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2020년 12월 2일에 쓴 글 / 프로젝트 '코로나 블루'에 참여

by 신지희

2020년의 파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빠르게 돌아가는 뾰족한 시침에 베이지 않은 나에게 칭찬부터 하겠다! 나야 잘살았다! 너무 고요해서 무서웠던 시간에 스크래치가 난 곳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긴 기다림이 느껴질 정도로 불면이 심한 한 해다. 평소에 두세 시간 정도 자다가 하루에 갑자기 열 네시간을 잔다. 왜, 왜 잠을 못 자? 라는 엄마의 물음엔 그냥 뭐... 못 잘 수도 있지.라고 한다. 그러다가 고꾸라지고 내일 일어난다. 뉴스를 보면 그렇게 날들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정상인 것 같다. 진짜 미친놈들 아니야? 하고 욕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스물아홉. 올해 처음으로 적금을 들었다. 한국에 오니 친구들은 이미 몇천만 원을 모았고 주식을 했다. 실은 나는 돈을 모아본 적이 없어서 그 정도의 돈과 주식이 가늠도 가지 않는다. 작년은 한국 적응기간이라고 치자고 했다. 올초부터 아빠는 아는 사람의 회사라며 취업 얘기를 꺼냈고, 엄마는 자식 셋이 모두 공무원이 되어 행복하게 여행을 같이 다닌다고 아는 언니 얘기를 했다. 남인데 마치 아는 사람들인 듯 그 집안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1월에 구한 카페 아르바이트는 뭐라도 하는 그날 전까지만 하려고 했다. 근데 떳떳한 그 날이 참 오지 않았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아침 나가서 내가 마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들고 청소를 한다. 어디서 사는지, 아버지는 뭐하신지부터 시작한 오전 알바생의 신원정보 털기를 끝낸 손님들이 오후엔 뭘 하냐고 물어본다. 번역할 영상도 없고, 정말 아무런 약속도 없는 날이면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5월이면 코로나가 끝나겠지 했더니 그쯤부터 이 알바 자리도 부럽다고 하는 일자리를 잃은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너는 유학까지 갔다 왔는데 우리 딸은, 아들은’으로 내가 부러워하기를 대놓고 바라던 사람들의 자식들도 집에 있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폐업을 못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급감한 매출이 오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사장님은 화가 더 늘었다. 그 불씨는 월급쟁이들의 등에 붙어 우리는 바싹 타올랐다가 파삭한 재가 되었다.


되지 않은 일에 미련이 없는 편인데 시작도 못 해본 건 아쉽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12월이 되어버려 올해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었으니 일단 없던 척 숨긴다. 나는 비틀거리고 작년에 같이 일했던 회사들은 휘청거린다. 코로나는 고마운 핑계지, 코로나가 없었다면 본인이 달랐을까? 갑작스레 생긴 틈에 맴돌던 화살을 본인에게 꽂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한 목표를 위해 달리지 않고 하루하루 할 일 하면서 지내요.라는 말을 하려면 꾸준한 할 일부터 있어야 한다. 꿈꾸던 어른과는 다른 모습으로 맞는 서른. 2020년 12월 마지막 날의 다음 날일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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