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 와서 내가 많이 변한 걸 느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바로 핸드폰을 취급하는 나의 부주의함..ㅋㅋㅋ
한국에서도 중학생때부터 핸드폰을 부숴먹어서 새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파손보험을 필수로 들어야 했다.
새 핸드폰을 갖고싶은 욕심때문에 핸드폰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핸드폰에 금이 가고 너덜너덜해져서 버티고 버티다가 바꾸는 게 나에겐 더 익숙했다.
그리고 몬트리올, 추운 겨울의 목요일 밤. 밤 늦게 퇴근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에 핸드폰을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B와 함께 눈보라를 뚫고 다시 되돌아가서 겨우 폰을 되찾았는데 몸통이 휘어지고 액정과 뒷면은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눈에 젖어 축축한 기계를 들고 다시 B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망가진 핸드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첫번째 급여도 받지 못했는데, 지출해야할 것은 점점 늘어나니
이런 생각만으로도 숨통이 조여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들어 여러모로 답답하고 불편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주동안 캐셔 일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는데도 낯선 언어와 환경에 처음하는 일이라 그런지
계속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휴무일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매번 B와 함께 보내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나를 유지하던 루틴이 무너졌다.
말은 또 어떤가. 모든 대화를 계속 영어로 하는데, 심지어 몬트리올은 프랑스어도 쓴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있고,
점점 나를 이루는 내가 줄어드는 기분이라 유쾌하지 않았다. 퇴근 후에라도 틈틈히 이 감정들을 글로 써서 이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는데
집에 오면 기진맥진해서 5분도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치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심지어 챗지피티를 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만큼 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매주 주말마다 B와 보내던 암묵적인 약속을 이번 주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거절했다.
고작 하루로 내가 충분히 회복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하다.
B는 함께 이번 주말을 보내지 못해서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요즘 우리가 같이 보는 TV쇼가 있는데
B의 작은 비밀 계획에는 크리스마스 전에 모든 시즌을 다 끝내고 크리스마스날 새로 나온 시즌을 나랑 같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B와 함께 보는 TV 쇼는 재밌지만 그동안 이미 잔뜩 과부하된 나에게는 시리즈를 보는 것도 힘들고 버겁게 느껴졌다.
뭔, 드라마 하나 보는 일이 이렇게 지치고 힘들 일인가? 뭔가 이상했다. 요즘 들어서 내 주변의 모든 게 버거웠다.
점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늘기 시작해서 더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결국 혼자 보내는 주말을 계획했다.
목요일에 핸드폰이 망가지지만 않았어도 좀 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만 한편으론 강제로 인터넷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났으니 결론적으로는 좋은 시간이 되긴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일상의 사소한 대화를 하는 게 긴장되고 힘들다. 숨 쉬는 것마저 버겁고, 혼자 있고 싶다. 나를 위한 관심마저 나를 할퀴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여유가 없어진 내가 서럽다. 왜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끄러운지 알 수가 없다.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생존만 하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나 그 이상을 원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만큼 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게 내 잘못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계획해온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실망이 크다.
언제나 그렇듯 고질병이 다시 도진 셈이다. 내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해야한다고 쉬지않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이런 사고방식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어왔지만, 또 나를 병들게 했기 때문에 요령껏 잘 조절해야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조급한지 모르겠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보냈는데도,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더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뒷통수 밑바닥에서부터 이렇게 안주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올라온다.
이 모든 게 2주 만에 생긴 변화는 아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사건 사고가 겹치고 루틴도 지속하지 못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하나하나 쌓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무너트리는 건 너무나 쉽다. 그래도 노력해야지. 이게 '나'인 것을.
바람에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다시 토닥여 어떻게든 원하던 형태를 유지하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누구 모래성이 제일 멋있나 겨루기도 하고, 남의 모래성을 훔쳐보고 질투하거나 비웃기도 하고.
나는 어떤 모래성을 만들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