부모가 '길일', '흉일'을 따져가며 잡기도 한다. 물론, 집마다 커플마다 다르니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가 잡아준 결혼식 날짜에 불만을 품은 남녀를 꽤나 봤다. 예식장 예약이 꽉 차서 할 수 없이 일요일로 잡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토요일에 날짜를 잡고 싶은데도 일요일이 길일이라고 일요일에 해야한다고 어른들이 뜻을 굽히지 않아서 일요일로 날을 잡아놓고, 일요일에 날을 잡았다고 먼 길을 달려온 하객들한테 한소리 듣는 것도 봤다. 내 결혼식인데 나와 결혼할 사람 둘이 날짜를 잡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따라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잡아준 날짜에 결혼의 주인공들이 따른다? 어른들이 욕심을 내는 건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3. 청첩장


결혼식은 내가 하는데 하객을 초대하는 청첩장에는 '누구의 장남/장녀, 차남/차녀, 삼남/삼녀' 이렇게 이름이 올라간다. 심지어 '누구의 육녀'까지도 봤다. '나'라는 사람 개인이 아닌 내가 누구네 집 육녀라는 사실을 왜 만인 앞에 공개해야 할까? 유치원 입학하는 것도 아닌데 왜 결혼식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의 이름들이 단독으로 오르지 못하고 부모를 대동해야 할까? 부모의 결혼식도 아니고 젊은 남녀 당사자들의 결혼식도 아니라는 사실에 청첩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결국 대한민국 남녀의 결혼은 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위치에서 시키고, 보내는 일인 거다. 아니라면, 왜 신랑 신부 이름 단독으로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가! 대한민국에 진정한 결혼식은 없었다. 독립된 '나'들의 결혼이 아니었다.



4. 하객 맞이


결혼식장에 갔는데 신랑과 신부는 어디 가고 양가 부모님들이 하객을 맞이한다. 난 이게 정말 괴이하다. 결혼식 당사자가 나와서 손님을 맞이해야 되는데, 신부는 대기실에 앉아 있고, 신랑은 손님을 맞이할 때도 있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신부는 손님을 맞이하기엔 불편한 드레스를 입었으니 고이 앉아계셔라인 건지, 부모가 주관하는 아들/딸의 결혼식 행사라는 메시지인지 아무튼 하객맞이는 양가 부모님들 몫(?)이 되었다. 어느 쪽이 맞든 이거 이상하다. 부모님들이 대기실로 들어가고 신랑 신부가 등판해야 된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내 팔자가 굉장히 불쾌했다. 드레스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박차고 나갔을 거다. 남자를 만날 때 내 희망사항은 '평생 똑같이 갈 자신 없으면 만나는 동안만 티나게 잘해주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였다. 그래서, 남자가 가방 들어준다고 할 때도 앞으로 주욱 들어줄 거 아니면 그냥 내비두라고 했다. 남자가 남녀관계에 평생 쓰는 에너지의 양이 100이라면 여자를 만나는 동안 써먹는 에너지가 90이고, 결혼생활 동안 나머지 10을 가지고 사는 부부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도 나는 만날 때 50, 사는 동안 50 이렇게 공평한 비율로 내 멋대로의 기준으로 나눠놓고 있었다. 뭐 만날 때 10, 결혼하고 90 이 비율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말인데, 결혼생활 내내 공주대접 받는 거라면 결혼식 당일 공주대접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현실은 결혼식 하루만, 인심 좀 쓰면 신혼기간 동안만 공주대접이지 않은가.


행사의 주인공이 손님을 맞이하는 게 이치이고 보면 부모가 하객을 맞이한다는 건 부모가 주관하는 행사라는 얘기지 아들 딸의 행사가 아니란 얘기다. 전국의 아들 딸은 내 결혼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다.



5.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사회자의 "신랑 입장!" 외침과 동시에 신랑은 씩씩하게 입장을 한다. 반면, 신부는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해서 신랑이 마중 나와 신부를 맞이한다. 나는 결혼식에서 제일 괴로운 장면이 '신부 입장'이다.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부모가 이혼을 해서 혹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신부 입장할 때 손 잡고 입장할 사람이 없다고 신부가 울고 속상해 하는 다 거기서 거기인 단골 스토리가 이해가 안 되었다. 신랑 신부 동시 입장하면 되지 저게 울 일이냐고 그랬다. 저게 드라마 소재가 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고 그랬다. 물론, 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들한테 내 불평은 산통 깨는 일이었다.


신부 혼자 입장, 신랑신부 동시 입장, 아버지 손 잡고 입장까지 각각의 형태는 나중에 살고 있는 모습과 비교해 보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100% 전부 다는 아니었지만 묘하게도 사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6. 주례


주례자와 신랑/신부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까지 정도만 소개하면 될텐데 사회자가 주례자의 프로필 경력을 주욱 읊어주는 걸 많이 봤다. 처음 봤을 땐 적잖이 충격이었다. 결혼식 당사자들이 주례를 섭외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정해준 주례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봤다. 그렇게 등장한 주례자가 결혼 당사자들을 축하하는 말보다 자기 자랑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경우도 봤고, 주례하면서 자기 사업 얘기는 왜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례자를 신랑 혹은 신부가 의뢰하지 못한 것도 이상한데 부/모의 친구나 지인이 주례자로 섰으니 신랑 혹은 신부와의 인연도 아니고 부/모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지까지 자기들 얘기는 왜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끼리 아는 사람이다 보니 정작 결혼 당사자들 축사는 초간단으로 끝내는 웃지 못할 결혼식도 봤다. 주례자의 역할이 뭔지는 인지하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 주례 생략하고 편지 낭독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차라리 나았다.



7. 결혼식 예복


신부 드레스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만들어놓고 껌딱지처럼 붙어서 드레스를 담당하는 도우미까지 있다. 도우미가 때론 몇 명까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도우미 숫자가 많다보니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아서 결혼식 진행이 지체되기도 한다. 본인들 결혼식인데 스스로 뭘 못하고 도우미들의 손놀림과 지시에 맡겨진다. 때론, 도우미들 행사에 신랑 신부가 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초에 드레스가 간편하면 도우미가 없어도 된다. 드레스가 간편하면 하객이랑 인사도 나눌 수 있다. 신부 혼자 주체 못하는 드레스는 입고 있는 신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나는 드레스 보러 갔을 때 간단한 형태를 찾았으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나혼자 감당표 드레스가 없었다. 고리타분한 결혼은 죽어도 안 하겠다고 선언했던 터라 플래시몹 형식을 계획했고 썬글라스 끼고 춤추면서 입장, 퇴장하는 형식이었는데 나 죽었소 하고 드레스를 예약했다. 결혼식 날 춤 시작하자마자 빌어먹을 드레스 땜에 뒤로 발라당 해버렸다.



8.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가 있다. 신랑의 경우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신랑 신부 둘 다 절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뭔가 박자가 맞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양가 부모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놓고 신랑신부가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있다는 거 자체부터가 이해가 안 간다. 유교적 발상이 떠올라 난 이 장면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 부모가 개입해서 질질 짜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다. 전통 혼례 짬뽕 버전 보는 거 같아서 괴롭다.



9. 축의금을 내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식당으로 직행해서 밥을 먹으면서 결혼식을 화면으로 지켜보는 걸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돈 내고 식당에 밥 사먹으러 온 사람들도 아니고 참 씁쓸한 문화다.



10. 폐백


요즘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직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난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 사진을 보면 왜 신랑과 신부가 임금과 왕비 복장을 하고 있는지 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랑과 신부 고유의 의상이 없고, 결혼식 끝나고 궁궐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면서 왜 하필 임금과 왕비 복장인지 정말 궁금했다. 결혼식 하루만이라도 임금과 왕비 기분을 내보라는 걸까? 신랑과 신부의 행복이 임금과 왕비 되어보기라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11. 결혼식장엔 부모님 손님, 장례식장엔 자식 손님


공평하긴 하다.



12. 축의금 계산


부모님을 보고 축의금을 낸 사람. 결혼 당사자를 보고 축의금을 낸 사람. 이것도 완전 코미디다. 결혼당사자를 보고 축의금을 전달해야 되는데 대한민국 결혼식에서는 한 50%는 부모님들 행사이다시피 하다보니 축의금도 파가 나뉜다. 나의 경우 축의금 접수를 했던 바로 아래 남동생이 결혼식 끝나고 나한테 봉투째 몽땅 넘겨줘서 얼떨결에 받아놨다. 막내 남동생이 그걸 왜 누나가 다 갖냐고 언질을 줘서 신혼여행 다녀오는 길에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러 갔다가 몽땅 드리고 왔다. 남편은 부모님과 딱 50 : 50으로 나눴다. 이 자체가 코미디로 보였다. 이건 내 결혼식도 아니고 부모님 결혼식도 아니고 내가 뭘 한 건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13. 30분 시스템


한팀 결혼식이 끝나면 다음 팀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서 시간을 의식해야 하는 결혼식. 한 결혼식장 안 여러 예식홀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는 결혼식. 즐기는 행사가 아닌 무언가에 쫓기듯 빨리 빨리 해치워야 되는 숙제같은 결혼식.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있는 결혼식. 화려함을 위해 중요한 걸 놓치는 결혼식. 잔치가 아니고 30분 시스템에 메말라가는 결혼식 문화, 씁쓸하다. 어렸을 때는 그나마 마을잔치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 정도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하는 것이라기보다 보내고, 시키고, 가고, 오고의 문제다. 자식 결혼식에 숟가락 얻는 부모를 보면 결혼은 하는 게 아니라 보내고, 시키고가 맞는 거 같고, 결혼식이 딱 그 수준만큼의 형식을 띠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결혼식도 아니고 부모 결혼식도 아니고 짬뽕표 결혼식을 치렀으니, 결혼생활도 부부의 삶도 아니고 부모의 삶도 아닌 어정쩡한 삶이 펼쳐지는 거다.


결혼식부터 주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결혼하고 어른들 의견에 끙끙대는 건 예정된 모습이다. 청첩장에 이름 올리는 방식부터 뒤집어야 한다. 청첩장을 보면 결혼식은 양가 부모님들의 행사이지 신랑신부의 행사가 아니다. 자식을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청첩장은 주인인 신랑신부 당사자를 찾아가야 한다. 청첩장은 자식의 결혼식을 빌어 부모가 뿌린 축의금을 거두어 들이는 농사가 아니다.


결혼식 산업이라고 해도 될만큼 성장한 상업성에 마음고생, 결혼식을 준비하기까지의 정신적 육체적 고됨, 예식장 혹은 결혼식 준비 대행 업체와의 트러블은 속상해 해도 이런 요상한 결혼식 문화, 케케묵은 관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없다는 데서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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