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롬 Apr 27. 2021

자연이 우리에게 부른다

<모모노케 히메> ⭐⭐⭐

 8번째 지브리 영화는 <모모노케 히메>다. 8번째까지 보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얼추 지브리 영화들의 특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주체적인 여성상을 통해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힘차게 이끄고, 바람과 풀, 하늘 등과 같이 자연주의 모습을 지브리 특유의 따뜻한 색채와 편안한 OST로 꾸며 세월이 지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출을 한다. 게다가 몇몇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생태주의 관점으로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인간의 욕심으로 생긴 잘못을 독창적이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생태주의 관점과 인본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넣어 현대에 일어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창의 있게 표현한 작품은 <모모노케 히메>라고 생각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모노케 히메> 네이버 스틸컷


생태주의

 서론에서 말했듯이 필자는 <모모노케 히메>가 인간과 자연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싸움을 독창적이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자연 훼손으로 피해받는 숲의 수호신들이 더 이상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인간들과 싸우는 내용에서 에보시네 마을은 사철을 녹여 철을 만드는 제철 작업을 하는 마을이기에 더더욱 높은 열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왕의 명령으로 숲을 수호하는 사슴 신의 목을 베기 위해 각 마을의 사냥꾼들과 병사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근대 사회에 산업 혁명으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했던 인간의 만행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만행을 저항하는 자연의 모습도 흥미롭게 연출한다. 모로 일족이라는 거대한 흰 들개 무리와 대장 옥코토누시가 이끄는 멧돼지 집단이 인간과 전투를 펼치는데 마치 오늘날 자연 훼손으로 먹이가 없어진 서식지에서 마을 인가로 내려오는 야생 멧돼지나 들개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런 두 집단의 갈등 속에서도 중립자가 있으니 바로 아시타카다.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 훼손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생각하는 인물로 후반에 옥코토누시 집단과 에보시 마을의 전투에서 아시타카는 양측을 모두 도와주고, 에보시가 끝내 자른 사슴 신의 잘린 목을 용서를 구하며 다시 사슴 신에게 바치는 모습에서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쁜 노력들을 보여준다. 아시타카가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 이유는 처음 나고신이 재앙 신으로 돼서 마을에 피해를 입을까 봐 어쩔 수 없이 수호신을 죽여야만 했던 자신의 잘못을 치르기 위한 회개일 수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지켜야 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죽음과 태도

  <모모노케 히메>는 죽음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시타카가 활과 칼로 적의 머리와 팔이 떨어져 나가는 걸 서슴없이 보여주고, 숲의 수호신인 사슴 신마저 생명을 불어넣고 앗아갈 수도 있다는 설정을 보면 생명의 순환이라는 고리에서 죽음은 당연히 다가올 수 있는 절대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걸 드러내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나오는 건 역시 인간의 모습이다. 특히 에보시 마을의 지도자 에보시가 그렇다. 자연의 입장에선 자연을 훼손하고, 무기와 화약으로 계속해서 공격을 해오는 일종의 테러집단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에보시 마을 주민의 입장에서는 사철을 녹여 철을 만들며 여성들까지도 일자리를 만들어준 은인이자 마을의 현자와 다름없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집단의 중립자인 아시타카는 에보시를 죽이는 거보단 에보시를 챙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에보시가 저지른 잘못이 있기 때문에 목이 잘린 사슴 신의 폭주 속에서 목이 잘린 모로가 최후의 일격으로 그녀의 팔을 앗아가는 공격을 한다. 죄에 대한 벌을 내린 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깟 영생이 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