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글쓰기
남편과 나는 '결혼 작사 이혼 작곡 3' 이 완결이 아니라는 걸 알고 와 씨!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 드라마를 시즌 1부터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 드라마는 엉망진창이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 같은 시청자가 있어서 감히 시즌 4를 할 생각을 하는 거라고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남편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그래도 시즌 4를 보겠다고 했다.
요즘 피비(=임성한 작가)는 젤라또에 빠져있는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 인어아가씨‘(*임성한 2002년 작품)에서 콩기름 클렌징을 하라고 해서 진짜 콩기름으로 클렌징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내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어이없게 환장시키는 독특한 세계관의 매력을 또 벗어나지 못했다.
시즌 2까지 하고 하차한 배우들은 아마도 시즌 3의 전개를 보고 도망쳤음이 분명하다. 시즌 3의 내용은 아무리 피비라고 해도 심했다. 사피영의 비명소리를 듣고 갑자기 서동마가 맥락 없이 사피영을 사랑하게 되고 귀신이 된 송 원이 소복을 입고 꽈배기 PPL을 했다. 버건디 립스틱을 바른 저승사자와 아기 동자가 나오고 또 하아.. 이쯤에서 그만하자.
조미료와 캡사이신이 범벅된 음식은 순간의 희열을 맛 보여줄 수 있다 해도 언젠간 물리는 법이다. 나는 이번에 제대로 물렸고 다시는 임성한 드라마는 보지 않을 생각이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런 스토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걸까. 권선징악과 무속신앙에 집착하는 걸 보면 그의 인생도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좋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하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나는 나라도 내게 좋은 경험을 겪게 하고 싶다. 그 경험으로 나도 좋아지고 싶다. 권선징악 따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다.
'나의 해방 일지'를 봤다. 아직 '날 추앙해요'라는 워딩을 감당할 수 없지만 이민기 배우의 빡친 연기 한방이 내 맘을 열었다. 연기 천재다.
'남은 체력을 끌어 모아 모아 막차 탈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누님 존경합니다!'라고 술 마시고 귀가하는 염기정에게 오두한이 외치는 장면이 있다. 단지 술꾼일 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일순간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이 좋다. 밉상 선배를 악한 말로 저주하지 않고 죽도록 사랑하게 해서 망하게 하겠다는 그런 맘이 좋다.
'우리들의 블루스'도 본다. 여기는 뭐 연기 천재들이 수두룩해서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이정은 배우가 부르는 'Whisk on the Rock'을 틀어놓고 몇 번을 따라 불렀다. 이러다 그렇게 싫어하던 노래방에도 갈 판이다. 퇴근한 남편이 '오늘은 뭐 했어?'라고 물었다. 나는 '오늘은 노래 부르고 놀았다.' 고 대답했다. 남편이 어이없이 쳐다본다.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다 보니 나는 내가 나의 베스트 프렌즈다.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다. '오늘은 한 번에 근력 운동까지 해치우자.' '밥은 뭐 먹을래?' '오늘도 주식은 망했구나?'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티키타가가 없다. 역시 사람들과의 대화가 고픈 것 같다. 그래서 안 보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지도. 심지어 아침에 자전거를 타면서 '조강지처 클럽'도 본다. 나는 외로운 것일까.
이런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하루를 보내며 살았을까. 글쓰기가 업인 사람들이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쓰는 일은 결국 외롭지 않게 되는 길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 같은 사람의 글쓰기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나는 무엇인가를 쓰는 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백수가 된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쓰고 있다. 주된 내용은 '뭘 했고, 뭘 먹었다. 남편 때문에 빡쳤다. 내일은 주식이 대박 났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이 적을 법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니 초등학생도 이렇게 적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남이 볼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일기에 적는다.
나중에 노인이 된 내가 이 일기를 보면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보험을 들어 놓듯 그렇게 외로움을 대비하고 있다. 이 보험의 혜택을 함께 누리기 위해 주변인에 대한 글도 간략하게 적는다. 그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알려주면서 너는 그때 매일 복권 사는 걸 뒤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들켰다는 귀여운 찰나의 순간을 전하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좋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