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수 없는 풍경
매서운 바람에 귀와 뺨이 아릿해지면, 한 해의 가장 큰 일이 남았다는 묵직함을 가슴에 얹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 엄마. 김장 언제 할 거야?”
“ 11월 16일에 하려고 해. 너무 추워지기 전에 해야지”
“ 알았어. 그때 갈게. 올해는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조금 줄여서 해. 엄마 아빠도 이제 너무 힘들잖아.”
매년 당부의 말을 덧붙이지만 당부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배추탑이 높다. 우리 집은 밭에 모여 김장을 크게 한다. 밭 한 쪽에 쌓여 있는 배추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빠는 회사를 퇴직하시고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셨는데 마당정도의 밭일의 규모가 이제는 운동장만해졌다. 시기에 맞춰 모종 심고, 씨 뿌려, 제철에 아빠의 밭에는 없는 게 없었다.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으로 제철 채소의 고유한 색들이 넘실댔다. 상업적 목적인 농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열심히 일구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바빴다. 엄마 아빠는 밭에 지인이 오기라도 하면 바지런히 움직이며 상추, 가지, 사과, 호박을 따서 한아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김장철에 맞춰 배추, 무를 심는다. 김치 속재료부터 심고 뽑아서 하니, 우리집의 김장 날은 그야말로 고된 노동이다. 김장준비의 시작은 봄부터 시작된다. 봄에 고추 모종을 심는다. 물 한 줄기, 햇볕 한 자락, 바람 한줌 녹아 든 고추 빨갛게 익으면 쏟아지는 뙤약볕에 엄마 아빠는 얼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고추를 딴다. 딴 고추 말려 빻아 고춧가루 만드는 것부터 김장준비의 시작이다. 다음은 김치 속 준비. 몇일 전부터 무 뽑고, 배추 뽑아 무는 채 썰어 넣고, 갓, 대파, 쪽파는 다듬어 손질하고, 마늘, 생강은 빻아 놓는다. 재료들 섞고 고춧가루 부어 버무린다. 버물버물.
김장 당일. 아침공기가 매섭게 차다. 동생가족, 오빠가족, 우리가족 모두가 모였다. 모두가 앞치마 두르고, 빨간 고무장갑에, 고무장화를 신고, 모자를 쓴 모습이 투구 쓰고, 갑옷 입고 전쟁터에 나가는 기사 같았다. 자, 준비 완료! 김장 투입!! 절인 김치를 헹구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커다란 다라 3개에 물을 받아, 절인 배추를 헹구기 시작한다. 1차에서 헹구면, 2차로 넘어가고 3차적으로 배추를 헹궈 소쿠리에 담는다. 빨랫줄에 걸린 하얀 면 이불처럼 배추가 뽀얗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처럼 투둑툭. 배추의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면서 믹스커피를 마셨다. 달달하면서 뜨거운 믹스커피가 혈관을 돌아 온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김치 버무릴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옹기종기 모여 속을 넣는다. 고무장갑을 낀 빨간 손들이 나란히 분주하다.
“속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짜다. 너무 적게 넣으면 싱겁다. 적당히 속을 넣어라.” 매해 반복되는 엄마의 레퍼토리.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한겹 한겹 배춧잎을 들어올려 고급 옷감의 손빨래를 하듯, 오물조물 속을 넣는다. “맛있어라. 맛있어라. 맛있어져라. 김장이 맛있게 잘 되면 일년이 든든해.” 엄마의 주문.
각자 가지고 온 김치통에 차곡차곡 양념옷을 입힌 김치를 담는다. 라면먹을 때, 비오는 날 김치전이 먹고 싶을 때, 마땅한 식재료는 없고 저녁을 뭐 해먹을까 고민될 때, 돼지고기 달달 볶아 김치찌개 끓이고, 잘 익은 김치 푹 쪄서 내는 등갈비 김치찜을 해야지. 김장 김치 하나로 내 마음에도 든든함이 쌓인다.
김장하는 날은 남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보통 힘쓰는 일들이다. 김치속을 버무리는 것(양이 어마어마 하다보니), 절인 배추를 옮기는 것, 김치가 담긴 김치통을 한 켠에 쌓아 두는 것등이 남자의 일이다. 아빠, 오빠, 우리 남편, 제부. 우리집 남자들 총 출동. 평소에 해주지 않는 여자들의 머리를 넘겨주기도 하고, 얼굴에 틘 고추가루를 떼어 주기도 한다. 남편이 나보고 가만히 서 보라며 김치 양념으로 범벅이 된 앞섶을 행주로 닦아준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마주 보았다.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김장 날, 아빠의 역할은 수육을 삶는 것. 야들야들 잘 익은 수육에 김이 모락모락 났다. 남편이 수육에 김치 속을 얹어 배추에 싸서 내 입에 넣어준다. 야들야들, 아삭아삭.
밭 한켠에 김치가 담긴 김치통이 성곽처럼 든든하게 쌓였다. 우리 엄마는 8남매 중 장녀. 엄마의 어깨 한쪽은 우리 엄마로, 며느리로, 다른 한쪽 어깨는 늘 동생들의 무게를 달고 살았다. “결혼도 안 한 애가 김장할 줄은 알겠어? 상경이 한통 줘야 돼.” 막내 이모 것 한 통, “걔가 일하느라 김장 할 시간이 어딨어~ 상옥이도 한통 줘야지.” 둘째 이모 것 한 통, “지연아~ 너네 시어른들이 올해 몸이 안 좋으셨으니 김장 하시기 힘들실 거 아냐? 시댁에 두 통 가져다 드려.” 동생네 시 어른 두 통. 고생해서 김장히고 한아름의 엄마 베품이 또 나온다. 김장이 끝나고,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조용히 염치없는 적은 돈을 건냈다. 엄마는 왜 이러냐며 손사레를 친다.
“ 나 죽으면 해주고 싶어도, 못해. 엄마가 해줄 수 있을 때 해줄 테니 그러지 마.”
“그래도 엄마 아빠가 너무 고생했잖아. 속 만드는게 제일 힘든건데 도와주지도 못하고.”
“괜찮아. 아직은 할만하니 해. 우리 딸, 우리 보름이 맛있게 먹으면 엄마는 그걸로 행복해.”
엄마의 말 한마디에 목울대가 울렁이는걸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켜 넘긴다.
나이 일흔의 엄마 아빠의 김장김치를 먹으면서 언제까지 엄마의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김치에 스며 있는 엄마 아빠의 시간이 보인다. 아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지고, 주름진 손. 세찬 바람을 맞고, 흙을 만지고, 농작물을 심고, 뽑고, 가꾸느라 투박해진 손. 코끝이 시큰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김장풍경도 사라지는 풍경이 될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모두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워질 맛, 그리워질 풍경.
몇일 후 김치맛이 궁금해졌다. 우리 식구는 김치양념이 적당히 베인 아삭아삭하고 싱싱한 맛이 느껴지는 안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 선물을 뜯어보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김치통 뚜껑을 열었다. 배추 위를 곱게 물든 빛깔이 선명하게 붉다. 그 빛깔이 곱게 탐스러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한 포기 잡아 도마에 올려놓고 썰기도 전에 한잎 쭉 찢어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아! 시원해~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싱그러운 맛.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겨울의 맛이다. 내가 먹는 걸 보고 아이가 내 옆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엄마~나두!"
아이 입에도 손으로 찢어서 쏘옥. 아이의 엄지척!
“엄마~ 이 김치는 생명의 김치야. 바람을 맞고, 뜨거운 햇볕을 이겨낸 생명의 맛. 이 김치 먹으면 우리도 햇볕 에너지, 바람 에너지 다 먹는거야”
자주 이런 말을 해주었더니 이제 아이가 내게 말 해준다.
“그렇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성이 들어 갔잖아. 그러니 우리 맛있게 먹고 건강하자.”
웃으면서 말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고였다.
*엄마의 그림책
김장 하셨나요? 결혼하기전엔 몰랐는데 주부경력13년차가 되고보니, 김장김치가 왜 이렇게 감사한지요~^^ 이 그림책은 우리 어릴적 김장풍경이 잘 담긴 그림책이예요. 예전의 풍경들을 소환해주네요. 보고있음 절로 미소 지어집니다. 지금도 많이 사라진 김장풍경을 잘 구현해냈어요. 방앗간에서 고춧가루 빻는 장면, 땅파서 독 묻는 장면들이 참 귀하게 느껴져요. 김장 담그는 법도 담겨있지만 김장은 품앗이였잖아요. 이웃과의 정을 보여줍니다.
" 김치야. 부지런히 익거라!
우리 딸 맛있게 먹게..."
<엄마의 김치수첩>에 적힌 마지막 글귀에 뭉클해서
그만 울컥~~저희 부모님도 그와 같은 마음이셨겠지요.
<엄마의 김치수첩>이 80년대 태어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면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 좋은 우리문화를 알려주는 그림책이예요. 김장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저는 그림책을 통해서 지식을 접하는 일이 많아요. 이 그림책은 김치 담그는 법, 어떤재료가 들어가는지 남쪽 지방 김치는 깊은맛이 나고, 북쪽지방은 시원한 맛이 난다는 것등을 알려주고 있어요. 우리 전통문화인 김장을 참 맛깔나고 기깔나게 이야기해줘요~(별거별거 다 들어가는 김칫소)정말 별거별거 갖은 양념이 다 들어가짆아요. 김치를 버무리는 표현을(치덕치덕) 이라고 했는데 찰떡처럼 어울리는 재미있는 표현이었어요. 아이들과 김장하는 날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