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 9월 4일에 쓴 글

by 신지희

아침에 본 영화 되게 재미없었어. 서사에 중요한 인물들이 무슨 길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더라고. 플롯이 좀 허술하다 해야 되나 여하튼 좀 이상했어. 딸, 인생 살다 보면 진짜 그런 날도 있어. 코로나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내가 매일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일하던 이태원의 카페도 매장을 닫게 되었고, 나도 강제로 쉬게 되었다. 2월부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나가고 있다는 말을 하면 미쳤다 또는 대단하다 소리를 듣는다. 차마 그만둘 수는 없으면서도 요 근래 정말 미치거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포장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마주하기 싫어 좀 쉬어야겠다고 하던 참이었다. 눈동자에 이미 빛을 잃은 사람들이 농담이라고 시작하며 끝매듭도 못 맺는 문장에 기분이 나쁘기를 수십 번. 지각이나 결근을 안 해 단 하루도 아침이 없었는데 8월 30일 드디어 아침이 생겼다. 나는 완전한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에 별 다른 일이 없어도 6시쯤이면 이미 하루의 첫 번째 커피를 마신다. 커피 잔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릴 때마다 25년 동안 매해 소망이었던 손톱 그만 물어뜯기 성공에 혼자 뿌듯하다. 나에게 2020년은 그런 해다. 대외적으로 자랑할 것은 없으나 속으로는 기뻐서 날뛰는 것들이 몇 개 있는 해. 치료할 수 있는 특별한 원인이 없고 그저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하는 것들. 내가 보기에도 더럽지만 남이 보면 차마 말해줄 수도 없는 그런 것들. 예를 들면 벌건 두피에서 나오는 각질들. 손톱과 두피에 비해 불면증을 ‘치료’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올 초 요가를 시작했고,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꾸준히 하고 있다. 활력이 유튜브 화면 밖으로도 넘쳐 보기만 해도 숨 차는 선생님들 말고 나의 조용하고 느린 템포에 맞는 선생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늘였다 굽혔다 하는 내 몸 위로 뭉근한 땀들이 진득하게 굴러간다. 계속 아프던 오른쪽 앞 허벅지가 이완된 만큼 정신도 작년보다 부드러워졌다. 환승이 무서워요. 공중에 붕 떠있는 게 무서워요. 두려워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백수 이틀 자 아침에 본 영화 속 미셸 윌리엄스의 대사이다. 1월 1일에 내가 2019년은 내게 어지러운 환승(dizzy transit)이었으니 2020년은 더 재미있길 바란다고 인스타그램에 썼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세상이 작년보다 훨씬 어지럽다. 내가 아끼는 일들도, 행사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다 취소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덜 어지럽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한국에서 묵묵히 견딘다. 번역을 하며 듣는 오랜만의 퓨탕(putain, 프랑스어 욕)을 들어도 비행기를 못 타니 더 이상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월 오보이매거진에 실린 고영희 글이 마지막이었으므로 그 후에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왜 글을 안 썼냐고 묻는다면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카페에서 만나는 대단한 손님들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도 결국 다들 사정이 있겠지 하면 그만이다. 마스크 하나 안 끼고 해변에서 태닝하고 있는 프랑스 친구들이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와도 져스트 후틴, 뚜레쥬르(juste routine, tous les jours, 맨날 똑같아)라고 할 것이다. 감사하게도 매일이 별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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