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10월

2020년 10월 11일에 쓴 글 / 릿터 독자 수기 공모

by 신지희
img090-4.jpg @shinjiheestudio

마스크를 쓴 채 발 달린 이어폰을 잘 잡은 아침엔 6시 5분에 지하철을 타고, 마스크! 하며 비밀번호를 다시 누르는 날엔 13분에 탄다. 삼각지 역의 배차간격은 길어서 같은 사람들과 환승한 지 벌써 열 달째다. 뿌리 염색 시기가 한참 지난 줄 알았는데 아예 길러서 금색 머리를 잘라내려는 것 같은 여자, 허겁지겁 젖은 머리로 뛰어와 구르프를 마는 여자,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 위에 파란 바람막이를 입는 덩치가 큰 남자와 한 칸에 탄다. 56분, 역을 빠져나온다. 4번 출구 왼쪽에 회색 티를 입은 여자가 남산만 한 배 위의 작은 참외 배꼽을 내놓고 자고 있다. 박명의 든부자처럼 곰탕라면에 김치를 먹는 아침도 있고 혼자만의 실없는 백야에 큰 물통만 들이켜는 뿌연 날도 있다. 그래도 저 여자는 매장에는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오픈한 지 2분, 출근 전 영어 공부를 하는 단발머리의 손님이 들어와 카페라테를 시킨다. 3층 청소를 끝내는 8시,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유튜브는 조금만 보라는 말을 하는 손님이 피피티 자료를 넘기며 고구마 라테를 주문한다. 아, 누군가 흩뿌린 소금을 맞은 것 같은 머리카락이 진득이 절여진 손님이 또 온다. 스마일 무늬가 비웃는 듯 바퀴가 하나 나간 네모난 삶을 질질 끌고 온다. 저번의 검정 캐리어에 담긴 삶과는 다른 것일까. 그린 티 라테를 시키는 이 손님은 빈 벽에 대고 토마스 씨! 내 프로퍼티에 들어오면 어떡해요! 하며 소리 지른다. 도와줘야 하나? 눈동자라도 똑바로 마주할까 무섭다. 고무줄에 쓸려 귀 뒤에 굳은살이 배긴 내게 생강을 넣은 레몬티 한 잔이면 코로나고 뭐고 다 이겨버린다며 외국인 손님이 레몬티를 시킨다. 매장 내 마스크 착용을 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애초에 한 번도 마스크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피골이 상접한 긴 얼굴 위에 만개한 파리지옥을 닮은 검정꽃을 얹은 손님이 오늘은 웬일인지 생딸기 위에 아이스크림까지 올라가는 음료를 시킨다. 하루 일당이라던 5만 원을 줄 사람이 생긴 건가? 하하하 크게 하하하 웃어도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또 손님이 온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아아 단 두 글자를 뱉으며 마스크를 벗는다. 코로나 시대가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당장의 내 눈앞 사람들은 이렇게 회전한다. 12시 11분, 삼각지 역에서 카키색 낚시 조끼를 입고 발밤발밤 퇴근길을 같이 하던 할아버지가 안 보인다. 혹시? 입술 앞의 흰 벽에 다시 숨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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