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이매거진 103호 <Girls & Cats>
사람들은 나를 사랑스럽게 양이야~ 하며 칭하기도 했고, 야, 고양! 하고 마지막 ‘이’를 빼고 앞에 ‘야!’를 붙이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어우 저 고양이 새끼 때문에 내가 진짜.라고 마치 한 문장을 짧은 단어처럼 내뱉기도 했다. 확실한 건 나는 캔 하나 따먹고 털 뿜어내기를 선보이다가 배를 내놓고 한숨 푹 자는 그런 고양이는 아니었다. 내가 고양이였을 때 영희라는 이름은 흔했다. 다른 반 영희처럼 ‘철수네 부인’이라는 별명 말고 내가 고양이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고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문만 열리면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운 후 열 발가락에만 힘을 줘 밖으로 미끄러졌다. 나는 자발적으로 낭만 고양이가 되고 싶었다. 한 친구는 이름이 영희도 아니면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고양이가 되고 싶어 했다.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게 이유였다. 이렇게 살 바에야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다른 애는 노란 박스만 있으면 스무 시간을 자고 깬다는 고양이를 부러워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고양이를 선망했다. 길 고양이라는 말은 나중에 나왔지, 그때는 쓰레기봉투나 파먹는 도둑고양이였다. 내가 한숨을 한줌 남기고 나간 며칠 후에 꼭 걔네처럼 노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회색 얼굴을 하고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양이야~ 하고 부르지 않고 ‘고영희너어쩌려고그래’라고 불렀다. 엄마 나는 있잖아. 라고 입술을 떼면 항상 눈물이 고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도둑들은 다이아몬드를 훔치고도 잘도 숨던데 나는 매번 눈물 한 방울을 못 훔치고 주르륵 쏟아내었다. 나는 대담한 도둑고양이도,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를 잡는 낭만 고양이도 못 되는 고영희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바닥의 온기는 갈구하면서, 다가오는 손에 얼굴을 비벼 기꺼이 츄르로 목을 축이는 길 고양이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 사람들은 나를 영희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영희 씨로 살게 된 그 해, 하얀 배에 노란 등을 가진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불러줬을 때처럼 나는 얘를 ‘양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큰 기대감을 갖고 바닥을 콩콩 치고 두 손바닥을 내밀며 처음으로 양이야~라고 해보았다. 몇 달 동안 내가 엄마의 예쁜 목소리를 흉내 내도 양이는 곁눈질할 뿐 나에게 다가와 털 오라기 하나 묻히지 않았다. 아무리 캣닢을 사주고, 츄르를 짜줘도 곁을 주지 않아 나는 양이가 창문 앞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양이의 바짝 선 하얀 두 귀가 꼭 귀를 쫑긋하며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열네 살 고양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