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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를 읽다가...

by 자체발광

더 이상 집중이 안 돼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책 한 권을 지그시 다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집어 들지 않고 이 책 저 책 넘나들면서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책을 읽는다. 물론, 꽂힌 책은 끝장을 보기도 하지만 문어다리만큼이나 여러 권에 다리를 걸쳐놓고 메뚜기 스타일 독서를 할 때가 더 많다. 오늘(2025. 03. 09.)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쌓아놓고 읽다가, 주문해서 4일 전에 도착한 책이 눈에 들어와서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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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내용까지는 감탄을 하면서 읽어나가다가 '지칭'을 분석한 세 번째 내용부터는 '어라, 이게 아닌데.' 이런 심정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에 처음 글을 올렸던 주제랑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라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주제로 다시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세 번째 내용부터 여섯 번째 내용까지가 '지칭'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여섯 번째 내용까지 읽은 상태에서 더 이상은 몰입이 되지 않았다.


(29, 30쪽)

'집사람', '아내'가 농경 사회를 등에 업고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던 환경에서 태어난 말이라면, 오늘날은 시대에 맞게 변신 한번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농경 사회일 때는 먹혔던 발상이지만 21세기에 사는 여자들이 집에 들어앉아 집안 일만 하는 시대도 아닌데 어울리는 지칭도 아닐 뿐더러 여성으로서 분통이 터진다.


저자는 '남성 배우자를 두고 '바깥사람' 혹은 '바깥양반'이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했지만, 이거 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다. '존재'와 '사용'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여자들은 밖에 나가서 자기 배우자를 '바깥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우리 신랑은', '우리 남편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 바깥양반이'라고 말하는 순간 할머니 소리 각오해야 한다. '바깥양반은 집에 계세요?', '바깥사돈은 안녕하시죠?' 이건 할머니들 세계에서 오가는 언어다. 할머니들끼리도 '바깥사람'이라고 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그런데, 남자들은 왜 아직도 '집사람' 일까? 마음은 아직도 농경 사회? 이거부터 풀고 가야할 숙제다.


집사람, 아내가 남녀 역할 따라 생활하는 공간을 의식해서 탄생한 지칭이라고 치자. 오늘날 자신들은 '남편'이라고 칭하면서 왜 여자들한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지칭을 고수하는 걸까? 남편은 여편과 손발이 맞고, 여자가 집사람, 아내이면 남자도 그대로 바깥사람, (아내에 대응하는 남성 지칭어는?)이라고 해야 박자가 맞다.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남편과 여편', '?과 아내' 이런 구성이라야 균형이 맞다. 바깥사람이라는 말은 나이 지긋하게 드신 할머니들이나 써먹는 말이지 젊은 세대에서는 이 말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바깥양반이라고 하지 바깥사람이라고는 하지도 않는다. 젊은층에서 "제가 이 사람 바깥양반/바깥사람입니다." 이러는 남자 봤나? 나는 남편이지만 너는 집사람이어야 해?


옛날엔 역할 논리에 입각해 '집사람'이라고 불렀다 치자. 오늘날은 이 발상이 의미를 가지냐를 논해야지 '옛날엔 이런 뜻이었어.'에서 끝내버리니 맥이 풀린다. 왜 아직도 이 지칭을 버리지 못 하고 고수하는지 이거 논문감 아닌가?




'부인(夫人)'은 본디 임금이나 제후의 배우자를 뜻한다.(30쪽)

'부인(婦人)'은 사전에서 그저 며느리, 결혼한 여자를 이르는 글자라 풀이하고 ∼(30쪽)


그런데, 한자 풀이 방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인(夫人)은 '지아비 부' + '사람 인' 이다. 부인(婦人)은 '며느리 부' + '사람 인'이다. 婦는 한자사전에 '아내 부'라는 뜻도 올라가 있지만, 1차적인 뜻은 '며느리'이다.


1. '부(夫)'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니까 '고대 중국에서는 남자들도 머리에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됐음을 알렸다. 그래서 夫자는 이미 성인식을 치른 남자라는 의미에서 ‘남편’이나 ‘사내’, ‘군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네이버 사전에 이렇게 풀이가 되어 있다. 임금이나 제후라는 얘기는 없다. '임금이나 제후의 배우자'를 얘기하는 거라면 서민의 배우자를 부르는 한자호칭도 가져왔어야 했다.


2. 저자는 '부인(婦人)'을 '결혼한 여자를 이르는 글자'라고 풀이한다고 했지만, 결혼한 여자가 모두 며느리인 건 아니다. 모든 결혼한 여자가 아내일 수는 있어도 모든 결혼한 여자가 며느리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며느리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후자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다. '부인(婦人)'은 '며느리인 사람'이지 '결혼한 여자'가 아니다. 며느리는 daughter-in-law이고, 결혼한 여자는 married woman이다.


3. 한자사전 풀이대로라면 부인(夫人)은 '지아비 사람'이라고 풀이한 거고, 부인(婦人)은 '며느리 사람'이라고 풀이한 거다. 한자풀이, 뜻풀이가 잘못되었다. 뒤에서 설명 예정.


4. 한자는 분명 夫와 婦인데 왜 같은 눈높이에서 풀이를 하지 않고 둘 다 여자를 지칭할까? 부인(婦人)은 '며느리인 여자'로 풀이된다. 저자는 '결혼한 여자'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지만, 아마도 '아내인 여자'를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럼 부인(夫人)은 남편을 가리키는 말이어야 박자가 맞다. 부인(夫人)이 '임금이나 제후의 배우자' 혹은 '지아비의 사람'이라면 '지아비 사람', '지어미 사람'은 어떻게 부를 건가?


5. 부인(夫人), 부인(婦人)은 있는데 정작 '처인(妻人)'은 행방불명이다.



'부인(夫人)'보다 '부인(婦人)'이 주체적이고 존엄한 단어인데 말이다.(31쪽)


이거 말장난이다. 내 눈엔 둘 다 주체적인 말도 아니고, 존엄한 말도 아니다. 주체적이란 건 당사자를 그 사람 본래의 모습으로 불러줄 때 주체적인 것이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라고 다른 사람을 개입시켜야만 성립하는 호칭은 주체적이지 않다. '지아비 사람'이나 '며느리 사람'이나 둘 다 독립된 존재를 말하는 호칭/지칭이 아니라 누구 한사람 걸쳐야 성립하는 호칭/지칭이다. 그냥 '아내인 여자', 에너지 절약시대 버전으로 그냥 '아내'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며느리 부(婦)'자를 써놓고 '결혼한 여자'라고 우긴다. 그것도 그냥 '며느리'라고 하면 되는데 '며느리인 사람'이란다. 필요없는 호칭을 만들어놔서 부작용은 보너스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가 아닌 김땡땡, 이뿅뿅 이렇게 당사자 자신으로 불리는 게 주체적인 존재로 호명되는 경우다. 저자는 '부인(夫人)'보다 '부인(婦人)'이 주체적이고 존엄한 단어라고 했지만, 부인(婦人)은 '부인(夫人)'과 성격이 다른 말이다. 어떻게 다른지는 뒤에서 설명 예정이다. 비교는 대등한 성격일 때 가능하다. 더구나, '처인(妻人)'도 아니고 '부인(婦人)'이라는데, 이건 존엄이 아니라 모욕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였을지 몰라도 21세기 발상으로는 전혀 존엄한 단어가 될 수 없다. 왜 그런지 이유를 파보자.


1. 부인(婦人)의 부(婦)는 '며느리 부'이므로 한 남자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며느리'는 시부모에게 며느리다. 누군가의 아내를 가리키는 한자는 '처(妻)'다. '부부(夫婦)'는 '남편과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편과 아내' 이 조합은 '부처(夫妻)'라고 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아니고 왜 자꾸 남편과 여편을 '부부(夫婦)라고 세뇌시키는지 모르겠다. 국어사전이 사기를 치는데 아무도 지적을 하지 않는다. 왜? 이걸 자각하는 순간 '시(媤)'라는 추상적 의미를 깨부수어야 되는데, 한국사회는 가부장제를 청산할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가부장제는 여자들의 화두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부(夫婦)

'결혼한 한 쌍의 남녀' [다음 사전]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 [네이버 사전]


[다음 사전] 풀이대로라면 시아버지랑 며느리랑 결혼했다는 얘기인데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 막장 족보다. 네이버 사전 풀이는 '나 머리 나쁜 사전'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얼마나 자각이 없으면 '며느리'와 '아내'를 구분하지 못 하는가. 어떻게 보면 이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이걸 똑바로 직시하려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가부장제 사회를 깊숙이 찔러야 되는데 그럴 의지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부처(夫妻)'라는 더 명백한 말이 있는데 '부처'는 그저 석가모니를 부르는 말로 쓰일 뿐이다. 왜 굳이 '부부(夫婦)'라고 하는지 대한민국 사회는 여기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여자는 '아내'이기만 하면 안 되고, '아내이자 며느리'인 존재로 남아야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 여자가 며느리도 되고 아내도 되는 건 맞다. 그런데, 아내가 있는 남편한테 왜 자꾸 며느리 타령인가 말이다. 남편한테는 아내, 시부모한테는 며느리. 이 간단한 원칙을 깨부수고 맘에 드는 조합으로 골라 드시겠단다.


2. 무엇보다, 전제가 틀렸다. 앞에서 두 번이나 예고했던 풀이 들어간다.


부인(夫人)

(1) 지아비 사람

(2) 지아비 사람


부인(婦人)

(1) 며느리 사람

(2) 며느리 사람


둘 다 1번을 택하든가, 둘 다 2번을 택하든가 했어야 했다. 편리한 대로 하나는 1번, 하나는 2번 이렇게 골라먹기 하는 건 반칙이다. 그리고, 뽑기 선택권도 남자에게만 허용하는 건 반칙이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 상태에서 주체적이냐 아니냐, 존엄이냐 아니냐를 찾든가. '부부'도 그렇고 '부인'도 그렇고 남자들의 골라먹기에 여자들만 피눈물 난다. 남자 자신들은 가지지 않은 호칭, 여자에게만 딱지 붙여놓고 자기들은 북치고 장구치고도 모자라 존엄 타령까지 나왔다.


3. 고대 중국에서 '제사에 대한 권리'가 모계를 통해 전수되었다한들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서 제사라 함은 어디까지나 남편의 조상 제사이므로 '부(婦)'라는 글자에 고대 중국에서 써먹던 모계의 제사권 발상을 불러오는 건 대한민국 현실과 맞지 않다. 바로 앞 이전 시대도 아니고 자그마치 남의 나라 '고대' 시대다. 전에 이미 한자에는 '딸'이라는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지적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제사에 대한 권리가 무색해진다. 여자들에게 '전족'이라는 족쇄가 있던 나라다. 제사에 대한 그 대단한 권리를 가진 여자들에게 전족을 시켰던 나라다. 이런 중국에서 '아, 옛날이여!'를 노래하는 거라면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중국 고대시대처럼 제사에 대한 권리를 모계한테 돌려주자는 것도 아니고, 비록 한자를 가져다 쓰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고대 제사 풍습을 끌어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칭/지칭을 어떻게 바꾸자는 얘기도 아니고, '옛날엔 그런 뜻이 아니고 이렇게 대단한 뜻이었어, 그런 말이 어쩌다 이런 뜻으로 하락했는지...' 이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건 아마도 저자가 남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올케라 불리고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불러야하는 여자들의 처지가 되어보지 않았기에 '말이란 쓰는 사람의 진심이 있어야 존귀해지는 법', '마누라라는 표현도 진심이 담겼으면 그리 나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 서방'이란 호칭은 여전히 지속되겠지만 '도련님'이나 '올케' 같은 호칭들은 얼마나 더 오래 유지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잘 쓰이지는 않아도 필요한 말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한가한 감상으로 마무리를 하는 거다. 이런 말은 당사자인 여성의 입에서 나올 때 무게가 실린다. 아 물론, 여자들도 동의할 내용인지는 의문이 든다.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왜 '아내 처'를 쓰지 않고, '며느리 부'를 쓰는지 그걸 고찰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작업이다.



과거엔 (의심스럽긴 하지만)영광스러운 지칭이었다 치자. '아, 옛날이여!'인 건지 왜 남자들이 분석하는 호칭/지칭에 관한 책은 한자만 분석하다가 끝나는지 의문이다. 원래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과거에 미련이 많은 법. 과거엔 영광이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뒷이야기는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얘기도 없다. 내가 여성작가들이 쓴 책을 못 봐서 그런가(물론, 일부 호칭을 다룬 여성 작가들도 있지만 그때그때 문제되고 있는 호칭과 지칭을 시사 사건들 관점에서 분석하고 넘어가는 정도이지 호칭 지칭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한국사회 호칭/지칭을 분석한 책들은 대부분 남성작가들이 쓴 책이고, 좋은 쪽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쁘게 포장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책들뿐이다. 어떤 책들은 얼마나 이쁘게 포장을 하던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덮어버리기도 했다. 호칭과 지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유래를 따져보는 건 좋은데, 거기서 끝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된다 이런 발전적인 얘기를 하는 남성 작가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자는 여자가 아니기에 호칭과 지칭을 분석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나처럼 한을 품은 여자가 아니라서 불가능한 거라고 본다.




'올케'의 '올'은 '오라비'가 '케'는 '겨집(계집)'이 축약된 것으로 결국 '오라비의 계집'이란 뜻이다. '올'은 본래 '미숙한'이란 뜻이니 '올케'는 '갓 시집와서 미숙한 여자'라 할 수 있다. 다 큰 성인더러 왜 미숙하다 하느냐 할 수 있겠지만 시어머니에 비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43쪽)


그렇다면, 일시적인 호칭/지칭이어야지 왜 죽을 때까지 '올케'라고 부를까? 죽을 때까지 미숙한 여자 팔자라는 시각 도저히 못 봐주겠다.


일단 사전에는 '올'이라는 말에 '미숙한'이란 뜻이 보이지 않는다. '오라비'와 '미숙한'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도 낯설고, 설사 두 가지 뜻을 가졌다한들 두 가지 뜻을 동시에 적용시키는 것도 이상하다. 보통 여러가지 뜻이 있는 한자들은 한 번에 하나의 뜻만 사용된다. 그러니까, '오라비의 계집'이거나 '미숙한 계집'이거나다. 그런데, 후자의 뜻일 경우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딱히 오빠랑 결혼한 여자를 가리키진 않는다.


그리고, 뭐에 미숙하다는 걸까? 왜 시어머니랑 비교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자기집이고 며느리는 남의 집에 왔는데 미숙할 수밖에 없지 않나? 정작 비교 대상인 시어머니의 눈높이에서는 며느리의 미숙함을 따지지 않는데 왜 남편 여동생, 누나의 눈높이에서만 '미숙한' 걸 판단할까? 남편의 형이나 남동생은 자기 남동생이나 형이랑 결혼한 여자를 '형수님', '제수씨'라고 부른다. 이들의 눈높이에는 '미숙한'이 왜 호칭/지칭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왜 남편의 누나/여동생의 눈높이에서만 '올'자가 들어갔을까? 왜 언니/누나/여동생의 남편에게는 '미숙한'이 호칭/지칭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여성의 입을 빌려서 여성 깎아내리기? 여자의 미숙함은 주목 대상이지만 남자의 미숙함은 따질 필요가 없었던 걸까? 남편의 누나들, 여동생들 눈높이에서만 미숙해 보인다는 사실, 여자의 미숙함만 주목 대상이라는 사실, 이런 거 연구대상 아닌가? 누구의 시선이든, 미숙하든 능숙하든 그건 결혼한 남녀가 알아서 감당해야할 그들의 몫이다. 제삼자가 품평을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빠랑 결혼한 여자'라는 팩트는 버리고 '미숙하다'는 감정? 감성? 감상?을 집어넣어서 부르다니 이건 말장난 아니, 가스라이팅이다. 누군가가 미숙하다한들 그걸 평생 부르고 불리는 호칭/지칭에 써먹는 건 어른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라비의 계집'과 '오빠의 아내'는 어감이 확 다르게 다가온다. 오라비의 계집이든 오빠의 아내든 그 사실은 오라비도 알고, 오빠도 알고, 오라비의 계집도 알고, 오빠의 아내도 알고, 시부모도 알고 온 가족이 다 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객관적 사실을 굳이 콕 집어서 당사자에게 상기시켜 주는 호칭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굳이 '올케'라는 말을 써먹어야겠다면 이 말은 '지칭'으로 남아야지(이조차도 맘에는 안 들지만) '호칭'으로 부르는 건 전 국민의 감수성이 고장났다는 얘기다. '오라비의 계집아!' 이렇게 부르는 게 말이 되나! 한 인간이 독립된 개체로 불리지 않고 '누구의 누구'라고 불린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어감까지 좋지 못하니 갈수록 태산이다.


여동생이 언니의 남편을 부를 때는 '형부'라고 하고, 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는 '제부'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언니를 부를 때는 '처형'이라고 부르고, 아내의 여동생을 부를 때는 '처제'라고 한다. 여자끼리 부르는 한자 호칭이 없다 보니 '형제'를 끌어다가 형부, 제부, 처형, 처제라고 부른다.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한테는 '자매'라는 한자가 있지만, 언니나 여동생한테는 '자매'가 성립하지 않아서 아내의 언니나 여동생은 '형제'를 빌려서 '처형', '처제'라고 부른다. 언니나 여동생한테는 이렇게 빌려서라도 쓸 한자호칭/지칭이 있지만, 여동생이 오빠를 부르는 한자랑 누나가 남동생을 부르는 한자는 아예 없다 보니 저런 한자조합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게 '올케'다. 호칭/지칭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 어떤 호칭/지칭은 한자로 되어 있고 어떤 호칭/지칭은 한글로 되어 있는 이유가 있던 거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 발견!


1.'처(妻)'를 쓰냐 '부(婦)'를 쓰냐는 남편 맘대로다. 남편쪽에 적용할 때는 '부' 즉, 아내가 아닌 며느리 대접, 아내쪽에 적용할 때는 '처' 즉, 며느리가 아닌 그제서야 아내 대접으로 쓰였다. 부인(婦人)/처인(妻人)/형처(兄妻)/제처(弟妻)/부가(夫家) : 처남(妻男)/처형(妻兄)/처제(妻弟), 처가(妻家). '처가'는 '부가'랑 짝이 맞다. 그런데 부가(夫家)는 탈락이고, 시가(媤家)가 합격이란다. 왜? 대한민국에서 남자의 결혼은 '아내'랑 결혼한 걸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자의 결혼은 '남편+남편 집안'이랑 결혼한 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자한테는 아내이면서 며느리를 주문하고, 남자는 남편으로만 대접받겠다는 발상 때문에 며느리한테만 '부인(婦人)이라고 하고 그조차도 '아내'라고 우긴다. 부인(婦人)도 아내고 부인(夫人)도 아내다. 처인(妻人)만 아내가 아니다. 어쩌자고 이런 사기를 치는지. 거액이 걸린 사기가 아니면 눈도 껌벅하지 않는 대한민국!


2. 아내쪽이든 남편쪽이든 남자들이 부르는 호칭은 질서가 잡혔다. 처형, 처제, 처남 / 자형, 매제 / 형수, 제수. 각각 대응하는 호칭들을 짝지어 보면 도련님+아가씨+아주버님+형님(남편의 누나), 시누이+시동생 / 오빠나 남동생을 부르는 한자가 없어서 자형과 매제에 대응하는 남편쪽 호칭은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올케 탄생! / 형부, 제부(이건 빌려서 편의상 만들낸 말이고, 여동생이 언니를 부르는 한자, 언니가 여동생을 부르는 한자가 없어서 이 경우도 대응하는 원래의 해당 호칭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도련님, 아가씨, 아주버님, 형님(남편의 누나)은 각각 부제(夫弟), 부매(夫妹), 부형(夫兄), 부자(夫姉)에 해당한다. 안 써먹어서 그렇지 답은 다 있었다. 물론, 맘에 드는 발상은 아니다.


3. 형(兄)은 '맏 형' 자를 쓴다. 그런데, 대한민국 각 가정의 맏이들은 다 아들인가? 맏이가 딸인 경우에 해당하는 한자는 없다.



아내는 남편의 누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라고 부른다. 남편은 아내의 언니를 '처형'이라고 부르고, 아내의 여동생을 '처제'라고 부른다. 같은 발상으로 아내는 남편의 누나를 '부자(夫姉)', 남편의 여동생을 '부매(夫妹)'라고 부르면 되는데, '형님', '아가씨'라고 부른다. 남편의 형을 '부형(夫兄)', 남편의 남동생을 '부제(夫弟)'라고 부르면 되는데 '도련님', '아주버님'이라고 부른다. 굳이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리길 원한 걸 보면 양반놀이가 하고 싶었나 보다. 특별대접을 원했거나. 아니면 발음이 거시기해서 그랬나? 부자, 부매, 부형, 부제! '발음이∼ 끝∼내줘요!'이긴 하다. 발음을 떠나 올케, 도련님, 아가씨 이런 호칭을 쓸 바에야 갑질 호칭 버리고 부형, 부제, 부자, 부매 이런 말을 써보자는 차선책으로써의 예이지 이것도 최선은 아니다.


같은 발상이라면, 남편의 남동생이 형의 아내를 '형처(兄妻)'라고 부르고, 남편의 형이 남동생의 아내를 '제처(弟妻)'라고 불러야 한다. 남편의 형은 남동생의 아내를 '제수씨'라고 부르고, 남편의 남동생은 형의 아내를 '형수님'이라고 부른다. '형처', '제처'라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혼한 남녀가 '부처(夫妻)'가 아니라 '부부(夫婦)'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형부(兄婦)', '제부(弟婦)'라고 하면 형부(兄夫), 제부(弟夫)랑 충돌해 버린다. 한자는 다르지만 입에서 나올 때는 한자 구별도 안 되고 발음도 같다. 또, 兄婦, 弟婦는 '형의 며느리', '아우의 며느리'가 되어버린다.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라 '형수님', '제수씨'가 탄생한 거다. '제수([弟嫂)씨'한테 '형수 수(嫂)'를 붙여서 부르는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감행했다. 답이 안 보이니 호칭/지칭체계가 일관성을 포기하고 며느리들을 희생시켜버렸다. 그렇다고 자꾸 대안어를 만들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런 대안어를 궁리할 게 아니라 호칭, 지칭 체계를 갈아엎어야 한다. 대공사를 해야 한다. 평등한 호칭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도 한가한 소리 좀 해보자. 한국말의 호칭, 지칭들은 참 멋대가리도 없다. '누구의 누구' 즉, '형의 아내', '언니의 남편' 이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 가리킬 때 써먹는 지칭인데, 얼마나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이걸 호칭으로까지 써먹을까? 예를 들어, 형부, 제부를 보자. 언니의 남편, (언니 위치에서)여동생의 남편인 거 가족끼리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당사자 앞에서 굳이 '형부', '제부'라고 부를까? 한국말로 '언니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이라고 하면 남들한테 가리킬 때 써먹는 지칭이 된다. 이걸 '형부(兄夫)', '제부(제부)' 이렇게 한자로 치환하면 지칭도 되지만 호칭으로도 써먹을 수 있다. 이거 끝내주는 마법 아닌가! 이래서 한자, 한자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호칭과 지칭이 꼬인 건 한국말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기도 한 거였네? 뜻은 같은데 한자로 쓰냐 한글로 쓰냐에 따라 다르게 의미가 부여되는 이 현상은 앞에서 시집, 시가, 시댁에서 이미 한번 맛봤다.


인간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개별적인 존재다. 그 사람만의 개별적인 특징인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이 땅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 발상일까? 형부, 제부, 형수님, 도련님 이런 거 말고 대한민국에서도 그 당사자 이름으로 불러보는 세상을 바라는 건 꿈깨! 소리 듣기 딱이다. '나이', '서열'이라는 이 매력적인(?) 발상을 죽어도 포기 못할 테니까.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달달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내려놓고 '사람'을 본다면 살맛나는 세상,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텐데 스스로의 팔자를 피곤하게 만들어 가고 있으니 참 답이 없는 나라다. 나이=권력으로 여기면서 민주주의의 기치인 평등은 바람에 날려보낼 먼지 수준 취급하면서 민주주의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참...


언니의 남편아, 여동생의 남편아, 아내의 언니야, 아내의 여동생아·····, 한자를 풀어보면 이렇게 부르고 있는건데 이거 나만 웃긴가? 당사자를 앞에 두고, '언니의 남편아'라고 부르는 이 지극히 대한민국스런 코미디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코미디라는 자각조차 못하니 이래저래 암울하다.




올케니 부인이니 언니/누나/형/오빠니 아가씨니 도련님이니 집사람이니 이런 말이 문제가 되는 건 '너'를 너라 부르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대등한 눈높이의 언어 사용이 불가능한 언어환경에 살다 보니 터져나오는 문제인데 억울함만 표출할 뿐 이 사실은 주목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질 않는다. 어원에서 답을 찾는 건 학문적 접근 차원에서는 의미있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현실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인문학 타령만 하면 뭐하나! 심리학자, 국어학자, 사회학자들 다 자기 할 일 던져놓고 나몰라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난 건 호칭/지칭의 문제이지만 이건 파고 들어가면 민주주의와 유교의 충돌 그리고 가부장제 청산 문제다. 호칭/지칭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는 건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유교도 못 버리고 민주주의도 못 버리고...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흘러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선박에 탑승한 게 죄다. 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유교의 공생관계인지 기생 관계인지 이 빌어먹을 짬뽕 상태가 종을 치지 않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무늬만 민주주의인 거다. 사연 없는 단어는 없지만, 사연도 사연 나름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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