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식당의 서비스 문화

by 자체발광

예전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숟가락이랑 젓가락을 직원이 가져다 주었는데, 언제부턴가 식탁 위에 수저통이 놓였고, 서랍형 식탁에서 손님이 직접 꺼내서 밥을 먹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물도 컵에 담아서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종이컵이나 스텐컵 혹은 플라스틱 컵이랑 물병을 가져다 주면 손님이 직접 따라 마신다. 야외로 나온 것도 아니고 배달을 시킨 것도 아닌데 식당에서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기분이란... 직원이 갖다주면 그나마 나은 곳이다. 물과 반찬은 셀프를 지향하는 식당에서는 들어가자마자 물부터 가져와야 한다. 물을 달라고 하면 물은 셀프라고 가져다 마시라고 한다. 인건비 절약 차원에서 직원이 할 일을 손님에게 시키는 거다. 내 돈 내고 밥 먹으러 가서 손님 대접은커녕 밥벌이 장사 주머니 채워주는 존재로 취급받는 기분이다.


내 돈 내고 식당에 들어가서 물도 내가 가져다 마셔야 하는 거에 사람들은 별 거부감이 없나 보다. 가져다 마시란다고 또 가져다 마신다. 그런 식당 문화에 거부감은커녕 같이 간 일행 중에 막내를 호출해서 물을 따르게 하고, 물과 반찬을 담아오게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게 하는 일행들과 함께라면 마음이 피곤해진다. 식탁 위에는 각종 양념통이랑 냅킨에 수저통, 컵까지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하필 그런 것들이 비치된 그 위치 가까이에 앉기라도 하면 밥 먹을 때도 불편해지고, 이것저것 달라는 사람한테 전달도 해줘야 한다. 물론, 서랍형이 대세이지만 아직도 식탁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식당들도 종종 만난다. 서랍형과 병행하는 식당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식은 사기 그릇에 담아서 나오는 식당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물컵도 사기로 된 컵은 구경한지 오래되었다. 돈 내고 밥먹으러 간 손님인데 귀한 대접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손님 대접은 해줘야 될 거 아닌가! 플라스틱 그릇은 식당 입장에서는 다루기가 쉽다. 가벼워서 다루기 쉽고, 설겆이 할 때 편리하고, 무엇보다 깨질 일이 없다. 서비스 정신으로 손님을 맞이할 줄 모르고 식당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싸구려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이 나온다. 식탁 한가득 싸구려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반찬 접시들을 보면 심할 땐 개밥그릇에 밥먹는 기분이 들어서 후다닥 먹고 나오기도 한다.


압권은 따로 있다. 전골이나 찌게처럼 손님 앞에서 조리되는 식당에서도 개인 그릇을 플라스틱 접시로 준다. 국자까지 플라스틱을 받아들면 나는 숟가락 놓고 나오고 싶어진다. 뜨거운 국물을 플라스틱 국자로 퍼서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서 먹어야 한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스텐 그릇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 문제는 스텐그릇이 없다는 대답을 들을 때다. 때론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뜨거운 국물이라 스텐그릇이 필요하다고 하면 플라스틱 그릇이 뭐가 어떠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스텐 그릇은 원래 없다고 그냥 먹으라고 한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식당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음식을 주문했으니 그냥 나올 수도 없고, 꼼짝없이 플라스틱 국자랑 플라스틱 접시의 혜택을 누리고 나와야 한다. 식당에 갈 때마다 스텐 그릇을 달라고 하는 것도 일이라 플라스틱 그릇은 치워놓고 밥그릇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가져다 준 그릇이 있는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고 타박하는 일행도 있다. 이게 뭘 시사할까? 그만큼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내가 가는 식당들만 그런 게 아니다. TV에서 뜨거운 국물에 플라스틱 국자를 푹 담그는 장면을 버젓이 내보내는 거 보면 나라 전체가 그냥 무감각하다는 얘기다.


이래 놓고 출산율이 오르지 않아서 큰일이라고 난리다. 화학 물질에 노출된 식생활이 불임의 결정적인 이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임신이 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된다.


물론, 비싼 식당에 가면 그릇도 몽땅 사기 그릇이고, 수저도 포장지가 씌워진 상태로 반찬과 함께 직원이 직접 가져다 준다. 나는 음식을 주문했는데 포장지에 씌운 수저를 가져다 주는 식당이면 '음... 이 식당은 뭘 좀 아는군! 맛있으면 담에 또 와야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허구헌 날 비싼 식당에만 갈 수도 없다.


반찬 접시가 플라스틱이다 보니까 식당 직원이 반찬 접시들을 내려놓을 때도 아무래도 조심성이 덜하다. 물론, 식당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먹고 나간 식탁을 치울 때 보면 플라스틱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끝내준다. 깨질 염려가 없으니까 그릇을 탁탁 놓으면서 후딱후딱 치우는 거 보면 플라스틱 그릇은 먹고 치울 때 빛을 발하는 거 같다. 순전히 식당 직원들 편의가 반영된 그릇 선택이다.


고기를 먹으러 가면 직원이 구워 주는 곳도 물론 많지만 손님에게 직접 구워서 먹으라고 하는 곳도 있고, 처음에는 구워주다가 나중에는 손님이 구워서 먹으라는 곳도 있다. 요리가 다 되어서 나오는 게 정석이지만 바로 눈앞에서 구워먹는 맛에 가는 것도 있다. 직원이 구워주어야 하지만 내 돈 내고 먹으면서 내가 직접 구워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이다 보니 서비스 문화 개선에 발전이 없다. 다 익은 뜨거운 고기를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줄 때는 당황스럽다.


식당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데 이런 건 나이 젤 어린 사람이 하는 거라고 물을 따르게 하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게 하는 꼰대들이라도 만나면 밥 먹고 싶은 맘이 싹 달아난다. 행여 숟가락통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기라도 하면 '이건 원래 제일 어린 사람이 해야되는 건데 오늘은 내가 한다.' 이렇게 생색을 낼 게 아니라 왜 손님이 직접 하게 하는지 식당에다 이걸 문제 제기하는 게 더 필요한 일 아닌가! 워낙 일상이 돼버려서 문제 제기가 먹히진 않겠지만 자꾸 부딪히다 보면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다니다 보면 손님 대접을 할 줄 아는 서비스 문화가 부재함을 자주 느낀다. 그런데, 그 서비스 문화의 부재는 손님 대접을 할 줄 모르는 식당과 손님 대접을 받을 줄 모르는 손님의 환상의 콜라보였다.


식당 허가를 내 줄 때 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릇들도 감안해서 허가증을 내주면 좋겠다. 식당을 하려는 사람의 마인드도 중요한 요소로 봤으면 좋겠다. 돈은 벌어야겠고 음식 좀 할 줄 안다고 식당 하나 차리자 이런 사람 말고 식당 운영에 자부심을 갖고 평생을 운영하다가 대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사람들이 식당을 열어야 된다. 식당 차릴 자금이 있다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식당을 열 수 있는 환경 말고, 내가 만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담아 음식을 파는 식당, 손님의 입장을 생각하는 식당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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