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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ug 05. 2018

'왜 다른 엄마들처럼 못하냐'는 말은 그만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 - 마지막회] 엄마의 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육아에 필요한 건 엄마의 능력보다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다.  





육아는 엄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  아이와 단 둘이 '독방'에 갇혀 얼굴만 마주보고 있을 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육아정보를 내 기준에서 선별할 수 없었고 저항하기에도 힘이 부쳤다ⓒ pexels



그동안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라는 주제로 글을 써왔다. 아기를 돌보며 못 먹고, 못 자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려움 이외에 사회적 조건이 이전 시대에 비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유를 찾아보았다.


글을 써오며 '악플'을 받았다. '징징댄다,' '하소연한다.' '더 노력을 안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네 어머니가 그랬듯 힘들어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데 감히 '왜' 냐고 질문했기 때문일까. '모든 게 엄마 탓'인 현대 육아에서 개별 엄마의 반성을 촉구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일까.

엄마 개인의 능력과 자질, 당연히 중요하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기에 같은 사안에서도 누군가는 허둥대고 누군가는 노련하고 느긋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와 단 둘이 '독방'에 갇혀 얼굴만 마주보고 있을 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육아정보를 내 기준에서 선별할 수 없었고 저항하기에도 힘이 부쳤다. 불안하고 막연했기에 '안 하는 것 보다 차라리 많이 하기'를 택했다. 사회가 선정해 놓은 '좋은 엄마' 기준에 얽매여 스스로를 들들 볶았다.

나는 자주 느꼈다. 왜 평상시 타인에게 관대한 내가 불쑥불쑥 아이에게 험해지는지. 뒤늦게 돌이켜보니 '시간에 쫓길 때'였다. 아이는 나만 바라보았고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어야 했다. 여러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면서 조바심 났고 피곤에 찌들었고 체력이 떨어졌다.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갔다. 백날 육아서 읽으며 마음 수양해봐야 말짱 도루묵이었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해도 24시간 보살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타인과 단 둘이 얼굴을 맞대며, 혼자서 숱한 일을 해결해야 하면 우울과 좌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반면 체력과 인내심이 탁월하지 못해도 주변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오고 가고 다소 느슨한 환경에 놓일 경우, 출구가 있을 경우, 힘들어도 즐거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쓰고 보니 당연하다 싶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모두 '엄마의 잘못'으로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아파트를 벗어나고 근무시간을 줄였다

2년 전, 신도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로 이사 온 후 깨달았다. 부동산, 학군, 교통편 어느 것 하나 변변치 않은 이 곳에 살면서 이를 악물며 노력하지 않아도 육아가 가능함을. 육아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마을을 쏘다니며 뛰어 노는 아이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는 엄마들이 여기 있었다. "우리 아이 보셨나요?" 마을 '단톡방'에 누군가 올리면 "그 애 저희 집 앞에 있네요"라고 누군가 답한다. 

'공동육아'니 '발도르프'니 하는 육아 프로그램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흙 파고 풀 뜯고 돌 위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오고가며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봐주었고, 이웃들과 반찬을 나누며 시간과 고민을 함께 했다.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길어졌지만 오히려 근무시간을 줄였다. 대기업 프로젝트 수주를 받는 남편의 회사는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진 않지만 영향을 받았다. 또한 남편은 회사가 미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후, 눈치 보며 억지로 하던 야근을 줄였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아이는 엄마에게만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엄마인 나만 보며 크지 않는다' 라는 건 어마어마한 든든함을 주었다. 남편, 아이 친구들, 이웃들, 육아 동지들이 얽히며 '뭘 먹이나, 뭐 하고 놀아주나, 어떻게 키우나, 뭘 가르치나'라는 치열하고 어려운 문제가 가끔은 얼렁뚱땅 지나갔다. '엄마의 무책임'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으로 가면서 심각성이 완화되는 것이다.  인내도 체력도 성격도 좋지 않지 않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질 일은 줄었다.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 시간, 공간, 관계가 필요하다


            

▲  '공동육아'니 '발도르프'니 하는 육아 프로그램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흙 파고 풀 뜯고 돌 위를 오르내리며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갔다ⓒ pexels



현대 사회는 모든 영역을 '효율성'과 '성과'로 환원시킨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잘 놀아도 노는 시간 동안 발달에 자극을 받아야 하고 충분히 놀았으니까 공부를 잘할 거라고 기대한다. 

엄마가 함께 하는 시간조차 매번 '애착'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아이의 모든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끼워 맞춰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육아는 성과를 기대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된다. 아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주조해야 하고', 어른의 계획과 주도로 이끌지 않으면 '방치'라 여기는 한 육아는 언제나 버거울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 키우기란 때론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며, 목표 없이 떠돌기이고, 어떤 가시적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 안에서 투명한 기쁨을 누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공터에서 놀이를 발명하던 아이들처럼, 세계를 마음껏 탐색할 수 있는 뻘짓의 시간이다.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도와가며 사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다. 생활과 놀이가 뒤섞이고, 여러 사람과 자연스럽게 부딪히며 스스로 갈등을 이겨낼 수 있는 공간이다.

부모들에겐 지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하고 승인해줄 동료와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예측 불가능의 시간을 느긋이 음미하는 일이 허락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극을 주지 못할까 봐, 뒤처질까 봐 전전긍긍 하도록 내몰린다. 

육아 정보는 기쁨을 알려주기 보다 불안과 걱정을 조장한다. 걸음마를 늦게 한다고, 말이 늦다고, 낯을 가린다고, 한글을 못 읽는다고, 영어를 모른다고 조바심을 내게 된다. 또한 타인들의 도끼눈에 끝없이 자신을 검열한다.

편리한 가전제품, 멋진 인테리어로 꾸민 시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육아가 힘든 이유. 그건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질적인 충분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엄마 탓'만 한다.




그저 응원해 주었으면

조건을 바꾸는 일은 나 하나 참고 견디는 일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아파트 탈출, 도시 탈출이 답이라고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우리 가족은 직장이 서울에 있지 않았고 여러 여건이 맞아 도심을 벗어났지만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에게 또 다른 박탈감을 줄까도 염려스럽다. 또한 마을 공동체의 호의만큼 간섭과 불편도 감수해야 하며 부족한 교통편과 편의시설 때문에 다른 면에서 할 일이 는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우호적이어도 과제는 매번 새롭게 몰아친다. 부모로 살아가는 이상, 마음 편한 날은 없다.

단지 이걸 말하고 싶다. 육아는 엄마와 아이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기질, 주 양육자의 성향과 체력 이외에도 주변 환경, 배우자와 가족의 육아 참여, 복지제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오늘 하루의 육아를 만든다. 나는 나의 육아가 전보다 보다 즐거워진 이유를 말할 수 있다. 내가 잘해서도, 아이가 순해져서도 아니었다. 남편의 육아 참여가 늘었고, 육아 방식을 지지해줄 동료가 생겼고, 아이가 자유롭게 뛰노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슈퍼 엄마'가 아니어도엄마의 능력이 탁월하지 않아도 성격, 인내심, 체력, 경제력 모든 게 좋지 않아도 그럭저럭 육아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여건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벗어나고 직장과 멀어지고 편의시설을 포기 하지 않고서라도 충분한 시간과 공간,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그게 맞다. 

환경이 끼치는 영향, 배우자의 육아 참여를 무시하고서 '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못하느냐', '네 아이는 왜 그러냐', '네가 문제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개인이 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같이 개선해보려고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엄마 개인에게 책임과 의무만 부여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마음가짐'과 '노력'이라는 말로 엄마 개인을 옥죄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힘든 엄마가 있다면 부디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기 바란다.


우리 엄마들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나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지지고 볶아가며 기쁨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분투하듯 다른 엄마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지적하는 말들은 고이 접어줬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압박하는 세계와 홀로 결투하며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으니, 손을 뻗어 잡아주지 않을 거라면 그저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상으로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 연재를 마칩니다.)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 관련 글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들어? 손빨래도 안 하면서"

왜 요즘 엄마들은 '애느님'에게 쩔쩔맬까

밖은 미세먼지, 안은 '노키즈존'... 엄마는 괴롭다

"울려라" vs. "안아줘라"... 대체 뭐가 맞는 거지?

'애는 엄마가 키우라'면서 '여자도 성공하라'는 모순

아파트를 벗어났다. 육아가 훨씬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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