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독서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쭐한 마음을 적당히 감추며 ‘나 요거 읽었어요’ 얘기하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유로든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독서 목록이 있다. ‘요즘 도스프예스키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읽고 있어요.’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아의 품격마저 지적하고 고상하게 포장해주는 듯 하지만 ‘어제 90일 완성 돈 버는 습관 읽었는데 진짜 알차더라고요.’는 어쩐지 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전자는 내가 읽다만 책의 저자들이고, 후자는 단숨에 들이킨 책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책과 가장 친했던 시간을 되짚어보면 유년 시절, 시험 합격 이후, 발목 수술 후 회복 중일 때였다. 세 시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중에 돈은 부족한데 시간은 무한히 놓여있는 듯한 시기라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여행이나 맛집 탐방은 못 가는데 놀고 싶은 마음은 사무치고. 이렇게 지내다간 우울증 걸리기 십상이다 싶을 때 가장 적은 비용으로 머나먼 지평까지 데려다주는 도구가 책이었다. 미리 연락하고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항상 만날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했다. 책을 펼치면 생전 처음 듣는 세상 만물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 속에서 나는 전쟁 한복판에 있기도, 머나먼 미래에 있기도, 동물이 되기도 했다. 혼자서 생각했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새로운 개념과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을 엿보았다. 어떤 한계도 느끼지 않고 훨훨 날며 자유로웠다.
문유석 작가는 <쾌락독서>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그것도 쓴 사람 본인이 열심히 고르고 고른 것으로.’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책은 늘 자신의 빛나는 별을 슬그머니 꺼내어 보여주었고, 가끔은 이런 행동 자체가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이기에 자칫 자신이 경험한 삶이 전부인양 세상을 바라보기 쉬운 나에게, 내 생각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다르게 들어보고 현상에 대한 관점을 입체적으로 재창조해보는 것은 독서가 주는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 네네 독서는 참 좋은 점이 많네요. 근데, 알겠는데,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재밌어서요. 사고력을 키워주고 시야를 넓혀주고 어휘력을 향상해줘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