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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나라, 대한민국

식(食)이 주는 즐거움을 처음 느껴보다

by 신잔잔

나는 자타공인 '맛없는 식당 감별사'다. 알레르기 검사지의 수백 개 항목이 모두 'X'라고 나올 만큼 못 먹는 음식이 없는 나는, 맛없는 음식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런 나에게 아무도 맛집을 물어보지 않는다. 내 입에는 어지간하면 다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맛없다고 하면 그 집은 반드시 몇 달 안에 문을 닫았다. 맛집은 몰라도 '망집'은 기가 막히게 아는 셈이다.


그랬기에 내게 '미식'이란 그저 허울 좋은 단어일 뿐이었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프랑스에서 갔던 미슐랭 레스토랑의 기억은 ‘음식’이 아닌 ‘소음’으로 남아있다. 음식은 분명 혀를 즐겁게 했었던 것 같지만, 옆자리 외국인 아저씨와 겸상을 하는 듯한 비좁은 공간에서는 그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맛은 분위기에 잡아먹혔고, 기억은 흩어졌다.


그런 내가 난생 처음으로 '내 돈 주고' 미식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순전히 방치된 곗돈 때문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곗돈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사먹거나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30대가 되고 각자 바빠진 삶에 돈이 쌓여가기만 할 뿐 나가는 곳이 없었다. 지나치게 쌓여만 가는 곗돈이 아까워, 겨우겨우 시간을 맞춰 한번 거하게 좋은 음식을 먹어보자며 우리나라에 있는 미슐랭 1스타 디너코스에 예약을 했다. 프랑스 요리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극진한 환대가 우리를 맞았다. 그럼에도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친절함이 별점의 일부라지만, 결국 음식 맛이 전부 아닌가. 그래도 옆자리와 부대끼는 것이 없고 꽤나 고요한 레스토랑 분위기가 내 마음을 조금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첫 코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첫 웰컴 디쉬가 나왔다. 그리고 나의 세상은 뒤집혔다. 태어나 처음으로 '음식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는 진부한 표현을 온몸으로 이해했다. 이건 미각이 아니었다. 혀끝에서 터지는 예상 밖의 조합, 코를 감싸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향기, 머리를 때리는 새로운 식감. 음식은 위장이 아니라 뇌로 떠나는 여행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후의 요리들도 감동의 연속이었다. 눈으로 먼저 보고, 그걸 깨부수고, 그렇게 부순 재료들을 다시 조합해서 내 입에 넣는 것은 정말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조금씩 나오는 코스가 뭐가 배부르겠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었다. 마지막 디저트를 먹을 때는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식(食)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식사는 정말 프랑스인들처럼 3시간이 넘어갔지만, 단 한 순간도 지겹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대화를 나누며 다음 음식에 대한 기대를 할 뿐이었다. 이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한 끼에 3시간씩 먹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미식의 '미(美)'자도 모르는 '맛없는 식당 감별사'일 뿐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잘 차려진 음식 한 끼가 지친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지, '힐링'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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