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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Jul 07. 2024

#8. 엄마와 딸의 로마 탐방기

언제 또 엄마랑 단 둘이 여행을 올 수 있겠어

1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벨루노 베네치아 가서 렌터카 반납 후 네치아 로마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샀던 시리얼과 우유를 마시는데, 뭔가 우유가 비릿한 게 좀 이상하다. 우유 맛이 왜 이러지, 하고 엄마가 우유를 봤는데 우유 곽에서 염소 캐릭터가 우리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그렇다. 염소젖으로 만든 우유였던 것이다. 나도 웬만한 건 다 먹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염소우유는 정말 아니었다. 결국 남은 우유를 버리고야 말았다. 엄마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 7시에 우리는 베네치아를 향해 출발했다. 늦게 반납하면 렌터카 추가 비용이 어마무시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찍 출발했고 그만큼 일찍 도착했다. 3일 내내 엄마만 운전을 하게 만들어서 사실 너무 죄송했다. 그런데 아마 꼬부랑길에서 내가 운전했다면 둘 다 마음이 불편해서 녹초가 되었을지도. 밌었던 것은 그동안 과속이 몇 km 기준인지 나와있지 않아 내가 옆에서 어플을 보며 계속 입으로 알려줬는데, 도착하기 30분 전 즈음에야 엄마가 갑자기 HUD가 있었는데 전혀 몰랐다며 거기에 몇 km 과속 단속 구간인지 뜨고 있었는데 몰랐다고 했다. 다 도착해서야 알게  사실이다.


렌터카 반납하기 전, 기름을 마지막에 가득 채워 넣기 위해 공항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 들렀는데, 이번엔 진정한 셀프 주유소였고 우연찮게도 딱 두 칸이 줄어 있어서 6만 원어치 충전하니 정말 기름이 딱 맞게 가득 찼다. 풀 보험이 다 들어 있어서 그런가 차를 한번 스윽 대충 보고 기름 여부만 확인하더니 사인을 받고 만간 메일이 날아갈 거라는 말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생각보다 별거 없던 렌터카 반납 과정이었다.


네치아 공항에서 다시 ATVO를 타고 베네치아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Italo를 타고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적지인 로마로 향했다.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지웠다. 1등석이 짐을 머 바로 위에 둘  있고 금액 차이도 크지 않아서 선택했는데 랜덤 자리로 정했다가 화장실 앞이 되어 버려서 간 냄새까지 났다. 그렇게 4시간을 버텨 다시 로마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호텔 디오클라치노라는 곳으로 예약했는데, 원래 묵었던 숙소 바로 옆이었다. 근데 여기 직원은 정말 너무 친근하고 친절하다. 특히 자신을 '제시카'라고 소개한 여직원이 있었는데, 어려 보였는데 활기차고 귀여웠다. 권을 복사한다고 가져갔는데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우리도 그 사실을 잊어버린 채 호텔 키만 받아서 올라갔더니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잊어버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하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하마터면 집에 못 갈 뻔했는데,  진심으로 손님들을 대하는 그 직원을 보며 저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체로 감동받기도 했다.

안녕, 나의 첫 로드카(사실 엄마의)

로마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오후 5시가 넘어버렸기에 짐만 내리고 바로 근처 중국집으로 갔다. 가성비 맛집이라던데 실제로 중국 분이 운영하는 곳이면서, 정말 저렴하고 맛있어 보였다. 우연히 우리 옆에 한국인 가이드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분과 친해져서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다가 맛있는 걸 추천해 주셔서 먹어봤더니 정말 맛있었다. 메뉴 이름은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파는 웬만한 음식들은 다 맛있는 듯했다.


아무튼 그분은 성악을 공부하러 이탈리아에 왔다가 돈벌려고 가이드 일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이드로 눌러앉았단다. 로나 때 힘들었다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다 보니 타지에서 일하는 것이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과는 인사를 나눈 뒤, 간단하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돌로미티에서의 멀미가 남아 있던 탓인지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잠에 들었고, 엄마는 아쉽다며 좀 전에 사 온 맥주 한 캔을 마지막 밤 기념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대망의 마지막 날이다. 조금 길다면 길었을 법한 일정이었으나, 그래도 막상 집에 돌아가려니 아쉽다.


아침에 마트에서 사놓은 알  이탈리아식 컵라면을 먹었으나 맛이 없었다. 결국 근처에 7시부터 오픈하빵집에 갔다. 크루아상과 함께 나는 카페 마키야또, 엄마는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마지막이니 아메리카노보다 현지인들이 마시는 방식으로 비슷하게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아침부터 우유가 들어있는 커피를 마시니 배도 든든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침마다 그렇게 한 번 먹어볼까 싶기도 하다.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오후 9시 25분 비행기라서 굉장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거의 오늘 하루까지 풀타임으로 여행한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너무 무리하지 않기 위해 일단 엄마랑 같이 방에서 좀 쉬다가 체크아웃 후 돌아다니기로 했다.


여유롭게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줄 기념품을 찾아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트에 가니 작은 사이즈의 올리브 오일 세트가 있데 그걸로 사기로 했다. 다만 무거울 테니 마음에 담아만 두저녁에 다시 돌아와 기차역으로 가기 전에 사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아침 시장이었다. 과일과 기념품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데 너무 재밌다. 엄마도 이런 맛에 시장 가지, 라면서 재밌어했다. 거기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줄 몬첼로(이탈리아 디저트 술의 일종) 작은 사이즈를 샀다. 한국인들은 특별히 더 싸게 해 준다며 귓속말로 막 말한다. 25유로에서 15 유로까지 깎아준다고 말하는데, 엄마가 거기서 더 깎아서 12유로에 2개 샀다. 여전히 나는 그 걸 못하겠는데, 나이가 더 들면 할 수 있을까.


로마의 아침 시장 산책길

아무튼 그렇게 구경을 한 뒤 이번 여행 초반에 로마에서 바티칸 성당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다시 들어가 보자고 했다. 어차피 무료이고 시간이 많았기에 줄을 기다려서 들어갔고 지하에도 내려가 볼 수 있었다. 지하는 교황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일부는 그곳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내가 천주교가 아니라 그런지 그런 모습들이 뭔가 신기했다. 그렇게 구경 후 밖으로 나오는데, 출구 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성직자인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보니 괜스레 더 반갑고 기뻤다.

바티칸 성당과 김대건 신부님 동상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 점심을 그냥 넘기기엔 아쉬웠기 때문에 점심으로 이탈리아 전문인 피자와 파스타를 먹자 싶어서 유명하다는 맛집으로 구글 검색을 통해 찾아갔다. 그런데 재밌던 것은 엄마 둘 다 기억 못 했는데, 알고 봤더니 첫날에 갔었던 그곳이었다. 엄마가 그날 맥주는 맛있으나 파스타가 맛이 별로였다고 했었던 곳에 우연히 또 온 것이다. 나름 2주간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엄마의 입맛에 맞을 법한,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많이 추천하는 음식들로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오래 앉아있자 싶어서 앉아있는데 그러다 보니 서비스로 이탈리아의 디저트 술을 주는 것이었다. 빨리 일어나서 가는 사람들은 주지 않았고 다 먹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주는 듯했다. 여유를 가지고 앉아있다 보니 그런 것도 받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다가, 우리가 처음에 로마에서 너무 예쁘다고 하면서 봤던 피노키오 매장이 생각 나 그곳을 다시 찾아 떠났다. 상점 이름도 모르고 지나가다 본 곳이었던지라, 엄마의 기억에 의존해서 가는데 길눈이 밝은 엄마 덕분에 진짜 한 번 본 길인데도 한 번에 찾아왔다. 나는 길치인데 그건 정말 전혀 닮지 않았다. 그곳에서 구경하는데 여전히 너무 예쁜 게 많아서 고민하다가 아빠가 좋아할 것 같은 피노키오로 하나 구매하였다. 원래 동화 속에서 피노키오가 바다에 빠진 곳이 피사 근처에 있는 바다라고 들었는데 예쁜 건 로마에 있다는 게 재밌었다. 50유로 여서 너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사고 나서도 사실 크게 후회되는 퀄리티가 아니었다.


집에 데려온 후 찍은 피노키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원하는 피노키오를 잘 포장해서 온 뒤에 오전에 주변인들 선물용으로 사려고 마음먹은 올리브유 세트를 마트로 가서 구매하였다. 꽤나 무거워진 짐들을 들고 호텔에서 짐을 돌려받은 후, 공항까지 가는 기차를 탑승하기 위해 역으로 갔다. 처음에 로마에서 꽤 긴 여정을 보냈더니, 이제 로마의 떼르미니역은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지경이다.


저녁 비행기지만 돌아가는 비행기는 아빠의 가족마일리지 찬스를 써서 비지니스를 예매해 둔 상태였다. 엄마와 나 모두 태어나서 첫 비지니스 탑승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가서 라운지에 앉아있기로 했다. 하루종일 그렇게 돌아다니고도 역에서 공항까지 가는 기차 시간이 1시간 즈음 남아있었다. 기차역 내부에 있는 카페에 갔는데, 그동안 이탈리아 어디를 다녀도 정말 보이지 않던 ICED AMERICANO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길 무릎을 치며 유레카를 외쳤다.


영어를 쓸 기회를 드리기 위해(?) 엄마에게 주문을 해달라고 한 뒤에 커피를 받아오는데, 뜨악했다. 무슨 이상한 작은 얼음 두 덩이 들어있는 오묘한 색상의 커피였다. 과연 커피가 맞을지 의심되는 음료이기도 했다. 한 입 먹는 순간 더 뜨악-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앞으로도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알 수 없는 맛의 아이스도 아닌 뜨거운 것도 아닌 커피를 닮은 음료. 그렇게 그냥 시켜만 놓고 시간을 때우다가 기차를 탑승해서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주문 영어는 기본이지(엄마)


저녁 비행기라 탑승하자마자 밥을 줄 것이기에 라운지에 가서는 마지막 어패럴 스프릿츠만 마시고 먹을 것은 많이 먹지 않았다. 첫 비지니스라 매우 설렜는데, 의자를 180도로 눕힐 수 있는 것이었다. 우와. 이래서 다들 돈을 열심히 버나 보다 싶었다. 설국열차가 인도에서만 보던 게 아니라, 우리 근처에도 항상 있었는데 당연하게 생각해서 비행기 좌석도 설국열차 같은 것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못 해본 것 같았다. 거의 바로 저녁이 나왔는데, 테이블에 천도 깔아주고 갑자기 코스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배가 너무 불러서 마지막에 나오던 후식인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먹지도 못했다.


비지니스는 처음이라, 너무 황송해서 이걸 대접을 받으며 먹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일반석으로 가서 도시락 같은 걸 하나 먹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 고귀한 대접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인가 보다. 그래도 180도로 누워서 갈 수 있다는 것의 메리트가 정말 엄청났다. 그러면서 일반석에서도 단차를 두고 3층 침대처럼 눕힐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한 번 해 보았다.


비지니스님, 이러시면 저 배 터져유-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1주일 만에 모든 것을 계획했던 여행이 끝이 났다. 겨우 2주 만에 밟는 한국 땅이지만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에서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나야 아직 젊고 여기저기 밑바닥 여행을 종종 했던 사람이지만, 엄마는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60대였다. 주위의 60대 어머님들을 보면 우리 엄마만큼 건강하고 잘 돌아다니는 분이 없다. 감사히 생각하고 멋지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독박 운전을 시키고, 그렇게 싫어하던 식당에서의 기다림도 갖게 만든 것이 조금 죄송스럽기도 했다. 앞으로 엄마와 언제 이렇게 또 둘이 자유여행을 갈 수 있겠나 싶다. 나도 곧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들이 생기면 이렇게 우리 부모님과의 단란한 여행 기회는 앞으로 갖기 힘들 테니까.


지난 2주 동안 갑작스럽게 내 삶에 다가온 여행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로 평생 자리 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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