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우울해지는 사람
‘82년생 김지영’ 이후로 영화관은 첨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무대인사 오는 공유 배우님을 보려고 갔던 것이었다. 당연히 이번에 본 영화는 ‘범죄도시 2’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강해상이 윗옷을 벗었을 때와 달리기마저 겁나 잘하는 강해상 그리고 아무튼 강해상과 생각보다 목소리가 부드러운 마동석과 그의 딕션.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면 우울해진다. 영화가 무슨 내용이건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좋아하는 일을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을 생각할 때 나는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어쩜 저럴 수가 있는 거지?’
한 번도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은 한 적이 없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이 있다. 그 복합적인 창작물을 기어코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감각과 근성과 열정을 선망한다. 그들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귤 상자 안쪽에 푸른곰팡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귤 같다. 저 아래 혼자 처박혀서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 상자를 뒤흔들어 자신을 골라내면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썩었는지 아는.
나의 덕질은 왜 항상 나에 대한 실망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는 걸까. 그 사람이 너무 좋으면 나는 왜 그 사람처럼 될 수 없는가로 이어진다.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점이 화가 난다. 이유를 알면서도 새삼 또 실망을 한다는 게 어이가 없다.
내 인생은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일은 없어도 된다.’와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일을 찾고 싶어서 미치겠다.’로 나뉘는 것 같다. 언제쯤 '아 좋아서 미쳐 버리겠네'를 맛볼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이게 끝일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곳을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침울해지고 하지만 난 경험을 많이 해봤으니까 그게 실패건 성공이건 완전히 같은 장소를 헤매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원이 아니라 나선이라고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여도 분명히 조금씩은 올라갔던지 내려갔던지 했을 거야.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일지도 몰라 같은 곳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물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차츰 크게 부풀고 그렇게 조금씩 나선은 커지겠지.'
‘리틀 포레스트’ 중 이치코 엄마의 편지 내용이다. 무얼 경험해야 하는지 무얼 도전해야 하는지 조차 모른 체 40대를 맞이했다. 나는 나선조차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이 많지도 않고 도전을 하지 않으니 실패도 성공도 없는. 그래서 올라간 적도 내려간 적도 없는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