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한다.
지금껏 5000원짜리 로또 3번 걸린 인생. 로또 1등에 걸리면 어떻게 쓸 것인지를 한결같이 고민했다. 여느 때처럼 에헴, 또 행복한 고민 좀 해볼까 하던 중 더 이상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걸 느꼈다. 상상 로드는 여느 때와 비슷했지만 갑자기 ‘근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가 끼어들면서 방향이 틀어졌다. 옛 애인을 떠올릴 때와 같은 싸늘함. 내 가슴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요즘 나는 ‘손석구에게 또 한 번 반하게 되는 영상’은 진짜 또 반할까 봐 감히 못 보고 있으며 잠들기 전 ‘로또 걸리게 해 주세요’가 아닌 ‘손석구가 꿈에 나타나게 해 주세요. 이왕이면 굉장히 야한 꿈으로 부탁합니다.’라고 웃음기 빼고 진지하게 기도한다. (본인은 무신론자임)
‘로또 외엔 방법 없다.’는 말을 대화의 마침표처럼 사용했었다. 그런 인간이었던 내가 로또에 걸리면 하고 싶었던 일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저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욕망을 내가 진짜 욕망으로 착각한 것인지 모른다.
뭐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남편과 싸울 때면 이혼해서 혼자 허름한 골방에 앉아 밥벌이 없이 우울증에 걸리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선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엄청 괴로워하면서 요즘 전세 시세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어느 도시로 떠나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내가 들고 가야 할 살림살이들을 체크하고 이사업체 사람들을 언제 부르고 내 물건에 포스트잇을 붙여놔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지금 키우고 있는 수많은 식물들은 지인들에게 나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의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테니까 말이다.
로또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생긴 어마어마한 돈은 남편과 내 사이를 갈라놓고 부모님과 친구들 사이마저 갈라놓을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나 또한 다른 멍청이들과 같이 자신의 인생을 꼬아버릴 인간이다. 이것이 로또로 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로또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미리 고통을 받는 인간이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집, 더 쌔끈한 차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저 지금처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을 가지고 오래된 것들을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분명 돈으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모든 원인을 단지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얼버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할 때 더 참혹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로또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인간이 그렇다.
요즘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한다. 돈 말고 무언가를 원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래서 조금 괴롭다. 괴로우면서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기대하면서 설레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