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여행, 첫 해외 컵라면(上)

by 신이정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상하이였다. 대학교 2학년이던 해에 차곡차곡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수많은 처음을 경험했다. 처음 탄 비행기는 하필이면 난기류를 만났다. 처음 먹는 기내식을 한 술 뜨자마자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몸을 잔뜩 숙인 채 좌석을 붙들고 있어야했다. 기내식이고 뭐고 살려만주세요 기도하다 상하이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한국 밖의 풍경도 신기했다. 한자가 빽빽하게 적힌 간판,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신호등과 교통 표지판, 이국적인 색채를 입은 거리, 하늘을 향해 치솟은 요란한 건물, 처음보는 얼굴을 한 나무와 꽃의 생김새. 한국에서 고작 2시간 떨어져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시선을 두며 걷고 또 걸었다.


친구와 해외로 여행을 왔다는 사실은 내게 무척이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부모님 허락없이도 돈을 벌 수 있고, 혼자 해외여행 갈 수 있고, 뭐든 결정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의 보호자는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사실 자체가 주는 해방감이 있었다. 맥도날드 햄버거나 편의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몇 만보씩 걸어서 이동하는 하루가 즐거웠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길들을 걷게 될까? 무한히 펼쳐진 미래를 향해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외여행을 하면 꼭 해보고 싶은 처음이 있었다. 타국에서 먹는 컵라면이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매번 ‘한국의 맛’이라며 등장하는 라면씬이 그렇게 부러웠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다 먹으니 더 맛있을지, 여행지여서 괜히 다르게 느껴지는 거 아닐지,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먹은 음식이니 당연히 꿀맛일지 궁금했다.


3박 4일용 여행캐리어에 컵라면만 4개를 챙겼다. 내가 뭘 먹고 싶어할 지 모르니까 넉넉히. 전통의 강호 육개장사발면, 간이 세고 짭조름한 진짬뽕, 부드럽고 감칠맛나는 튀김우동, 라면 먹다보면 꼭 한번씩 생각나는 짜파게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엄선한 라인업이었다. “너 이거 진짜 다 먹을거야?” 옷은 돌려입으면서 컵라면 4개에 혹시 몰라 즉석밥과 편의점 김치까지 야무지게 들어가있는 내 캐리어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나중에 나눠달라고나 하지 마라.” 나는 엄중한 얼굴로 경고했다.


새벽에 도착해 첫 날부터 하루종일 걸었더니 발바닥이 말 그대로 깨질 것 같았다. 발바닥이 움푹 들어간 부분에 박힌 유리가 걸을 때마다 찌르는 기분이었다. 우리 마사지를 한 번 받아볼까? 해외여행가면 마사지같은 것도 받고 그러던데. 호텔 직원에게 근처 마사지샵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직접 마사지사를 방으로 불러줄 수 있다고 했다. 마사지를 받아보는 것도 처음인데, 방으로 와서 마사지를 해준다니? 가격도 생각보다 합리적이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나 싶어 덜컥 서비스를 요청했다. 개운하게 샤워한 뒤 마사지를 받고 노곤한 몸으로 컵라면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내가 이렇게 일찍 성공의 맛을 누려도 될까? 이런 식으로 설레는 밤은 처음이었다.


밤 9시,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마사지사가 온 모양이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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