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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Feb 06. 2018

후회하지만 불행하지 않아  

[위기의 주부] 엄마됨을 후회함, 이제는 말한다  



1. 


<엄마 됨을 후회함/ 오나 도나스> 이 책이 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연구라는 점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여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사회 구성원/성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처벌'이 존재하고, 국가와 종교가 합치된 나라에서 유대 종족 번식을 위해 여성이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여권/보육복지/여성들의 삶의 만족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엄마 됨을 후회하느냐'라는 질문은 세계 최저출산 국가인 한국에서보다 더 금기시되는 문제 제기일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출산 거부를 하는 사회와 여전히 출산과 엄마 됨이 찬양받는 사회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자유롭냐면 그건 또 아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여전히 사람들은 엄마가 내는 '날 것의 목소리'를 거북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구나라는 걸 재차 확인했다. 

엄마들에겐 '정해진 답'이 있다. 그 답을 적으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칭찬하지만 벗어나면 '오답'이 된다. 엄마로서 느껴야 할 바람직한 감정 규칙에서 벗어나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떻게든 교정하려 한다. 
엄마란 존재는 그만큼 '만만하다.' 







2. "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나요?" 


예전에 글을 쓸 때 나는 이 질문에 답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간접적으로 이리저리 돌려쓰긴 했어도 '어떻게 감히...'라는 내적 검열을 꾸준히 했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후회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엄마로 사는 삶이 괴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때론 행복하다는 것, 고통과 기쁨의 최대치를 극단적으로 오고 가는 건 
'양가감정'으로 후회와는 다르다. 

후회는 이렇다. 
"지금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엄마로 사는 삶이 엄마로 살지 않는 삶보다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위 두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때 엄마 됨을 후회하는 거라고 한다. '후회하나요?'라는 직설적 물음 앞에 선 멈칫하게 되지만 이 기준은 쉽고 명확하다. 나는 둘 다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엄마로 사는 삶이 이럴 줄 알았다면, 육아가 이렇게 어렵고 힘들 줄 알았다면 엄마가 되지 않았을 거다. 나도 아이가 지금 보다 어렸을 때, 꼬물꼬물 보들보들 바둥거리던 시절이 그립다. 아득하고 아련하다. 그러나 예쁘고 귀엽고 그리움과 별개로 결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다시 키우고 싶지도 않다. 다시 돌아가라면 누구 말대로 차라리 독약을 마시겠다. 

두 번째, 엄마로 살면서 얻은 경험과 통찰, 겸허함은 귀중하고 깊고 값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 없이 사는 삶보다 장점이 많은가라고 묻는다면 망설여진다. 개인적으로 열 가지 중 여덟 가지를 잃었고 두 가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얻은 두 가지가 잃은 여덟 가지 만큼의 질적 값어치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엄마로 사는 삶! 정말 만족스러워!'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3. '후회해서 불행한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후회'를 입 밖에 내기 꺼리는 이유는 '후회는 바로 불행한 삶이다'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후회하면 정말 불행해지나? 

나는 잘 후회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현재 조건에서 할 일을 찾으려 하고 가급적 좋은 점을 보면서, '정신승리'하면서 살려고 한다. 그럼에도 끝내 후회하는 일이 있다. 

첫 번째, 나는 직장을 아이를 임신하기도 전에 그만둔 걸 종종 후회한다. 어떻게든 더 다녀보면서 상황을 보았어야 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두 번째, 주택을 지은 걸 후회한다. 집 짓고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솔직히 말해 신도시 아파트 생활이 자주 그립다. 

후회란 이런 거다.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거야. ' 그런다고 지금 상황에 불평불만을 끝없이 하고 불행하고 억울해서 잠 못 드냐면 아니다. 직장을 다닐걸, 아파트에 살 걸, 하지만 어리석고 몰랐는데 어쩌겠어. 이런 마음이 공존한다. 약간의 자책과 반성,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과 체념의 뒤섞임. 언제든지 무엇에서든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후회나 미련일랑 깨끗이 버리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면 되는걸까?'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편할까. 
후회와 미련은 마음 한편에 두고 그저 지금 상황에서 덤덤이 살아가는 거다. 가끔 들추어보면서 선택의 대가로 감당해야할 몫을 상기하며 현 상황에서 할 일들을 해나간다. 후회하는 일이 있다해서 매일매일이 불행하고 불만족의 연속일 거란 추측은 후회를 감히 직면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매사가 만족스러울 수 없고,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따를 수 있다는, 후회한다고 인생 전체가 불행하지 않음을 안다면, '엄마 됨의 후회' 역시 무겁지만은 않다. 엄마 됨에 백퍼센트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덜 즐거울 순 있겠지만 못 견딜만큼 괴롭지도 않은 거다. 

그리고 책에 써 있듯 
'엄마됨의 후회'는 아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후회가 아니다. 아이를 매우 사랑하고 유대감을 느끼지만 엄마로 사는 삶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자각일 뿐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엄마됨의 후회를 '분리'하고 나면 조여드는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정말 무거운 것은 '엄마가 엄마 됨을 후회한다'라는 사실이 아니라, '엄마'라는 역할을 한 개인의 자아와 완벽하게 일치시키기를 강요하고, 후회를 인격의 흠이자 존재의 부정으로 몰아세우며, '금기시'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대체, 왜, 엄마에게만?  교정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후회를 말하는 엄마들'이 아니라, '엄마에게 후회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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