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분

당근을 키우다.

by 윤비


익힌 당근이 불호의 영역에 있는 이들이 많겠지만 내겐 극호의 영역에 있다. 생당근 보단 익힌 당근을 좋아해서 내가 만든 카레에는 당근이 한가득 들어간다. 갈비찜을 먹을 때도 남들은 요리조리 피해 가는 당근을 깡그리 주워 담아 먹고 김밥을 쌀 때도 당근을 무지막지하게 넣는다. 급기야 지금은 당근을 키우고 있다.


3월에 당근 꼬투리를 수경 재배해서 4월에 흙에 심었다. 베란다 작은 화분에서 당근을 수확하리라 야심을 품은 것은 아니고 당근 이파리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것이다. 게다가 그 아름다운 이파리를 먹을 수도 있다니.


흙에 심은 당근은 쑥쑥 자랐다. 제일 아래에 있는 이파리 하나를 뜯어서 씹어 보았다. 상상대로 당근 잎은 당근 향을 품은 알싸한 맛이 일품인 훌륭한 향신채였다. 하나를 더 뜯어서 얼른 남편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남편은 똥 씹은 얼굴로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고수 꽃


도전하는 일이 언제나 두려운 내가 망설이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는 ‘먹는 것’이다. 중국에 첨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중국 음식, 그 특유의 향 때문에 곤욕스러워했지만 나는 처음 맛보는 향이 익숙하지는 않아도 그 나름의 맛이 있어서 ‘맛’ 있다 생각하고 잘 먹었다. 최근엔 고수를 사다가 고수김치를 만들었고(결과는 대실패) 고수를 키워 꽃도 뜯어먹어보았다.


아무래도 음식에 한해서만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던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뭐든지 안정적인 것을 지향했던 부모님은 음식에 관해서는 대범했다. 어린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어린이에게 걸맞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고 뭐든지 맛보게 했던 것 같다.


엄마의 훌륭한 요리 솜씨가 시너지 역할을 해서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나는 쑥쑥 자라 172cm의 키를 갖게 되었고(언니도 172cm. 사실 유전자의 역할이 가장 크지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며칠 사이 당근 꽃이 피었다.


이제 당근 꽃이 피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당근 꽃도 하나 따서 먹어볼 생각이다. 다른 일들도 이렇게 쉽게 도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나를 미식의 세계로 인도했던 부모님 같은 존재를, 자꾸만 나를 떠밀어줄 누군가를 기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말이 위안이 될 때가 있다가도 덜컥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건 집에서 당근을 키우고 있는 것 정도가 아닌가. 이 하찮은 일이 좋으면서도 이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초조함이 나를 죄어 온다. 퇴사하고 1년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다짐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 공복 운동을 1시간씩 해도 단 500g도 빠지지 않는 내 몸뚱이에 삐져서 오늘은 마트에서 장 보는 것으로 공복 운동을 대체했다. 당근, 양파, 로메인, 오이, 돼지고기, 들깨 가루가 들어간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 돌아오는 길에 미술관으로 현장학습을 나온 여고생 무리를 마주했다. 여고생들은 옷장을 공유한 것처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그들을 보면서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찾는다. 다행히 혼자 있는 여자애는 없다. 나는 옆구리에 장바구니를 끼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들이 보기엔 나는 그저 장을 보고 오는 아줌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이 어른 같고 오히려 내가 어린아이 같다 느꼈다.



로제 혹은 생강이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대로변에 노란 고양이가 끈적하게 누워있다. 대번에 사람 손을 탄 길냥이임을 직감했고 멀찍이 앉아 이리 와 보라는 손짓을 보냈다. 예상대로 노란 고양이는 누가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는 고양이였다. 나긋나긋한 걸음으로 내 근처에 와서 발라당 눕는다.


한참을 고양이와 노닥거리는데 멀리서 노닥거리는 우리를 보고 ‘로제 야~!’라고 노란 고양이를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로제는 1층에 사는 본인이 돌보던 어미 길고양이의 두 번째 출산으로 태어난 고양이로 3년째 밥을 주다가 최근 리모델링 공사로 한 달간 집을 비웠을 때 테니스장 근처로 서식지를 옮겨 특유의 애교로 테니스 회원들에게 ‘생강’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밥을 얻어먹고 있다.' 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붙들려 같은 말을 몇 분 동안이나 듣고 있었고 로제는 비둘기를 사냥하려고 납작 엎드려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있었다. '아. 선생님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십시오'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그녀는 몹시 신나 있어서 나의 난감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녀의 지인이 나타나 주어 비로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단지 장 보기 만으로 넉다운이 되어 소파에 널브러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분. 오늘도 역시 그랬다. 오늘의 도전이 ’ 오이 탕탕이‘ 만들기 정도인 그런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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