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 '캠핑카' + '여행' = ???!!!
'유럽여행'하면 뭐니 뭐니 해도 배낭여행이다. '꽃보다 XX' 시리즈의 대박 이후 중장년 층 여행객이 엄청 늘었다지만, 그래도 유럽은 여전히 젊은 배낭과 잘 어울린다. 가벼운 배낭 하나 둘러 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하지만 모두가 배낭여행의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집에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배낭여행은 그냥 그림의 떡이다. 지긋이 나이 든 노 부부에게도 배낭여행은 딴 나라 얘기다. 긴 일정에 맞춰 루트를 짜고,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고, 먹거리와 잠자리의 불편함을 견디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려움은 그 자체를 즐기는 청춘에겐 큰 즐거움일 수 있지만, 모두가 이걸 즐거움이라고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이 꼭 이십대의 생물학적 젊음에게만 허용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게 뭐 수학 문제도 아니고, 여행씩이나 되는 낭만적인 사안에 정답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배낭여행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패키지 여행도 나름 괜찮은 선택이다. 길지 않은 휴가를 압축적으로 즐겨야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겐 짧은 기간 내에 가능한 많은 '명소'를 찍고 올 수 있는 패키지 여행이야 말로 찰떡궁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병대 캠프에 버금가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패키지 여행도 만만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또 남이 짜준 일정에 따라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는' 패키지 여행은 유럽의 상징과도 같은 '낭만'이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도 저도 다 아니면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쯤에서 난 '캠핑카 여행'을 열렬히 추천하고 싶다. 배낭여행보다 자유롭고, 패키지 여행보다 우아하게 유럽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 바로 캠핑카 여행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유는 차차 풀어가겠지만 간단히 생각해보자. 유럽은 각 나라마다 아름다운 도시와 문화 유적이 넘쳐난다. 어딜 가도 탄성을 내뱉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오히려 중요해지는 부분은 이 사이를 오가는 과정을 어떻게 메울까 하는 점이다. 원하는 곳에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가고 싶을 때 이동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캠핑카 여행은 그 자유로움과 편안함에서 다른 어떤 종류의 여행과도 그 격을 달리한다. 캠핑카 자체가 주는 새로움과 즐거움도 짭짤하다.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한다고 해서 무너진 콜로세움이 벌떡 일어서거나 비뚤어진 피사의 탑이 바로 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위스 체르마트나 독일 슈방가우 캠핑장의 그림 같은 풍경과 어우러져 캠핑을 하고, 크로아티아의 신비한 돌산 사이에 자리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세찬 바람 사이로 흔들거리는 캠핑카의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노숙을 하고, 헝가리 발라톤 호수 옆 공짜 주차장에 급히 차를 세우고 라면을 끓여 허기를 달래며 나라와 도시를 누비는 재미는 진짜 끝내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캠핑카는 낯설다. 아마 크고, 비싸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이 캠핑카를 타고 유럽을 여행했다고 말하면 다양한 질문이 돌아온다. 비싸지 않나? 안전한가? 캠핑카로 여행할 수 있는 마땅한 시설이 있나? 큰 차를 운전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 걱정스러운 질문들이 끝도 없다. 다 맞는 말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하는 여행에 무엇 하나 쉬운 게 있을까? 우리나라라면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라도 보겠지만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 어디쯤에서, 생전 처음 겪어보는 황당한 상황들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팍 죽는다.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만 한 캠핑카는 도움은커녕 짐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들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진작부터 캠핑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는 어딜 가도 꽤 괜찮은 캠핑 시설이 있다. 우리가 여행 중에 들렀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캠핑장은 캠핑카 3,00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커다란 파도풀이 있는 자체 워터 파크가 있고, 5개의 식당과 각종 편의 시설이 아름다운 베네치아 바닷가와 어우러져 있다. 모든 캠핑장이 다 이렇게 호화판은 아니지만 여행하고자 하는 도시 주변의 캠핑장을 찾고, 숙박을 하는 과정이 여행의 즐거움을 해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충분히 훌륭하다. 차가 커서 어려운 점이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하기엔 캠핑카 여행이 주는 매력이 참 반짝거린다.
우리 가족의 55일 간 캠핑카 유럽 여행은 허술한 구석 투성이다. 미리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고, 당연히 방문할 장소들에 대한 사전 지식도 부족했다.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이유로 들르지 못한 곳도 참 많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생각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이 있다니...
뭐든지 초안이 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쉽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는 완전 천지 차이다. 우리도 막상 떠나려니 처음엔 막막했다.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다 올라와 있지만 단편적인 정보들을 짜 맞춰 긴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정리해두면 누군가 첫걸음을 떼는데 초안 정도 역할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미 캠핑카 여행을 마음에 품은 누군가에겐 자기만의 여행을 준비하는 작은 시작이 되기를, 아직 캠핑카 여행에 대해 별달리 생각해본 적 없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작은 설렘의 바람이 불길 바라며... 이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