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면접

아직도 생생한 첫 면접에 대한 기억

by 윤비



시작은 인턴 면접이었다. 번쩍거리는 가죽 재킷을 입고 간 나는 '아버지가 주로 어떤 브랜드 옷을 구매하시냐?'라는 질문에 쭈뼛거리며 '... 레드옥스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레드옥스는 지금도 현존하는 브랜드로 아니 저런 옷을 누가 사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할 만한 화려한 패턴과 색감이 특징인데 나의 아버지는 그 옷을 찰떡 같이 소화하셨다. 피식 웃는 면접관을 보며 나는 합격하겠다는 감이 왔고 한 달 후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는 사무실, 화장실, 엘리베이터, 쇼룸까지 체리색 무늬목으로 마감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 체리색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려 첫 출근부터 출근하고 싶지 않은 직장인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약속된 인턴 3개월의 계약기간을 훌쩍 넘긴 9개월 동안이나 계속 인턴이었고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이주(나이는 숨길 수 없구나 하이주라고 아는가?)에 빨대를 꽂아 쪽쪽거리며 그 세월을 벼텼다.


9개월의 인턴기간을 마치고 마지막 회장의 면접만 남은 상황. 그의 사무실은 회사보다 더욱 웅장한 느낌의 무늬목에 둘러싸여 있었고 면접은 그가 앉아있는 책상 옆에서 진행되었다. 회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집요하게 훑더니 대뜸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몇 평이냐고 물었다.


'45평입니다'

'음.. 부모님이 그래도 성공하셨네'


그 당시 자소서에는 부모의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의 부모가 45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했다는 점을 콕 집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경북 시골 출신에 oo시에 와서 그 정도면 출세한 거라고 쳐준다는 뉘앙스


그리고 뜬금없는 영자신문 번역을 시키며 그가 얼마나 원어민처럼 발음할 수 있는지 한참 시범을 보이고(물론 그는 원어민처럼 발음하지 않았다) 면접은 끝이 났다. 분명 그는 그 위치에 있을 법한 카리스마가 있었고 그 위험적인 포스와 어이없는 질문들이 뒤엉켜 얼떨떨하고 있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비서실입니다'

'네 어쩐 일로?

'방금 면접 끝나셨죠?'

'네'

'근데, 다시 회사로 나와 주실 수 있어요?'

'네?? 근데 무슨 일로..'

'회장님께서 다시 뵙고 싶어 하세요'

'네?! 면접자들 다요??'

'아니요 신 oo 씨하고 최 oo 씨요'

'네.. 알겠습니다'


합격소식을 그의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발음으로 직접 전달하려나 싶었다. 다시 회사에 들어간 우리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bmw를 타고 회사 연수원으로 가게 되었고 그의 어이없는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런 고급차는 처음 타보지 않는가?'

'네.. 첨 타봅니다'

'허허허 자네같이 평범한 일반인이 언제 이런 차를 타보겠는가'


회사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그곳은 회사의 연수원이라고는 하지만 회장 개인 별장같이 쓰이는 곳으로 회장 전용의 골프 연습장을 갖추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마 번들번들한 사장님들은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느냐


우리는 골프 치는 회장 옆에 서서 (그의 말을 빌리지만) 젊은 남자 못지않은 파워풀한 골프 실력을 구경했다. 회장은 끊임없이 자신의 힘에 대해 과시하기 바빴고 이마 번들번들한 사장님들은 '굿~~ 샷~~~!!!'을 외치며 그가 날린 골프공을 줍느라 뛰어다니기 바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굿샷의 환호 속에 2시간은 넘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 평생 이런 성추행은 처음이라 성적 수치심보다 현실 감각 상실의 폭이 더 컸던 것 같다. 이게 정말 드라마 아니고 현실인가?


나는 그날 돈 많은 사람의 위력과 과시욕을 알게 되었고 그것에 빌붙고자 하는 사람들의 특유의 표정과 행동들도 보았으며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이, 이런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것이 내 첫 면접이자 마지막 면접의 기억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