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잔 Jul 07. 2024

#7. 엄마와 딸의 돌로미티 탐방기

이탈리아의 알프스도 아름답다

어느덧 여행의 10일차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알프스인 돌로미티, 그 중에서도 '오르티세이'라는 마을은 참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조식이 제공되는 곳이라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더니,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간단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빵과 여러 종류의 치즈, 잼, 시리얼, 그리고 과일까지 간단히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이미 앉아서 먹고 있는 외국인 숙박객이 있었다. 커피는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게 계속 따뜻하게 데워주셨고, 오랜만에 추운 곳에서 커피 다운 커피를 마시니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오늘의 첫 여정은 Lake of Carezza(카레짜 호수)다. 런데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좁은 산길을 운전해야 하는 것이라 약간 무섭기도 했고 거울처럼 아름다운 호수에 가려는 것인데 비 때문에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 당황스럽게도 와이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우측 손잡이를 올리면 보통 작동이 될텐데, 그게 고정이 안 되고 손으로 계속 잡고 있어야만 되는 것이었다. 차에 있는 설명서를 아무리 보고 인터넷으로 다 검색을 해봐도 그런 정보가 없었다. 결국 수동으로 엄마가 계속 올렸다 내렸다 하며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반대 편에서 오는 트럭 아저씨가 쌍라이트를 깜빡거리는 것이었다. 뭔가 배려해 주는 느낌의 쌍라이트여서 위험한 곳이 있나 하고 조심히 운전하기 시작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이 교통 단속을 하고 있었다. 과속하는 차량들을 잡는 것 같았다. 엄마가 저렇게 쌍라이트를 켜 주는 건 1980~9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근데 뭔가 그렇게 알려주는 것을 보니, 괜스레 남의 나라에서 따스함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비와 경찰을 뚫고 카레짜 호수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선 와이퍼부터 고정하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아 계속 만져보는데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5분을 넘게 헤매고서야 앞으로 당기면서 위로 올리면 고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와이퍼 고정하는 방법 하나 찾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그래도 결국 찾았으니, 이것이 바로 집념의 한국인이다.


밖을 보니 여전히 비는 많이 내렸고 주차장에서 터널 같은 곳을 지난 뒤 차도를 건너가야 했다.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진 않는 편이라 괜찮았다. 그렇게 마주한 카레짜 호수는 역시 날씨 때문에 생각만큼 예쁘지는 않다. 그래도 건기에 가면 호수에 물이 없다는 소리도 들리던데, 나름 비오는 날 특유의 운치가 있었다.


비오는 날의 카레짜 호수

날이 좋았다면 데크가 잘 되어 있어서 한 바퀴 걸어보고 싶었지만 점점 신발이 젖고 옷이 축축해지기 시작해서 1/5정도 걸어가서 사진만 찍고 다시 차를 타로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오르티세이에 숙소를 잡은 이유 중 하나가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여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날이 좋지 않아서 과연 케이블카가 운영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운영을 하긴 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선 한참을 올라가야 했는데, 그래도 에스컬레이터가 잘 되어있는 편이었다.


처음엔 엄마와 나 둘이서 작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 즈음에 큰 케이블카로 옮겨 타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비가 오전보다는 조금 그쳤던 지라, 올라가면서 바라본 풍경도 벌써 아름다웠다.


하이디가 달려올 것 같은 풍경

그렇게 도착한 세체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세차다. 고혈압이 있는 엄마가 혹시나 추워서 문제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춥고 바람이 불었다. 엄마는 가져온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는데, 뒤에서 보니 진짜 알프스에 온 하이디..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된 것 같았다. 구름이 끼고 날이 추워서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올라온 만큼 구경은 최대한 하자 싶어서 알프스 산맥을 조금씩 걷다보니 구름이 걷히고 아름다운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프스 소녀 하아디의 어머니의 어머니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에서 15분 정도만 올라가도 경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포인트가 나와서 딱 거기까지만 찍고 왔다. 너무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 나니깐. 그냥 내려가기는 아쉬웠기에 케이블카 정류장 근처에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 곳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보다 따뜻한 내부에서 경치를 보며 먹는 점심이 훨씬 좋았다. 돌로미티는 전체적으로 독일과 가까워서인지 독일 음식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간단히 슈니첼과 굴라쉬를 시키고, 엄마는 따뜻한 커피를, 나는 화이트와인을 시켰다. 이 따뜻하니 엄마가 살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식당에 꽤 오래 앉아있다보니 바깥 날씨가 좋아질 때면 달력에서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지는 것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음에는 날이 좋은 날 트레킹을 하러 와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저녁은 'Turonda(투론다)' 라는 피자집에 갔다. 로컬들이 많아 보였다.

피자가 정말 역대급이었다!


구글에서 사람들이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이는 샐러드와 피자, 그리고 맥주 두 잔을 시켰는데, 오랜만에 먹는 채소에 두 눈이 뜨였고 그 샐러드에 어울리는 소스마저 너무 황홀했다. 피자는 태어나서 먹어본 피자 중에 탑3 안에 들 정도로 맛있었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도 남길 수 없을 정도의 맛이었다. 더군다나 엄마가 좋아하는 서빙하는 사람들의 꽤 빠른 반응속도까지.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추어진 식당이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의 호텔 앞에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마을 구석구석을 엄마와 같이 걸었다. 걷다보니 날이 추워서일까,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의 집들이 많이 보였다. 마을이 작아서 위험하지도 않았고 한국인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언어도 외모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엄마와 내가 같이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뭔가 신비롭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11일차 아침이 밝았으나, 어제에 이어 여전히 오늘도 아침부터 안개가 가득하다. 엄마는 안개가 아침에 끼면 그 날은 날씨가 좋다며 오늘은 기대를 해보자고 한다. 어제와 같이 주인 할아버지가 주시는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한 뒤 기분 좋게 출발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엄마가 독박 운전을 맡았다. 사실 운전한 지 2년도 안 된 내가 다니기에 길이 너무 좁고 낭떠러지가 있어 두렵기도 했고, 엄마는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며, 더군다나 네비게이션이 영어로 나오기 때문에 서로 위치가 바뀌면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자의 까닭이 더 크긴 하지만.


주유도 해야 했는데, 집에서 인터넷으로 꽤 많이 찾아봤음에도 약간 긴장은 되었다. 가끔 휘발유와 경유가 안 적혀있는 곳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이 많았다. 휘발유는 보통 초록색으로 된 모양이었고, E5로 적혀 있는 것을 넣으면 되었다. 우리가 간 곳은 디젤은 디젤이라 적혀 있었고, 휘발유에는 Super 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쨌든 초록색이겠거니 싶어서 셀프 주유소에서 드디어 주유를 해 보려는데 직원이 나와서 우리 차에 기름을 직접 넣어 준다. 셀프 주유소에서 마저 친절함을 느끼다니, 이탈리아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여긴 주유비가 1L당 2유로(약 3천 원) 정도여서 너무 비싼 편이었다. 추후 차를 돌려줄 때 기름을 가득 채워넣고 줘야 하는데, 셀프 주유소에서 가득 넣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계산으로 얼추 맞춰서 넣기 위해 한 칸에 얼마 정도 들어가나 확인해 봤더니 3만원 정도가 들어가면 적당했다.

 

그렇게 기름처럼 가득찬 마음으로 Lago di Misurina(미수리나 호수)로 갔다. 엄마의 말대로 날씨도 화창했고 미수리나 호수는 산책로도 잘 되어 있어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 전에 먼저 점심시간이라 밥 부터 먹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Malga Misurina(말가 미수리나)'라는 음식점에 갔다. 풍경이 아름답고, 이탈리아 가정식 느낌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아직 문은 안 열었지만 들어와서 있으라는 친절한 말에 화장실도 사용할 겸 들어가 있었다.


앉아서 이곳 저곳 구경하다보니 얼마 후 손님들이 물 밀듯이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이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음식들을 주문했는데, 우리의 입맛에 너무 짠 음식들이었다. 그래도 작고 아늑한 공간인 데다가 직접 그 곳에서 같이 대가족이 살고있어서 말 그대로 이탈리아 가정집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디저트를 시키는 것이 예의라고 하기에 시키려고 햇는데 아주머니가 주문을 정말 안받는다. 결국 성격이 급한 나의 어머님께서 기다리질 못하시고 그냥 디저트를 먹지 않고 나왔다.



다시 미수리나 호수로 내려가 호수 근처에 주차를 했다. 미리 주차 기계에서 우리가 있을 시간 동안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영수증을 차 앞쪽에 올려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벌금처럼 더 큰 금액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동전을 탈탈 털어 써야 했기에, 시간 당 2유로로 비쌌던 그 곳을, 혹시 몰라 2시간으로 등록했다. 덕분에 내 주머니를 차지하고 있던 동전이 거의 사라졌다.


미주리나 호수의 아름다움

엄마랑 한 바퀴를 천천히 사진 찍으면서 걸었는데도 50분 안쪽으로 도착했다. 시간이 남았다는 것에 약간 돈이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한바퀴를 더 걷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차를 타고 Belluno(벨루노)에 있는 숙소로 1시간 반을 더 운전해서 갔다. 물론 엄마가. 가는 내내 길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웠다. 어제는 그렇게도 날씨가 안좋앗는데 오늘은 정말 맑다. 그렇게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가는데, 상상 이상의 꼬불꼬불함이다. 거의 유턴 급의 길이었는데, 정말 내가 운전했으면 아마 집에 살아 돌아가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길을 계속 돌다 보니 오랜만에 멀미가 생겼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 보니 신기한 장면들이 많다. 이탈리아는 여성 버스 기사나 여성 택시 기사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운전을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과격하게 하기도 했다. 지나가다가 70은 넘으셨을 법한 할머니가 포르쉐를 타고 달리는 모습도 보았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잘 보지 못한 신기한 광경이었다.

꼬부랑 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을 헤쳐나가며..


숙소는 Cortina d'Ampezzo(코르티나 담페초)가유명하다고 해서 그 곳으로 잡고 싶었으나, 1박만 묵을 것인데 다음 날 렌터카 반납 시간이 촉박해서 엄마와 상의 끝에 결국 가까이 있는 벨루노에 위치한 숙소로 택하였다. 코르티나 담페초로 예약한다면 아침부터 2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데, 도로 사정도 잘 모르는 데다가 반납시간이 11시까지 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만 엄마와 나의 J적 면모가 나온다.


아무튼 그래서 베니스에서 가까운 벨루노의 숙소인 'Albergo delle alpi'라는 곳으로 예약했다. 숙소는 여러모로 무난한 편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내리고 근처에 있는 큰 마트로 차를 타고 가서 저녁에 먹을 것을 샀다. 다 좋은데 큰 마트는 물을 대용량으로만 팔기에 결국 다시금 숙소에서 가까운 작은 마트로 옮겨서 물과 과자 등 먹을 것을 샀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카드로 계산을 하려고 단말기에 넣었는데, 카드가 말을 안 듣는다. 심지어 갑자기 마트의 기계가 전부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마터면 마트의 기계들을 다 고장낼 뻔 하였다. 서로 의사소통을 좀 하고 싶어도 소도시로 오니 아무도 영어를 못한다. 스페인어라면 어떻게든 좀 했을텐데, 이탈리아어는 전혀 못알아 듣겠다. 당시엔 당황해서 파파고와 같은 어플을 사용할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어찌저찌 '무슨 카드냐'는 점원의 질문이 느낌으로 와 닿았고, 그에 '꼬레아 카드'라고 답하는 순간 다행히 기계들이 다시 작동을 했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카드를 쓰지 않고 현금으로 냈다. 하마터면 다 물어줄 뻔 했지 뭔가.


그렇게 엄마와 같이 리의 일과답게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일찍 잠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엄마와 딸의 베네치아 탐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