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수
취미가 프랑스 자수와 뜨개질이다. 우연히 ‘히구치 유미코’ 라는 일본 자수 작가를 알게 된 후부터 그녀의 도안으로 프랑스 자수를 시작했다. 보통 일 년에 1~2번 정도 일본 출장을 갔는데 2시간 남짓한 개인 시간에 다른 이들은 이세탄이나 다카시마야로 달려가서 명품 쇼핑을 하거나 드러그 스토어에 갔지만 나는 서점에서 아직 한국에 나오지 않은 히구치 유미코의 신간을 사거나 다른 작가의 자수 책이나 뜨개질 책을 구경하느라 모든 시간을 다 써버리곤 했다.
퇴사를 하고 아쉬운 것 중에 하나를 꼽자면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 물론 일본은 언제든지(물론 코로나 종식이 온다면) 갈 수 있지만 내가 자의로는 외국을, 그것도 일본을 갈 것 같지가 않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도안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으로 자수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생각을 멈추고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히구치 유미코’ 도안의 특징은 다양한 프랑스 기법을 쓰지 않는 것에 있다. 그녀는 주로 체인 스티치, 아우트라인 스티치, 프렌치 노트 스티치를 사용한다. 도안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화려하고 다양한 기법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단순한 스티치가 주는 아름다움.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책과 동영상을 보면서 프랑스 자수 기법을 익혔다. 뭐든지 한 번에 척 알아듣고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는 수 없는 실수를 하며 이해될 때까지 반복을 경험해야만 뭐든지 습득하는 사람이라 독학이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이었다.
만일 수업을 들었다면 질문 하나 제대로 못하고 앉아서 혼자 끙끙거리다가 선생님이 곁에 오면 부담스러워서 어떻게든 그를 내 곁에서 떨쳐내려 할 것이고 빨리 집에 가서 제대로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인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습득한 기법에 흥미를 느끼면 진득하게 몇 시간이고 앉아 자수만 하는 지구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수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조급한 맘을 가지고 6가닥의 자수실을 분리하려고 하면( *보통 6가닥으로 이루어진 DMC 실을 쓰는데 자수 도안에 따라 가닥 수를 달리해서 사용한다) 단박에 실이 엉켜버렸다. 자수를 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수는 신기하게도 잠깐의 조급함도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느긋하지 않으면 실이 엉키거나 원하는 모양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느긋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비록 성질머리 급해서 실이 엉킬 때마다 빡쳐서 자수틀을 집어던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자수의 시간에 나는 무아지경 상태로 진입했다. 세상의 할 일은 오직 저 광활한 면적을 체인 스티치로 빈틈없이 빡빡하게 채우는 일이 전부로 느껴졌다.
회사에서 계속 자아를 찾으려고 할 때. 남편과 싸운 뒤 분한 맘을 삭힐 때. 끝도 없는 우울의 시간을 견뎌야 할 때. 그리고 외롭고 공허해서 남아있는 시간이 벌처럼 느껴질 때면 자수바늘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고 다잡았다.
그 시간들로 인해 조금씩 채워지고 완성되는 자수의 결과물을 보면 손에 쥐어지는 생산적인 활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쓰잘데기없는 짓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 기분이 나아졌다. 마치 내가 쓰잘데기없는 인간이 아니란 것이 증명되기라도 한 것처럼.
요즘 ‘자수 생활’이 뜸하다는 건 어쩌면 좋은 일 일지도 모르겠다.