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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준 Jan 11. 2022

싸가지 없는 고양이와 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그것도 아주 싸가지 없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주인을 로봇청소기 또는 자동 배식기 비스무리한걸로 취급하는 그런 싹퉁바가지 없는 고양이가 나는 간절히 필요하다.



요즈음 '개냥이'가 유행이다. 고양이의 귀여움은 간직한 채 개처럼 지 주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츄르 좀 쥐여주면 배를 까고 뒤집는 고양이는  사람들의 염원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개냥이에게 환장한다. '고양이 꾹꾹','새끼 고양이','개냥이 애교' 등등을 유튜브에 검색한 후 입을 떡 벌리고 한참 동안 쳐다본다.


그렇게 개냥이의 어설픈 애교에 현혹당해버린 사람들은 우연히 집 앞 교차로에서 간택당하길 간절히 원하며 주변을 살피며 걷는다.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개가 되어버린 고양이가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자고로 고양이는 고양이다울 때 젤 사랑스럽다.


직장 상사에게 한참 갈리다 못해 파쇄지에 갈린 한 줌의 종이보다 처량해진 집사가 돌아왔을 때 고양이는 반겨서는 안 된다.


진정한 고양이는 멍청하게 현관에 축 처져있는 집사에게 응당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야 한다.


아, 시선을 보낼 필요도 없다. 그냥 관심조차 주지 않고 도도히 캣타워로 올라가야 한다.


츄르를 한가득 들고 왔을 때 고양이는 달려가 반기면 안 된다.


집사가 잠들기까지 기다린 후 어둠이 내린 방안을 슬그머니 기어가  - 낼름, 하나를 빼와야 한다.


좀 더 도도한 고양이라면 눈치 따위는 보지 말고 그냥 집사의 싸대기를 핑크색 앞발로 가격해도 별 상관없다.


귀싸대기를 맞은 집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츄르를 제물로 바칠 테이니.



나는 먼 훗날 나와 내 싸가지 없는 고양이가 같이 살 날을 상상한다.


집사가 글을 쓰던 영화를 보던 감기에 걸려 자리에 드러눕던 모든 고양이는 하루에 한 번 참치캔을 먹어야 한다는 '냥권'을 주장할 너의 싹퉁바가지를


생각해 본다. 너의 배를 만지려던 내 손을 가차 없이 할퀴는 너의 날카로운 발톱의 서늘함을 그려본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두 존재의 단조로운 생활과


물과 기름같이 전혀 섞이지 않으면서도 어우러질 수 있는 신기함과


권위와 질서가 반전된 두 동물의 기묘한 행태와


강형욱이 보면 까무러질 우리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싸가지 없는 고양이야. 기다려, 집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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